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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5제(題), 여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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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5제(題), 여섯 번째
  • 편집위원 박기철
  • 승인 2015.12.1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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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황령산 칼럼에 필자는 쓰레기와 관련된 글을 써왔다. 그 맥락을 이어서, 2015년 1월 1일부터 매일 쓰레기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올해 12월 31일까지 쓰려고 한다. 그 중에서 우리 주변의 것과 관련된 최근의 10개 꼭지를 황령산 칼럼으로 갈음한다.

324. 2015년 11월 20일. 金. 부산→서울. 걷기 좋은 날이다.

▲ 발표 현장에서 메모한 생각들

조정(mediation)을 넘는 진정(conciliation)

세미나에서 지정 토론을 맡았다. 논문제목이 ‘한국형 조정(Mediation)의 모색: 공공갈등 해소를 위한 조정의 성공조건에 관한 연구’다. 널리(弘) 알리는(報) 홍보가 아닌 공중관계(Public Relations)인 PR이 관여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연구다. 연구자는 공공갈등 해소에 관한 연구를 위해 갈등해소 전문가 30여 분과 각각 1시간에서부터 4시간에 이르기까지 심층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매우 성실한 연구다. 최근 수년간 내가 접한 수많은 연구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최고의 의미있는 연구였다. 내 토론 차례가 오자, 하고 싶은 할 말을 했다. 내 말의 핵심을 요약하면, 양편으로 갈려 첨예하게 갈등하는 문제는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합리적 이성이 작동하는 공론장(public sphere)으로도 안풀린다고 했다. 돈에 따른 이해관계 문제라면 쉽게 풀릴 수 있지만, 얽히고 설킨 구조적 감정 문제라면 인간의 본성을 맘껏 발산하는 본성장(natural ground)에서 서로 웃고 울며 취하기도 하고 노래부르고 춤추며 풀릴 때까지 같이 붙어 지내며 풀어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살풀이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발표자도 비슷한 성공사례를 들었다. 갈등을 해소하려고 중간에서 조정(mediation)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라 양측의 분노를 서로 달래며 위로(conciliation)해야 풀릴 수 있다고 했다. 조정 전략이 아니라 진정(鎭靜) 기획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문제는 싸움(戰)에서 이기기 위한 꾀(略)를 내 전략(戰略)적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쓰레기 문제해결은 공공갈등 해소보다 더 어렵다. 이 문제는 서로 달랠 명확한 대상도 없이 여기저기 전방위로 분산되어 있어 전사회 전생태를 아우러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칡(葛)과 등나무(藤)가 자연스레 얽히고 설켜 자라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갈등(葛藤)이 인간사회에 와서 지지리도 고약한 갈등이 되어 욕본다. 부디 연구자가 완성하려는 훌륭한 논문이 좋은 씨앗이 되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대립의 문제가 순리적으로 해결되어 가길 기원한다. 

325. 2015년 11월 21일. 土. 서울→수지→서울. 삼삼한 날이다.

▲ 1983년에 건축상을 수상한 건물

이제 그냥 놔두지 않을 것같은 기세

서울 교통회관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갔다. 회관 앞 팻말을 보니 서울특별시 운수단체가 공동출자하여 전 운수인의 교육과 복지 시민을 위한 봉사의 전당으로 교통회관을 세웠다고 적혀 있다. 1977년 회관건립추진위원회 결성, 1978년 3,678평의 대지매입, 1979년 건물설계 이후 1980년부터 짓기 시작해 1983년에 준공되었다. 나는 1985년에 저 건물 꼭대기 제법 근사한 식당에서 약혼식을 했다. 또 어느 날엔가는 교육장에서 택시기사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을 받기도 했다. 또 광고회사 다닐 때는 광고주가 저 건물 안에 있어서 잠시 출입하기도 했다. 오늘 오랜만에 가니 결혼식장이 있는 컨벤션 부분만 번듯하다. 여기저기 오래된 건물의 궁한 티가 퍽퍽 난다. 지하 1층 바닥은 깨진 것들이 많고 우중충하다. 하지만 건물이 완공된 1983년에는 획기적 시설, 동선설계, 건축 디자인 등으로 서울시 건축상 금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겨우 30년이 넘어 칙칙한 건물이 되어 버렸다. 마침 지인이 지나가길래 이 건물이 건축상을 받았던 건물이었다고 하니 매우 의아해 한다. 주변에 삐까번쩍하는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지금 저 건물이 요즘의 뻔하고 뻔한 커튼월(curtain wall) 공법의 획일적 유리건물들보다 좋아 보인다. 가만히 보면 지상 12층의 낮은 건물로 나름 개성이 있는 안정된 적황색 건물이다. 하지만 글로벌하게 돌아가는 이 거친 세상이 저 건물을 그냥 저대로 얌전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헐리고 거대한 건축물 폐기 쓰레기를 내놓으며 초고층 유리건물이 들어설 것같다. 바로 옆에 잠실 지하철역이 있는 송파구 중심 요지의 부동산 가치를 늘 셈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앞에 123층 건물이 있는데 여기에 그만한 빌딩이 들어서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여기 만큼은 회관 처음 지을 때 초심 그대로 복지 시민을 위한 봉사의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좀 우중충하고 칙칙하게 안보이도록 여기저기 손보아 가꾸며. 하지만 그리만 하기에 시대 풍파는 너무 드세고 거칠기만 하다.

