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던 기간에 광복동 일대는 시끌벅적했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지하철역 1호선 남포역에서 쏟아져 나온다. 비오는 날에도 남포동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시민들과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그 많은 사람들은 쇼핑을 위해, 또는 관광명소를 찾기 위해 바쁘다. 그리고 그들은 먹을 곳을 찾기 위해서도 바쁘다. 남포동에 온 그들의 배를 흡족하게 채워주는 곳은 작은 골목이다. 그 작은 골목은 그래서 ‘남포동 먹자골목’으로 불린다.
이 곳 먹자골목은 부산의 광복동과 남포동 시장가에 위치해 있다. 이 먹자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펼쳐지는 광경은 21세기 부산의 최대 번화가인 남포동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모습을 보이다. 장사하는 할머니들은 연신 “앉으이소, 앉으이소”를 외친다. 손님들은 구성진 사투리를 들으며 원하는 좌판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는다.
먹자골목은 인심이 후하다. 이곳에서는 부산의 대표적인 먹거리를 2000~30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곳에는 TV 프로 <1박 2일>을 촬영할 당시, 이승기 씨가 먹어 더 유명해진 비빔당면부터, 간단하게 요기를 채울 수 있는 비빔국수, 파전 충무김밥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손님들이 주문하고 음식을 먹고 있으면, 판매하는 노점상 할머니들이 말을 건넨다. “국물이 어떻노? 맛이 괜찮나? 더 줄까?” 그래서 이곳은 도심에 있지만 각박한 도심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섬 같은 곳이다.
먹자골목은 한국전쟁 통에 골목 근처에 살고 있던 피난민 아낙네들이 집 안의 음식을 가지고 나와 팔던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땅히 돈벌이가 되는 일을 찾지 못하던 시절, 우리네 어머니들은 짚 앞으로 나와 가족들이 먹는 ‘집 밥’을 저렴하게 팔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해 60여 년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이곳에서 음식을 팔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령층이 높다. 좌판 상인들은 이곳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의 불씨가 꺼져가는 것만 같아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이곳에서 30년 동안 노점상을 해왔다는 김순례(78) 씨는 “부산 사는 젊은 사람은 맨날 보니까 그런가 잘 안 오고, 멀리서 놀러온 학생들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정춘심(70) 씨도 이곳에서 음식을 판 지 오래됐다. 그는 “여기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60년 동안 전통적으로 해온 곳 아이가. 근데 요새는 외국 관광객만 오지 우리나라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 가 없다”고 말했다.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흥행한 뒤로 남포동은 부산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영화 덕분인지 시장에는 활기가 여전했고, 시장 바로 앞에 위치한 먹자골목도 2, 3년 전에 비해서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서수민(21, 서울 강남구) 씨는 서울에 살고 있지만 부산이 고향이라 항상 부산을 그리워한다. 그는 “가끔 부산에 내려오면 이곳을 찾아요. 이 골목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이 자리에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전통시장과 골목이 활성화되어야 경제가 살아날 테니까요”라며 다 비운 그릇을 주인에게 건네고 일어섰다.
남포동은 지금 세대보다 기성세대가 20대였던 70, 80년대에 더 인기 있는 데이트 장소였다. 김정숙(45, 부산시 금정구) 씨는 가끔 시간이 날 때 남포동을 들른다. 그의 고등학교 시절, 남포동은 부산 고등학생들의 집결지였다. 그는 “요즘 젊은 친구들은 남포동에 대한 추억이 없을 걸? 나는 학교 마치면 먹자골목에서 김밥도 사먹고 남자 친구랑 데이트를 했는데, 요새는 남포동보다 서면이 더 핫(?)하다”고 말했다.
60여 년 전, 전쟁 통에서부터 시작된 먹자골목은 멋들어지게 지어진 고층빌딩들을 병풍 삼아 아직까지 굳건히 존재한다. 가끔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보다는 사람들 북적대는 시장 통의 골목에서 국수 한 그릇 하는 것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주저없이 먹자골목에서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