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영화를 볼 권리가 있다. 장애인 인권유린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개봉했을 당시, '장애인정보문화누리'의 활동가 김철환 씨는 “장애인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음에도 정작 장애인들은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시청각 장애인의 영화 관람권을 호소하는 청원 글을 올려 다수의 지지를 받은 바 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건물 구조를 개조하는 것에서부터 여가생활까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배리어프리’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배리어프리 운동은 장애물을 뜻하는 영어 배리어(barrier)와 벗어난다는 뜻의 프리(free)의 합성어다. 배리어프리 운동은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건축물의 문턱을 없애자는 내용이 담긴 ‘장벽 없는 건축 설계’라는 건축학 분야 보고서에서 유래된 운동이다. 이렇듯 장애인이 동선이 편하도록 건물을 개조하는 식으로 이뤄져 왔던 베리어프리 운동은 현재 영화, 게임 분야 등 ‘여가 생활의 장벽까지 허물자’는 것으로 그 영역이 확대됐다.
기존의 영화를 시각과 청각, 둘 중 하나만 의지해 관람해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영화관을 가는 것을 꺼리는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배리어프리 영화’가 등장했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기존의 영화에 대사, 음악, 소리 정보를 알려주는 자막을 삽입해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게 한 영화다. 쉽게 말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나레이션으로, 청각장애인에게는 한글 자막으로 영화에 대한 추가 정보를 제공해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장애와 상관없이 모두 다 함께 즐기는 영화 축제’라는 슬로건 아래, 매년 11월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배리어프리 영화는 아직 일반인들에게 인지도가 낮을 뿐더러, 개봉되는 영화 중 극히 일부만 배어리프리 버전으로 제작되는 데다 상영관도 극히 일부라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올해 처음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신과 함께> 역시 개봉일이 한참 지나서야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영화가 개봉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48) 대표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보지 못하는 것은 문화적 교류에서 배제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최신 영화를 제 때 보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의 권리”라며 시청각장애인이 영화관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볼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게임 산업 분야에서도 시청각장애인들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제작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흔히 사이보그 올림픽으로 불리는 사이배슬론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한 '풀메탈러너'가 대표적이다. 사이배슬론은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들이 최첨단 보조 로봇을 이용해 역량을 겨루는 대회로, 인조인간을 뜻하는 사이보그(cyborg)와 경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애슬론(athlon)의 합성어다. 사이배슬론의 경기 종목은 휠체어 경주, 전기 자극 자전거 경주, 로봇 의족 경주 등 총 6개로 나뉜다. 이에 영감을 얻은 게임 풀메탈러너의 캐릭터는 의족을 착용한 채로 달린다.
풀메탈러너 이용자는 음악의 박자와, 박자에 맞춰 들리는 가이드 목소리를 듣고 화면을 터치해 장애물을 피할 수 있다. 해당 게임은 눈감고도 할 수 있는 게임으로 잘 알려져, 미국의 시각장애인 커뮤니티에 소개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풀메탈러너 제작 회사 ‘다누온’의 대표 김용태 씨는 게임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사회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면 그들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며 계속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콘텐츠를 개발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여러 분야에서 배리어프리에 적합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지만, 아직 대중적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게임하기, 영화관람 등 다양한 문화생활은 장애인의 재활 의지를 고취하는 중요한 역할도 하는 만큼, ‘베리어프리’ 콘텐츠에 계속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