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인터뷰 시점이 2012년인 까닭에 일부 내용은 현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국민 야구해설가 허구연(67). 유년시절 야구선수로 출발,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전문 해설가’의 영역을 처음 밟은 정통 야구인이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의 속살을 속속들이 체험하고, 6권의 야구 전문서를 발간한 현장-이론 겸비형 야구 전문가다. 프로야구 출범 30년이 훨씬 넘어서고 ‘허구연을 모르면 간첩’이란 세평에서, 국민 속에 파고든 그의 뚜렷한 발자취를 본다.
그는 해설가를 넘어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 등을 맡았다. 야구정보 업체를 운영하는 ‘엘리트 야구인’의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한국야구 발전에 남다른 노력과 열정을 쏟고 있다. 온 국민을 상대로 야구 발전방안을 설파하며, 온 나라를 무대 삼아 온 몸으로 뛴다. ‘부산사람’의 특질 중, ‘갱상도 사투리’의 진한 뒤끝과 ‘한다면 하는’ 끈질긴 집념을 도저히 숨기지 못하면서-.
“나는 고향 부산 떠나 살 수 없다”
먼저, 페이스북 친구들이 전해 준 얼음깨기 질문이다. “당신은 부산사람인가?” 그의 40여 년 타향살이를 더듬으며, ‘부산사람’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난 당연히 부산사람이다. 부산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지금도 부산친구들을 만나 가슴 속 얘기를 나눈다. 나는 평생 고향(부산)을 떠나선 살 수 없는 사람이다.” 그의 ‘뿌리의식’이 예사롭지 않은 만큼, 그의 부산생활부터 얘기한다. 그는 원래 빼어난 야구선수였다. 대신초-경남중-경남고를 다녔다. 부산야구의 명문 코스다.
그가 유년-청소년기를 보낸 곳은 서구 대신동 ‘운동장 일원.’ 야구, 축구, 복싱, 레슬링 같은, 운동이란 운동은 다 보며 자랐다. 그 때 대신동은 종목별 경기장이 밀집한 스포츠 타운이었으므로. 학창시절의 경험은 그의 야구인생에 큰 도움을 줬다. 그에게 고향은 언제 생각해도 포근한 곳이다. “학교가 있던 구덕산 기슭, 그 숲 속의 수원지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예뻤다”는 감상적 멘트를 전할 만큼.
야구 해설∙야구발전 활동에 “정말 바쁘다”
오직 야구 속의 삶, 그는 “한 마디로 시즌∙비시즌 통틀어 정말 바쁘다.” 그는 지난 20여 년을 정말 쉬는 날 없이 뛰었다고 단언한다. 그도 그럴 듯 하다. 시즌에 들어서면 금, 토, 일, 사흘은 ‘해설위원’을 맡고 있는 MBC SPORTS+, 더불어 일정에 따라 MBC-TV에서 야구해설을 한다. 1주일에 4번, 밤늦게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그 밖에도 여러 야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의 소임도 막중하다. 그의 표현대로, ‘프로-아마를 통틀어 야구계에 도움 주는 일’엔 경계가 없다. 야구 경기장∙동호인 야구장 건립, 프로야구 새 구단 창단, 아마야구 팀 확충..., 많은 과제에 야구계 안팎을 넘나드는 부분이 많다. 뛰어야 할 영역은 그만큼 넓다.
야구해설가 허구연. 그는 MBC의 스카우트로 야구 해설가에 데뷔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해설을 부탁한다”는 청, 정규시즌 시작 때 “한 번만 해 달라”는 청을 다 거부했다. 야구 해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시절, 특히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그는 대학강의를 맡고 있으면서 곧 전임교수가 될 신분이었으므로.
MBC는 거절 못할 인맥을 동원, 그를 해설가로 포섭한다. 그 때 나이 31세. 단, 그는 해설 일당 3만 6500원 시절에 연봉 2200만 원을 요구했다. 당시 OB의 박철순, 해태의 김봉연 같은 스타들의 연봉과 비숫한 수준이다.
