집에서 동영상 수업 듣고 학교선 토론..."수능 망하라는 소리" 불만에 "예습 않아 그런 것" 반론도 / 정인혜 기자
일부 중고교가 교육 방법 혁신의 하나로 실시하고 있는 ‘거꾸로 수업’에 불만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거꾸로 수업이란 학교와 집을 ‘뒤집는’ 수업 방식으로, 집에서 수업을 듣고 학교에서 숙제하기를 기본으로 진행된다. 교사가 준비한 수업 영상과 자료를 학생이 수업 시간 전에 미리 보고, 수업 시간에는 조를 꾸려 심화 학습활동을 하는 방식이다. 수업 내용을 미리 학습한 학생들이 수업의 주축이 돼 직접 강의를 하기도 한다. 국내에는 지난 2013년 부산 동평중학교가 시범적으로 도입했으며, 지난 2015년 KBS 다큐멘터리 <거꾸로 교실>을 통해 유명세를 탔다.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참여 중심의 수업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호평이 잇따랐지만, 학생들의 만족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많은 학생들은 거꾸로 수업에 대한 피로를 토로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박모 양은 거꾸로 수업이 있는 날이면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한다. 조별 모임 활동에 득보다 실이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성적 상위권인 박 양은 조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데, 학습지나 토론 발표 등 모든 수업 과제를 혼자 떠안는 기분이라고.
박 양은 “모든 학생이 수업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인 건 알지만, 조별 활동을 하다 보면 항상 조장만 열심히 하고 대부분의 조원들은 집에서 예습도 하지 않고 수업 시간에 조장에게만 기대는 분위기”라며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을 전부 하향평준화하는 방법인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거꾸로 수업이 성적 향상에 걸림돌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 같은 의견은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주로 터져 나온다. 현행 입시제도에서 거꾸로 수업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양모 양은 “집에 가면 수능 공부하기도 바쁜데, 거꾸로 수업이랍시고 집에서 인강(인터넷 강의) 보고 오라는 선생님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며 “일반 수업이었으면 50분 동안 강의했을 내용을 10분 분량 동영상으로 만들어놓고 학생들에게 갑자기 토론하라고 하면 토론이 제대로 되겠냐”고 말했다.
양 양은 “외국식 교육 정책도 좋지만, 이왕 도입할 거라면 초등학생 때부터 했으면 좋겠다”며 “입시 준비하는 고등학생들한테 거꾸로 수업 방식을 차용하는 건 정말 수능 망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거꾸로 수업 방식을 환영하는 학생들도 있다. 중학교 2학년 김모 양은 “집에서는 내 방식대로 공부하고, 학교에서는 그 내용으로 친구들과 토론하니까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된다”며 “조별 활동으로 진행되니까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서라도 공부를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양은 “조에 따라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긴 한다”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과 조가 되면 다 같이 열심히 하는 분위기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한 조가 되면 한 시간 동안 떠들다가 끝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학생들의 불만에 교사들은 수업 혁신을 요하는 교육 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항변한다. 설명 위주,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율성 제고 방안에서 도입된 ‘혁신적’ 수업 방식이라는 것.
한 교사는 “교사의 지침대로만 잘 운영된다면 학생들에게 창의력, 사고력을 길러줄 수 있는 좋은 수업 방법”이라며 “학생들이 더욱 수업에 열의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외국에서는 진작부터 운영된 수업 방식”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개개인의 성향이 다르다는 문제도 있지만, 불만을 품는 학생들 중에서는 집에서 예습을 하고 오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수업 동영상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별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솔직히 교사 입장에서는 앞에 서서 수업하는 강의식 수업이 더 편하지만, 학생들에게 좀 더 효율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공부시키기 위해 거꾸로 수업을 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그동안 주입식 교육 방법에 지나치게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같은 불만이 나오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 강모 씨는 “솔직히 거꾸로 교실은 선생님의 역량에 따라 다른 것 같다”며 “거꾸로 교실에 대한 선생님들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이어 “외국 수업 방식을 따라하기에만 바쁘고, 제대로 하려고 하지는 않아서 학생들의 불만이 생기는 것 아니겠냐”며 “차근차근 체계가 갖춰져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업 방식으로 체계화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