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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도, 도로표지판 제대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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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도, 도로표지판 제대로 만들자"
  • 취재기자 권경숙
  • 승인 2013.08.0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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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갑중 관광연 원장, "현행 지도, 표지판은 창피할 정도로 엉터리"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관광객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도 이들을 안내하는 관광안내지도와 도로 표지판이 국제 표준에 맞지 않아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사단법인 한국공간환경디자인학회 부설 관광안내표지연구원 허갑중(64)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허 원장은 지도, 안내 표지판, 가이드북, 웹사이트 등 관광 안내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정보를 어떻게 관광객들에게 쉽게 이해되도록 디자인하여 제작, 설치할 것인지를 25년 이상 연구해 온 전문가다. 그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서울시, 부산시 등 각 지자체를 상대로 현행 관광안내지도와 안내 표지판의 전면적 개편을 주창하고 나섰다.

그는 최근 시빅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만들어 전국 지자체에 배포한 <관광안내지도 제작을 위한 가이드라인(2009년 3월 발행)>과 <한국 관광안내표지 표준디자인 가이드라인(2009년 7월 발행)> 자체가 잘못돼 기 때문에 전국의 모든 관광 관련 지도와 표지판이 덩달아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는 반드시 바꿔야 할 부끄럽고 저급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허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관광안내지도는 초행자들도 이를 보고 어디든지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사용 중인 전국의 관광안내지도는 그런 국제적인 규격이나 트렌드를 무시하고 관광객들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자체가 홍보하고자 하는 내용만 가득 담겨있다는 것이다.

▲ 미국 시카고에서 2008년부터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관광안내지도(좌측)는 길 이름과 관광지가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는 반면, 2012 여수세계박람회에서 사용되었던 가이드북에 게재된 관광안내지도(우측)는 관광지의 이름과 사진이 집약돼 있을 뿐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정확히 나와 있지 않다(사진: 허갑중 원장 제공).

허 원장은 외국 관광객들이 방한할 때 국내 관광안내지도를 믿지 못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외국 유명 지도제작사들이 제작한 한국 관광안내지도를 사오는 경우도 적지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면서 "이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관광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정부의 구호는 헛소리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허 원장이 지적하는 우리나라 관광안내지도의 문제는 복잡성과 비주제성이다. 국내 관광안내지도는 관광객이 경험하고 방문하길 원하는 곳에 관한 하나의 주제만을 담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 관광안내지도는 여러 주제를 한 지도에 담고 있기 때문에 관광객에게 혼란을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관광안내지도 기획과 제작에 근거가 되는 기준을 수립하여 제시하고, 나아가 백지도라고 불리는 ‘기반 지도(base map)’에 적용될 문자 스타일(글꼴), 그림 표지(그림 싸인물) 등과 같은 ‘표준 지도 요소’를 도안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허 원장은 관광안내지도마다 주제가 명확하지 않고 지자체마다 각기 다른 문자 스타일, 그림 표지 등 표준 요소들을 사용하다보니 해마다 문제를 해결한다고 고치고 새로 만드는 데만 전국적으로 1000억 원에 이르는 국고와 지자체 재정이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허 원장이 지적하는 두 번째 문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관광안내표지판이다. 그는 관광객 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관광안내표지판에 대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아무렇게나 세워 놓은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표지판 높이와 크기 규격, 문자 크기, 해설 문안, 단어 수량, 편집 디자인 등 안내 표지판에 필요한 약 50개 부문에 대한 기준들이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허 원장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시력 약자, 일반 성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디자인이 지도와 표지판에 반영돼야 하는 데 우리는 이것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디자인 측면에서도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국제적 흐름이며, 선진국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입상 표지판, 즉 지면에 세워 놓는 안내 표지판은 휠체어를 탄 이용자를 고려해 지상에서 80cm 높이로 설치해야 하고, 벽면 부착 표지판은 한국 여성의 평균 키인 160.8cm를 기준으로 삼아 약 150cm 높이에 표지판의 중심부가 오도록 부착해야 여성의 눈높이와 맞는다고 한다. 그리고 글자 크기 역시 시력 약자의 가시거리를 고려하여 10mm에서 15mm사이 크기의 고딕체로 표기해야 한다고 한다.

▲ 허 원장이 제시한 선진국의 관광안내표지판은 휠체어를 탄 사람도 쉽게 표지판에 접근하여 글을 읽을 수 있는 높이와 크기, 그리고 위치에 세워져 있다(사진: 허갑중 원장 제공).

허 원장은 선진국이 1990년대부터 학계, 업계, 정부가 협력하여 관광안내지도와 안내표지판의 선진화를 이룩한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이들도 거의 없고 이 분야에 관심도 없어 국제 표준화 사업에 착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근거로 우리나라의 관광안내지도와 안내표지판도 국제화돼야 하고 정부가 나서야 우리나라 관광이 선진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관광도 비즈니스의 한 영역”이라며 “관광객들이 원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안내지도와 표지판을 제작, 설치해야 비로소 관광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안내지도 담당자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 “허 원장의 의견 모두를 하나하나 반영할 수는 없으나 꾸준히 개선을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6월부터 전국의 관광안내표지판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문제점이 발견되면 개정할 예정이라고 담당자는 덧붙였다.

허갑중 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건설교통부 등 각 부처의 자문위원, 국제표준화기구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3년 상반기 방한 외래 관광객 잠정 통계에 따르면 한국을 찾은 관광객은 약 553만 명으로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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