신출내기 해설가의 간 큰 요구에 MBC는 뒤집어졌지만, 그의 논리는 뚜렷했다. 이전 중계는 아마추어, 이제는 프로 시대 아닌가. “해설가가 자료조사도 하고 야구에 전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그러려면 A급 선수만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MBC는 ‘A급 선수’수준의 연봉을 약속해 줬다.
야구 해설? 흥미성∙진지함 잘 섞어야
그에게 ‘야구 해설가’라 뭔가? ‘시청자에게 플레이의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 ‘누구나 야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풀이해 주는 사람’이다. 특히 자기만의 색깔이 필요하다. 지금 야구중계 시청자의 폭이 한껏 넓어진 만큼 중계 컨셉을 잘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중파는 대중적으로, CATV는 전문적으로..., 이런 컨셉이다.
“해설가는 처음 야구를 접하는 팬과 마니아층 사이의 간격을 잘 조정해야 한다.” 그의 지론이다. 스포츠는 즐기는 것, 당연히 위락적 요소와 야구 본연의 진지함을 적절히 섞을 수 있어야 한다. 듣고 보면, 이게 허구연 해설의 특징이요 매력일 듯하다. 인터넷을 보면, 그는 ‘감독 머릿속 들여다보듯 작전 상황을 예측 잘하기로 유명’하다. “역시 많이 공부하고 게임에 몰입하면 영감이 떠오른다”, 그의 겸손한 설명이다.
‘많이 공부하고’-그 평범한 말의 실체는 결코 만만찮다. 그는 야구 DB업체를 운영한다. 아침 일찍 출근, 미국 메이저리그 15게임을 두루 본다. 오후 6시면 일본야구도 대부분 본다. WBC나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서 미국이나 일본 선수들의 장, 단점을 꿰뚫는 것도 이런 노력의 결실이다. 그는 1984년 미국 플로리다의 LA 다저스 캠프에서 한 달을 살아본 사람이다. 한국인으론 처음이다. 이 때 한국야구의 후진성을 쇼크 받듯 깨우쳤다. 귀국해선 당시 청보의 감독과 롯데의 수석코치로 일선 지도자를 경험했지만, 그 후로도 해마다 미국 구단의 베이스캠프를 순회한다. 야구 전문가로서, 그만큼 미국야구 공부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한국 야구, 양적 인프라∙저변 확대 절실
‘야구 전문가’ 허구연에게 한국 프로야구의 오늘을 묻는다. 프로야구는 ‘한국 최고 프로 스포츠’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왜 그런가? 그는 쉽게 설명한다. 야구는 다른 종목에서 찾기 힘든 특징들을 갖고 있다고. 우선 1주일에 6일, 1년에 130-140게임을 즐길 수 있다, 공수교대 체계가 있는 야구경기에는 광고를 많이 소화할 수 있다(상업성 높다), 하루 5-6시간을 쉽게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다, 연인과 친구, 4인 가족이 가도 큰 돈이 들지 않는다 등등.
승부가 언제 바뀔지 모를 횟수제한 체제여서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고, 공수교대 때 함께 응원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야구만의 특징이다. 젊은 여성 팬까지 야구에 취하며 즐겁게 놀 수 있는 곳, 바로 야구장이다. 그는 부산 사직구장에 ‘세계 최대의 노래방’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야구의 높은 인기는 계속 갈 것이다. 부산이야 워낙 야구를 좋아하는 도시이니 말할 것도 없고...”, 그는 야구장 시설이 나아지면 관중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 프로야구는 이제 세계의 일원이다. 한국야구가 선진야구에서 더 배워야 할 점은 없을까? 있다. 지방정부는 야구장 운영기법을, 구단은 경기시간 단축과 위락(엔터테인먼트)성 강화 기법을 더 익혀야 한다. 선수는? 역시 일본의 섬세한 기술이나 데이터 야구보다는 미국의 스피드와 힘을 더 배워야 한다. 그는 기억한다. 한국야구가 WBC나 올림픽 같은 국제경기에서 일본을 눌렀을 때, 일본은 정말 정신적 공황상태였다고. 한국야구가 일본과 대등한 수준을 확보한 것은 ‘일본을 따라잡자’ 대신, 미국식 ‘힘의 야구’를 익힌 결과라고. 다만, 양적 인프라 보강, 피라미드형 저변 확대는 한국 야구의 묵은 숙제이다.