 

326. 2015년 11월 22일. 日. 서울. 우중충하니 그렇다.

▲ 보람없이 무작정 사는 사람.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게 무척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람들과 같이 보람을 느끼는 길

매섭게 추운 어느 날 어떤 사람이 1,000원만 달라고 했다. 코 밑에 콧물이 꽁꽁 얼어 있었다. 너무 불쌍하게 보여서 2,000원을 주었다. 그런데 이 양반이 바로 앞 가게에서 소주를 사는 것이었다. 약간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저 풍찬노숙자(露宿者)가 아닌 거리노숙자(路宿者)도 그럴까? 또 배신당할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밥값 정도를 주며 밥을 사드시라고 말도 건네고 싶었지만 너무 곤하게 자길래 깨울 수가 없었다. 인간사 모두 나름 사연이 있는 법이다. 예전에 어떤 연구자는 실제로 이들과 같이 몇 달동안 먹고자고 술마시며 이야기하면서 노숙자에 관한 논문을 썼다고 한다. 이런 질적 연구는 미드(Margaret Mead, 1901~1978)와 같은 인류학자가 남태평양 섬 주민의 문화를 알기 위하여 그들 삶 속에 파고 들어가 참여 관찰하는 민속지학연구(folks study)에서 왔다. 내가 만일 노숙자들에 관한 연구를 한다면 참여하고 관찰하는 식이 아니라 협력하고 동반하는 길의 연구를 하고 싶다. 이 노숙자와 함께 길거리 쓰레기를 같이 줍고 주변 청소 활동을 같이 하면 어떨까? 물론 그렇게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게 무척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이들에게 한끼 밥을 주며 사회복지 활동한다고 자위하는 봉사활동보다 나을 수 있다. 이들과 마을 청소를 같이 하여 우리 삶터를 깨끗하게 이루어 가는데 협력하며 동반한다면 이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보람활동이다. 내가 만일 사회복지사라면 이들에게 봉사나 복지 차원의 시혜 만을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 만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랑 협력하고 동반하는 길로 가고싶다. 이는 우리 모두 함께 같이 보람을 느끼는 일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태도가 바뀌고 인식도 바뀐다. 인식을 주입해 태도를 형성하고 행동이 변화되는 통념적 순서와 거꾸로다. 이들에게 고상한 인문학 교육을 한다고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 이들과 함께 보람있는 행동의 길로 갈 때 무작정한 삶이 온전히 바뀌어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보람된 일이다.

 

327. 2015년 11월 23일. 月. 서울→부산. 가을답지 않게 뿌옇다.

▲ 일부러 불편하게 지은 이상한 건물

이상하기에 오히려 훌륭한 건축물

서울 장충동 동대입구역 근처에 이상한 건물이 있다. 웰콤시티다. 2000년에 완공되었으니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방치되어 녹슨 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저 건물은 건축전문가 100명이 선정한 해방 이후 최고, 최악의 건축물 중에서 최고 10위에 꼽혔다.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전문잡지 <SPACE>의 공동조사 결과다. 저 건물은 기능성, 편리성, 능률성으로 따지자면 최악의 건물이다. 빌라 4개 동도 아니고 네 개의 오피스 건물이 따로 떨어져 있으니 한 회사의 사무실로 쓰기에 불편할 것이다. 저 건물에서 일한 지인의 체험에 의하면 불편하단다. 창도 별로 없으니 안에서 답답할 것같다. 부동산 가치로 따져도 최악이다. 도심부인 이 곳에 고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얼마든지 건폐율을 더 크게 잡아 더 넓게, 층수를 높여 용적률을 더 올려 부동산 가치를 올릴 수도 있었을 텐데 5층 건물이다. 하지만 존재감이 범상치 않다. 범상치 않은 건축주 웰콤의 박우덕과 범상치 않은 건축가 승효상의 합작품이다. 광고회사 사장인 건축주는 회사규모를 더 키울 자신감이 충만할 때 직원 100명이 넘지 않으며, 연취급고(billing) 1000억원이 넘지 않는 회사의 사옥을 짓고 싶어 했다. 빈자(貧者)의 미학을 추구하는 유별난 건축가는 채움보다 비움이 있는 건물을 지었다. 돈을 더 많이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한 건물이 아님은 물론 그냥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한 건물을 지었다. 건물보다 그 생각이 특이하다. 그 특이함이 이 세상에서 오히려 훌륭하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넓게 더 높게를 원하는 이 시대에 더 적게 더 작게 더 좁게 더 낮게 지어졌다. 저(低) 엔트로피 건물이다. 그만큼 쓰레기가 적게 나올 것이다. 앞으로 회사나 건물주가 바뀌더라도 저 건물 만은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 저 이상한 건물을 가만히 놓아 둘 때 정상적 사회가 편하게 될텐데. 하지만 세상의 기세는 심상치 않다.

