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은 그림을 그려도 그 작품을 전시할 일은 드물다. 학생 때 할 수 있는 전시는 대부분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장소에서 열리는 졸업 작품 전시가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동의대 미술학과에 재학 중인 강덕현(25) 씨는 주기적으로 자신만의 특별한 전시회를 갖는다. 그것도 전시관이 아닌 길거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그는 올해부터 1년에 네 번, 길거리에서 자기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시를 위한 작품 설치부터 팸플릿과 엽서 제작, 큐레이터 역할을 모두 혼자서 해낸다. 길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회에서는 지나가던 비둘기, 강아지, 외국인, 남녀노소 모두가 관람객이 된다.
지금은 잠시만 집에 있어도 몸이 근질거리는 사람이 됐지만, 1년 전만 해도 그는 TV를 좋아하는 아주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그때의 자신을 “틀에 갇혀 살았다”고 표현했다. 그때 그는 그림을 그렸어도 능동적으로 해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학교에서 2학년까지는 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사실 그에게 디자인학과 선택은 하나의 타협점이었다. 그는 미술을 좋아했지만 그림 그리는 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서 보다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디자인학과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막바지에 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해서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돌아볼수록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디자인이 아니라 그림이었다.
2014년 군대를 제대한 뒤 강덕현 씨는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미술학과로 전과했다. 그에게 미술학과에서 처음 접한 붓과 캔버스는 그자체로도 그에게는 새로움이자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런 강덕현 씨에게 교수들은 학생 때는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덕현 씨는 “‘학생이니까’라는 마인드보다는 ‘이것은 내 작품’이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강덕현 씨의 그림에는 정확한 장르가 없다. 그는 “현재 내 안에 수많은 감정들, 또는 또 다른 나를 시각적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내 그림은 추상화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렇게 미술학과로 전과한 후 1년 동안 그가 그린 작품이 쌓였다. 2015년 초, 강덕현 씨는 그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전시회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비평으로부터 배우고 싶었다. 교수님들은 전시회를 열고 싶으면 카페나 전시관을 대여하라고 권했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떠오른 것이 거리였다. 남들은 강덕현 씨에게 틀에 박힌 전시장을 거부해서 밖으로 나온 것이냐고 묻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전시할 공간이 없어서 길거리로 나온 것이다. 강 씨는 “내 그림을 보여드릴 수 있는 공간이라면 카페든 허름한 집이든 쓰레기장이든 상관없다. 그렇기 때문에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첫 전시를 앞두고 적합한 장소를 찾던 중, 부산대 근처 온천천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온천천은 남녀노소 누구든 오가는 공간이라 다양한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또 온천천 다리 밑의 분위기는 그의 작품을 전시할 공간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첫 전시는 동래 온천천 다리 밑에서 지난 1월 2일부터 3일간 열렸다.
강덕현 씨는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지인들만 방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팸플릿과 엽서를 각각 50장씩만 만들었다.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전시였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많이 올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하루 만에 팸플릿과 엽서가 모두 소진돼버린 것이다. 첫 전시회 동안 방명록에 글을 쓴 사람만 해도 100명이 넘었다. 전시회를 본 사람들은 이런 공간에 전시를 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강 씨는 “첫날 전시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뒤 잠이 오지 않고 계속 심장이 두근거렸다”며 “그날부터 전시회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특히 전시 중 강 씨 기억에 남는 사람은 돈을 건넨 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또래처럼 보이는데 전시회를 보고 좋아서 드리고 싶다. 더 드리고 싶지만, 지금 지갑에 1만 5,000원밖에 없다”며 받아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강 씨는 상업적 허가를 받지 않고 거리에서 하는 전시였기 때문에 돈을 받을 수 없다고 재차 거부했지만, 받아달라는 그의 간절한 부탁에 돈을 받고 말았다. 강 씨는 아직까지 그 돈을 못 쓰고 가지고 있단다.
해운대 해변로 부근에서 시작된 두 번째 전시는 4월 25일부터 이틀간 진행됐다. 두 번째 전시회에서는 거리 전시에서만 가능할법한 황당한 일들이 있었다. 원래 이틀간의 전시가 광안리 해변로에서 진행되도록 계획돼 있었지만 전시 전날 광안리에서는 큰 축제가 열렸다. 포스터까지 다 뽑은 상황이었지만 광안리 전시는 불가능했고, 어쩔 수없이 그는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전시 장소를 바꿔야만 했다. 그렇게 찾은 해운대 해수욕장 전시도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전시준비를 마친 강 씨에게 순찰 중이던 해운대 시설관리과 관리자가 찾아와 민원이 들어오면 그림을 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편한 마음으로 시작된 전시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시민들은 그의 그림을 좋아해 주었고 작품을 철수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거리 전시라서 가능한 일들도 많고 재밌는 점도 많지만 하루에 많게는 12시간 이상씩 밖을 지키고 있는 일이 힘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해운대에서 진행된 두 번째 전시까지만 해도 단순히 거리에 그림을 거는 것이 전시의 전부였다. 그러던 중 강덕현 씨는 거리에 그림을 두는 것이 전시장 안에서 하는 전시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나은 것이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거리의 다양한 구조를 전시에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동래 온천천에서 7월 27일부터 시작된 세 번째 전시부터 강 씨는 다리, 계단 등의 공간들을 작품으로 활용해서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는 위 사진처럼 물가에 그림을 던져 넣고 그 그림을 기둥에 고정시켜 그림을 전시했다. 또 길가에 개미 모양의 작품으로 설치 미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 변화가 있고부터 강 씨의 작품에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을 세상이 알아주기라도 하듯 강 씨는 최근 서울에서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페이스북 페이지 ‘열정에 기름 붓기’를 통한 청춘 작가 모집에 강 씨가 뽑히면서, 그는 용인 문화재단에서 개최한 ‘Art&Talk Concert-청춘, 밤에 뜨는 열기구 展’에 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열정에 기름 붓기’를 통해 강 씨의 거리 전시회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해당 게시물은 좋아요 수가 2만 6,000건을 넘었다. 강 씨의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그 게시물을 본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특강 요청까지 들어오기도 했다. 강 씨는 “나는 특강을 할 만한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예술을 말하는 것도 부끄럽다”며 “다만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수평적인 관계에서 전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처음 미술을 한다고 했을 때, 강덕현 씨의 부모는 이를 반대했다. 하지만 강 씨가 꾸준히 전시를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부모들은 이제 누구보다도 그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됐다. 사실 강 씨도 그림으로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성공, 돈, 명예를 포기하면서 미술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강 씨는 미술을 하다 실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하고 싶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기에, 나는 현재 내가 하는 일에 후회 없고 그만큼 나에게 떳떳한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덕현 씨의 단기적인 계획은 앞으로도 자신의 꿈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게 전시와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처음 전시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이제 강 씨의 전시 목표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도 나로 하여금 용기를 얻고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을 수 있다면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덕현 씨는 현재 12월에 열릴 길거리 전시를 준비 중이다. 이번 전시는 서울 홍대에서 12월 1일부터 14일까지 ‘불안’이라는 타이틀로 14일 간 열린다. 화가 강덕현 씨의 인스타그램 계정 ‘deokkku’를 검색하면 그의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