“부산, 롯데에 구장 값싸게 못하나?”
‘허프라’-허구연의 별칭이다. 야구 인프라를 보강하는데 그만큼 열정을 쏟는데서 얻은, ‘허구연-인프라’의 합성어다. 별칭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스스로 그렇다고 느끼고 있고....” 그만큼 그는 평소 방송을 통해, 정부 및 자치단체 정책결정권자를 만나가며, 야구 인프라를 보강할 것을 설득하고 있다. “자치단체, 정말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는 강건하다.
뉴욕시가 야구전용 양키스타디움을 짓는데 1조 7000억 원을 썼다. 구단으로부터 받는 임대료는 연 10달러, 상징적 금액이다. 뉴욕은 뉴저지로 옮겨가려는 ‘뉴욕 양키스’를 한사코 붙들었다. 뉴욕의 엄청난 자부심과 양키즈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생각한 것이다. 메이저 리그의 시장규모는 연 500억 달러, 남아공 월드컵의 350억 달러보다 크다.
생각해 보라. 롯데 자이언츠가 부산에서 68게임을 갖는다고 할 때, 부산시민 150만 명은 인기 있는 공연을 즐기는 셈이다. 얼마나 고마운가? 아, 조용필이 노래 불러줄 때 “돈 내놔라” 하겠나? 왜 국립∙시립으로 공연장∙도서관은 지으면서 스포츠 투자는 그리 인색한가. 롯데가 다른 도시로 옮겨간다면 어떻게 되겠나? 부산시민이 용납하겠나? 부산시가 야구장 임대료 4-6억을 더 갖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부산시는 롯데에 야구장을 상징적 금액으로 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아, 과연 야구도시 부산이구나!’ 할 만큼 통 크게 나서야 한다.
롯데, 구단은 투자 늘리고 선수는 기질 다져야
‘롯데’ 얘기가 나오니, ‘롯데’의 성적 얘길 안할 수 없다. “왜 근래 성적이 좋지 않은가? 우승하려면 무엇을 더 챙겨야 하나?” ‘털어놓고 말해서’를 앞세워 질문하니, 답변 역시 솔직하다. 뼈대는 구단의 전력투자 확대와 선수단의 기술 및 정신 보강.
롯데는 ‘투자에 인색하다’는 원성을 딛고, 최근 여러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FA를 통해 홍성흔 같은 선수를 영입하고, 김해 상동구장도 건립했다. 최근 몇 년간 4강에 든 것도 그 결실이다. 그러나, 구단은 선수층을 강화하기 위해 더 투자해야 한다.
선수단은 팀 칼러부터 ‘확’ 바뀌어야 한다. 롯데 플레이에 관중은 열광하지만, 뜯어보면 차분하고 치밀하고 짜임새 있는 그런 야구가 부족하다. 이길 때 '개 패듯 패고‘, 질 때 ’왕창 깨지고‘, 그런 패턴으론 결코 우승 못한다. 선수들께 사석에서 충고한다. “겉멋 들지 말라, 붕- 뜨지 말라”고. 롯데는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끈질긴 야구를 위한 정신력 강화 부분을 더 보강해야 한다. 한 마디로 ’독한 야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부산 팬의 열광적 성원에 우승으로 보답할 길을 찾아야 한다. 롯데자이언츠의 응원문화가 부산의 히트상품으로 큰 이유는? 그는 “부산사람 기질은 야구와 딱 맞아 떨어진다”고 단언한다. 환경적으로, 윗대로부터 야구 얘기를 많이 듣고 자라왔다. 일본과 가까웠던 덕분이다. 부산의 ‘대표학교’들이 야구부를 육성했고, 두루 강했다. 단체응원을 많이 가고, 주변에 야구를 전파하고..., 쉽게 야구와 가까워질 수 있는 도시다. 이 야구 열기는 자자손손 끈질기게 이어질 것이다.