 

328. 2015년 11월 24일. 火. 부산. 흐릿한 가을날도 정취있다.

▲ 의미전달에 별 문제 없는 현수막

심각하게 잘못 쓰여지고 있는 한글

나는 어떤 사안에 관하여 한 쪽으로 편향되지 말며 경계(境界)에서 중용인이 되고자 노력한다. 이도 저도 다 부정하는 양비론자나 이도 저도 다 좋다는 얼치기 중간인은 배척한다. 다만 흑백논리적 이원론을 경계(警戒)한다. 여기서도 두 경계라는 낱말 차이를 한자가 없으면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한자 사용이라는 사안에 관해 한자혼용론자다. 우리 한글은 한자를 통해 다양해졌다. 실제로 나는 한자를 통해 여러 가지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다. 한자적 사고를 통한 창의적 사고다. 나는 한자가 없으면 글을 쓸 수도 없다. 한글로 얼마든지 의사전달을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한자를 따로 써야 하느냐는 한글전용론자들의 주장에 반대한다. 한자를 이해하면 머리가 좋아지며 교육효과가 좋아진다. 이런 쪽으로 학술 논문을 쓰기도 했다. 한글만 쓰면 안중근 의사가 무슨 과 의사였냐고 질문할 수 있다. 한자를 알고 한글을 사용해야 제대로 된 한글 사용이 가능하다. 한자를 모르면 우리 한글을 무슨 뜻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자(利子)란 돈을 빌려 쓴 대가로 치르는 값이다. 이익(利)이 되는 돈의 자식(子)이니 이자다. 그런데 이런 한자의 뜻을 모르면 이자가 의자가 되어도 괜찮다. 어차피 인간은 게스탈트적으로 지각하니까 전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아 들으면 되니까 저렇게 길거리 횡단막에 무이자를 무의자로 써도 된다. 이렇게 한글을 잘못 쓰는 예는 많다. 수포(水泡)로 돌아가다와 숲으로 돌아가다,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뚜렷하다 - 임옥구비가 뚜렷하다, 주의(注意)를 끌다 - 주위를 끌다, 압권(壓卷)이다 - 압건이다, 해괴망측(駭怪罔測)하다 - 회개망칙하다, 심혈(心血)을 기울이다 - 심여를 기울이다, 난감(難堪)하다 - 남감하다 등. 한자를 알아야 잘못된 한글 사용에서 벗어난다. 그래도 여기저기 동네 팻말에서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는 잘못 쓰이지 않고 정확히 잘 쓰이니 다행이다. 무단투기금지(無斷投棄禁止)의 한자 뜻을 제대로 알면 마구 함부로 안버릴 텐데.

 

329. 2015년 11월 25일. 水. 부산. 가을 가는 비가 칙칙하다.

