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게 풍족해 비만과 고지혈증 등 각종 병이 창궐하는 시대다. 어르신이 과거 밥 대신 물로 배를 채웠다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 삼아 할 수 있는 것 역시 이제는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하루 세 끼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 시대의 '청춘'이라 불리는 2030 청년층이다. 이들은 '돈'과 '시간'이 없어 밥을 챙겨 먹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졸업을 앞둔 A 씨는 학원비를 모으기 위해 음식점에서 사 먹던 6500원짜리 한 끼 대신, 편의점에서 1000원짜리 빵과 1+1 하는 차를 사 먹었다. 그는 “허리띠 졸라맨다는 표현을 쓰는데 저는 목숨 줄을 졸라매고 있다”며 "건강이 나빠질 걸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의 대학 4년은 수업 아니면 아르바이트가 전부였던 만큼 이력서를 채울만한 스펙은 전혀 없다. A 씨는 "주변 사람들을 보니 취직하려면 적어도 자격증이나 어학 점수는 기본이더라"라며 "그런데 학원비나 응시료가 너무 비싸 밥값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지원 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부모님이 마련해준 원룸을 제외한 모든 비용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하는 그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스케줄이 빠듯하다. 오전에서 오후로 이어지는 강의와 아르바이트에 점심 먹을 시간이 없다는 그는 "어쩌다 보니 하루 한 끼를 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마저도 혼자 먹는 탓에 늦은 시간에 햄버거, 치킨, 피자 등을 먹는다는 그는 "요리 도구들을 샀지만 주말 한 끼 만들 때 아니면 쓸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시간이 없다”는 영진(29) 씨는 올해도 취업을 하지 못했다. 취준생 이름표를 단 지 2년이 되었을 무렵, 영진 씨는 부모님 댁을 나와 학원가로 왔다. 그는 "매 끼니를 챙겨 먹을 시간도 돈도 없다.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릴 수만은 없어서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삼각김밥·도시락·햄버거 등은 판매 시간이 지나면 폐기 처리돼 아르바이트생이 먹을 수 있기 때문. 그는 "편의점 폐기가 많이 나오는 날이면 식비 지출을 전혀 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말했다.
시간과 지출을 줄이기 위해 밥값을 줄이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월세나 통신비는 줄일 수가 없기 때문에 밥값을 줄인다. 낮은 비용에 그나마 든든한 음식을 찾다 보니 건강하지 않은 음식들로 불규칙하게 배를 채우게 되는 만큼 청년들의 건강 역시 우려할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 2월 청년유니온의 조사에 따르면, 청년 구직자 중 85%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 밥값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은 "식비의 절대적 수준이 절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걸 보면 청년 구직자의 경제적 빈곤이 영양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발표된 청년 구직자들의 월평균 식비는 23만 원이었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20~30대 청년층의 초고도 비만율은 최대 6배 이상 급증했다.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20대 남성과 30대 여성의 초고도 비만율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고, 초고도비만 증가율도 청년층이 가장 높았다.
청년유니온 김영민 정책팀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구직하고 있는 청년들이 가장 많이 지출하고 있는 게 식비랑 주거비인데 주거비 같은 경우는 줄이려고 해도 줄일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 식비를 먼저, 당장 자기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식비니까 식비를 먼저 줄이게 되는데 식비의 수준도 사실은 이미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경제에 따르면, 이신혜 서울시의회 의원은 기존 정책들이 식비 지원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의원은 "서울시 청년 수당이나 성남시 청년 배당을 지역 전통시장이라든가 지역 영세업체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지역 쿠폰이나 화폐로 지급하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동시에 식비 지원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