선진야구를 꿰뚫고 있는 허구연, 그가 보기에 부산의 응원 형태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하다. 우선 관객 모두 함께, ‘자발적’이다. 미국이 음향시설 위주, 일본이 계속 외치기 패턴인 반면, 롯데 응원은 다양하다. 음악과 댄스, 치어리더와 키스타임, 밀리터리 룩(military look) 같은 이벤트까지, 정말 재미있는 한국의 응원문화, 부산이 리드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해설가로, 야구 발전∙롯데 우승 기다려”
현장 출신 야구전문가 허구연. 야구 현장에서 그를 찾는 손길은 많다. 일선 지도자를 지낸 뒤, 4차례의 감독 제의에, 최근 야구단 경영책임자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활동영역을 제한하고 있다. ‘역량상 감독 스타일은 아니고, 해설가로 기여하는 게 가장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 무엇보다 야구계 발전을 위해 최선의 인사가 최적의 분야에서 뛰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굳이 ‘고향인 부산의 롯데 감독에게 해주고 싶은 당부’를 묻는다. “롯데 감독은 아무나 맡을 수 없는 참 힘든 자리”라고 그는 전제한다. 그러면서 애정을 듬뿍 담은 몇 가지 기대를 덧붙인다. 롯데는 누가 뭐래도 한국 최고의 구단이다. 팬은 열광적이고, 마케팅은 잘하고, 이제 야구만 잘하면 된다. 일단 ‘이기는 야구’를 해야 한다. 선수 누구나 제 미션은 잘 안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후회하지 않도록 예방부터 철저히, 그래서 화려하든 않든, 독한 승부를 펼쳐야 한다.... (실상 원고에 다 정리해 넣지는 않지만, 그가 롯데를 얼마나 아끼고, 롯데의 이대호, 강민호, 전준우, 손아섭 같은 선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인터뷰어는 이 인터뷰를 통해 실감한다).
허구연, 한국 야구계의 특급 로비스트...
인터뷰도 막바지다. 알고 보면 그도 인터뷰로 세월을 보낸 ‘인터뷰 전문가’일 터, ‘꼭 강조하고 싶은 바’를 다시 묻는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평소 지론을 새삼 강조한다.
제발 야구를 단순한 스포츠 경기로 보지 말라. 아, 미국은 메이저리그 야구를 ‘내셔널 패스타임(National Pastime)', 곧 ’전 국민의 여가놀이‘라고 하지 않나? 그만큼 삶의 일부분이라는 거다. 정부∙지자체도 그저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대형 이벤트에 매달리지 말고, 온 국민이 즐기는 대중적 생활 스포츠를 좀 돌아보라.
온 국민이 하루 1시간 운동하면 국가의료비 34조를 17조로 절반을 줄일 수 있다. 국민의 50%만 스포츠를 즐겨도 9조 원을 절감할 수 있다. 앞으로 자라나는 청소년부터 사이버 공간을 찾고,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망칠 때, 그제서야 의료비를 준다는 게 무슨 소용 있나? 우리나라? 동호인 야구팀 1만-2만 개에 야구장 고작 140개(<2009년 야구장 백서>)다. 부산시도 마찬가지다. 체육을 시민 여가놀이+건강증진 측면에서 인식해 달라. 제발 체육에 대한 투자에 좀 과감해 달라.
결국, 야구 전문가 허구연의 목표는 단순하다. 야구 인프라(운동장) 확충과 야구팀 늘리기. 그는 이 목표를 위해 오직 야구해설에 힘을 다하며 온 나라를 뛰고 있다. 그것도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며 튼튼하게 다져온 건강을, 이제 슬금슬금 까먹어가며” 말이다. 그래도, 그는 늘 행복하다. 매일 힘주어 말하는 그 ‘야구 발전론’이 나날이 결실들을 거두고 있고, 그 과정에 그의 열정도 켜켜이 쌓여 있으므로. 인터뷰 소감, 허구연은 천상 ‘온 국민과 정부∙지자체를 향한 한국 야구계의 초특급 로비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