▲ 깡으로 밀어부친 거산의 대도무문

결기의 깡 덕분에 이룬 민주화 위업

나는 거산(巨山)이라는 호(號)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호는 조선시대 정여창의 호인 일두(一蠹)다. 한 마리 좀벌레라는데 오히려 멋지고 미학적이다. 호라는 것이 절제가 있고 운치가 있어야지 큰 산이라니? 오히려 너무 뻥스럽고 촌스럽다. 그의 좌우명인 대도무문(大道無門)도 맘에 들지 않았기는 마찬가지다. 큰 길에는 문이 없으니 거칠 게 없다는 뜻이지만 너무 허풍스럽고 과장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좌우명은 청나라 정판교(鄭板橋)가 쓴 글에 나오는 난득호도(難得糊塗)다. 똑똑하게 보이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어리석게 보이는 게 어렵다니? 가만히 생각하면 기막힌 뜻이다. 나는 거대한 것을 추구하려는 것들이 싫다. 대통령 재임시에 세계화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우며 ‘Segyewha'라고 한 것도 거대(巨大) 망상처럼 여겼었다. 그러나, 하지만, BUT 거산이나 대도무문은 오직 김영삼 당신 만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컨셉이었다. 그는 정말로 거산같았고 대도무문답게 행동했다. 그 대담함의 근원은 속된 말이지만 깡다구가 가장 알맞을 것이다. 그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깡의 기로 자잘한 것을 일일이 재고 따지지 않으며 밀어 부쳤다. 그 깡으로 목숨 걸며 용기있게 투쟁했기에 우리는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결행한 여러 일들도 결국 그의 깡에서 나왔다. 故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이룬 민주화 업적은 숭고하고 찬란하기까지 하다. 산에서 샘물을 마시면 원천을 생각하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는 민주 사회에서 살며 두 분의 위업을 함께 존경해야 한다. 비록 과실이 있었더라도. 특히 당신께서는 대통령 퇴임 후 아무 사심없이 살았던 본래 집으로 되돌아가며 모든 재산을 사회에 명쾌하게 헌납했다. 역시 거산답다. 평소 돈 감각도 돈 욕심도 없는 그였다. 이제 저승에서 거산보다 동산(童山)처럼 평안하시길 빈다. 깡으로도 풀 수 없는 쓰레기 넘치는 이 세상도 긍휼히 굽어 살피시길 바란다. 그런 맘으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330. 2015년 11월 26일. 木. 부산. 갑자기 겨울이다.

▲ 인스턴트하게 만든 라면 포스터

칸느에서 수상할 만한 재미있는 수작

라면 전문식당의 포스터를 만드는데 아이들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정말로 포토샵으로 금방 다운받은 사진을 자유자재로 다루더니 저렇게 40분 만에 뚝딱 완성했다. 포토샵으로 자르기밖에 못하는 내가 보기에 신기하다. 예전에 살짝 배우긴 했어도 안쓰니 까먹었다.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도 다시 배워야겠다. 아무튼 라면 회사가 얼마든지 이 크리에이티브를 가지고 광고해도 될 만한 수작이다. 뜨거운 국물을 시원하다고 말하는 한국인의 희한, 독특한 입맛을 서양 사람들은 절대 모를 테니 프랑스에서 열리는 칸느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에서 수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심플 샤프 센서블하게 3S(Simple, Sharp, Sensible)로 다가오는 저 명료한 표현 컨셉은 가히 칸느 그랑프리(Grand Prize) 급이다. 저 포스터가 수작인 이유는 속풀이 해장 라면이라는 제품 컨셉을 우회적으로 표현했으면서도 명료하고 재미있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특히 식품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맛있게 보이는 씨즐감이 무척 중요한데, 저 제작물에서는 라면이 목욕탕으로 묘사되었어도 먹고싶은 라면답게 나왔다. 부산에서 만든 작품인데 전라도 지역말로 시원함을 구수하게 표현한 것도 다문화적이다. 나와 생각이 똑같았는지 라면집 사장님도 이 작품이 4차원적이라며 최우수작으로 선정했다. 라면의 발상지는 일본이다. 1958년 치킨 라멘이었다. 우리나라는 그 제조법을 배워서 1963년에 삼양라면이 나왔으니 늦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인은 라면의 종주국을 제치고 1인당 라면을 가장 많이 먹는다. 한국인의 식생활에 없어선 안될 제2의 쌀이란다. 외국에 나가면 가장 먹고싶은 고국 음식 중에 하나로 꼽힌다. 사실 라면만큼 맛있는 게 있을까? 라면 두 개에 스프 하나와 파와 계란 두 개를 넣고 끓이면 그 어느 탕류 음식보다 시원하니 맛있다. 찬밥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맛은 좋아도 몸에 좋지는 않을 것같아 자주 먹지는 않는다. 그렇게 간단하게 먹더라도 쓰레기는 많이 나온다. 늘 먹고 버릴 때마다 맘이 편치도 않다.

 

331. 2015년 11월 27일. 金. 부산→서울. 대전 쯤 기차 밖은 설국이다.

