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무거운 취업준비생, 스펙 준비에 SNS 관리까지...취업 지장 있을까봐 정치색 글 지우기도
취재기자 신예진
승인 2017.12.1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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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코리아, 기업 인사 담당자 73.7%가 구직자 SNS 확인 / 신예진 기자
과거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지휘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SNS는 시간 낭비’라는 유명한 격언을 남겼다. 이후 유명인사 등이 SNS를 통해 논란이 일 때마다 사람들은 퍼거슨의 말을 되새기곤 했다. 그러나 사회의 한 구석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SNS를 관리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60만 명의 한국의 취업준비생들이다.
지난 학기 졸업한 취준생 권모(25) 씨는 얼마 전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권 씨는 주변에서 SNS 활동을 수차례 권유받았지만 휴대폰에 일상이 얽매일까봐 줄곧 이를 꺼려왔다. 하지만 기업들이 이력서에 SNS 주소 기입을 요구하자, 권 씨의 선택권은 사라졌다. 권 씨는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어 넣으려고 애쓰는 상황에서 SNS 계정 관리는 필수가 돼버렸다”며 “자격증 따기도 바쁜데 인스타그램까지 관리하려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대기업 입사를 희망하는 박모(27) 씨는 페이스북에 켜켜이 쌓아 올린 글 중 일부를 눈물을 머금고 삭제했다. 특히 정치색이 드러나는 글들은 단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다. 박 씨는 “기업의 인사 담당자가 내 SNS를 확인하고 면접도 보기 전 색안경을 낄까 걱정됐다”며 “게시물을 삭제하며 ‘내 사생활도 없나’ 싶어 자괴감에 들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기업은 취준생들이 슈퍼맨이 되길 바라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기업이 응시생들의 SNS 주소를 요구하자, SNS 검열을 시작한 취준생들의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기업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SNS 계정을 새로 생성하거나, 구직용 계정을 따로 두거나, 과거 글을 삭제하는 등의 SNS 관리에 들어갔다. 대외 활동과 자격증 시험공부 등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로 쉴 새 없던 취준생들에게 기업이 SNS라는 숙제를 더 추가한 셈이다. 한국의 취준생들을 두고 ‘슈퍼맨’이라고 칭할 만하다.
취준생의 SNS 활동을 두고 온라인 취업 카페에서는 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는 기업의 SNS 주소 요구를 비난하는 취준생들의 글이 다수다. 그중 SNS 관리로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밝힌 한 네티즌은 취준생들의 불평에 반박했다. 그는 “지원하려는 분야에 맞게 여러 개의 SNS 계정을 만들어 입사를 준비했다”며 “대외 활동이나 봉사활동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상황에 맞게 잘 사용했다”고 귀띔했다.
취준생들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실제로 기업들이 구직자의 SNS를 참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사담당자의 73.7%가 구직자의 SNS를 눈여겨본다고 답했다. 특히 공기업 인사담당자의 64.3%가 ‘지원자의 SNS 내용 및 SNS 활용 능력을 채용 결정에 참고한다’고 응답했다. 해당 조사는 기업 인사담당자 372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한편, 취준생의 일상이 평가의 대상에 놓였다는 비판에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뽑기 위한 과정”이라고 해명했다. SNS가 지원자의 인성, 인맥, 관심사 등을 확인하기에 용이하다는 것. A 기업 인사 담당자는 “지원자가 자기소개서에서 밝힌 내용과 SNS 활동을 비교하기도 한다”며 “가끔 과거를 과대 포장하거나 거짓말을 한 지원자를 SNS 확인 후 솎아내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와 달리, B 기업 인사 담당자는 “지원자가 본인이 희망하는 분야와 관련된 SNS 활동을 이어왔다면 기업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다”며 “그러나 SNS 활동 내역이 지원자의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오해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게시물들은 비공개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