▲ 오늘 발표했던 PR생태학 정의

인간주의와 경제주의를 넘어서는 길

PR생태학이 무엇인지 제안하는 논문 발표를 했다. 이전에 제안했던 PR정치학도 마찬가지지만 PR생태학도 내가 처음으로 제안하는 개념이다. 아마도 세계 최초일 것이다. 발표를 마치고 청중석에서 PR생태계라는 것이 이미 있어서 PR생태학이 새로운 개념은 아니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나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아니라고 했다. IT생태계가 정보통신업에서의 복잡한 생태계를 뜻하는 용어이듯이 PR생태계란 PR업에서의 복잡한 생태계를 뜻하는 용어라고 했다. 이에 반해 PR생태학은 공중관계(Public Relations)인 PR의 관계철학을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생태계로까지 넓힌 생태관계(Eco Relations)가 PR생태학이라고 했다. 기존의 복잡계 PR도 조직과 공중 간의 쌍방적 관계 만에서 폭을 넓힌 것이지만 PR생태학은 복잡다단한 인간사나 인간세상 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생태계라는 가장 폭넓은 광야로 넓힌 것이라 했다. 또 PR생태학이 약육강식의 세계인 동물들의 생태계까지 포괄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하여 그렇다고 했다. 다만 진화생물학자들이 제안하는 통섭(統攝, consilience)적 관점에서 위에서 하나로 묶어(統) 다스리는(涉) 수직적 융합(convergence)이 아니라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기에 생물들의 세계와도 서로 통하며 건너는 수평적 통섭(通涉)이라고 했다. 최근에 통섭(統攝)이라는 말이 소통(疏通)이라는 말처럼 쓰이고 있는데 이는 통섭을 주장하는 진화생물학자의 대국민 사기가 성공한 탓이라고 했다. 통섭이라는 말을 만든 장본인이 TV 공개강연에서 세계 최강 1위 선수인 김연아에게 꾸벅 절하며 일등적 사고에 쩌든 그들이라고 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통섭의 지적 사기>라는 책도 있다고 했다. PR생태학은 인간중심, 인간위주, 인간우선인 인간주의와 좌우로 갈려진 경제주의에서 벗어나 닥쳐오고 있는 저성장, 저에너지 시대에 맞게 저엔트로피 시대의 전환적 방향과 현실적 지침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매일 쓰레기로 엮이는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332. 2015년 11월 28일. 土. 서울. 여전히 흐리다.

▲ 매일 나무를 휘감고 있는 전구불

밤 야경 꾸미기와 낮 풍경 가꾸기

예전에 대학교 캠퍼스에서 진행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축제 현장에 간 적이 있었다. 밤 11시 반이 좀 넘어서 늦게 갔다. 입구에서 경비 아저씨가 곧 끝난다고 하였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들어가서 찬란한 불빛의 향연을 즐겼다. 캠퍼스 곳곳 전체에 걸친 크리스마스 트리가 너무도 멋졌다. 그런데 딱 정각 12시가 되니 그 멋지던 불빛이 일시에 꺼지면서 그 멋지던 광경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컴컴한 야경만이 남았다. 순식간에 그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당황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 때 느끼던 허무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 생각했다. 창창한 낮에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 진짜 아름답지 깜깜한 밤에 멋지고 아름다운 것은 다 덧없는 치장이겠구나! 원래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것은 늘 푸른(evergreen) 소나무(pine tree)에 카드나 산타 인형 등을 걸쳐 올려 알록달록하게 장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내로 옮겨지면서 진짜 나무가 아니라 나무 모양 설치물에 깜빡깜빡거리는 꼬마전구 등을 올려 더욱 멋스럽게 장식하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진짜 바깥 생나무에 밤만 되면 전구불을 단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철 만이 아니라 사시사철 365일 단다. 그래서 도시의 야경은 멋지고 아름답다. 그런데 밤만 되면 빛나는 저 전구불을 매일 달고 살아야 하는 나무는 어떨까? 식물이라 말을 못해서 그렇지 고문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사람도 밤에 컴컴한 곳에서 자지 않고 환한 밝은 곳에서 자게 하면 고역일 것이다. 숙면을 취할 수가 없다. 그러니 생명체인 저 소나무도 매일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소나무들보다 수명이 짧아질 것이다. 저 백화점 주변을 밝게 하려면 뭔가 다른 방법을 썼어야 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밤의 야경을 환하고 멋지게 꾸미기보다 낮의 풍경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저 백화점 일대 지역사회의 쓰레기 문제에도 관여하며 손수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가깝게 할 수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시작이다.

 

333. 2015년 11월 29일. 日. 서울. 칙칙한 가을날이다.

▲ 돌연변이로 인한 블루 아이즈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장 큰 원인

교육방송(EBS)이 제작한 5부작 프로그램 중에 <다섯 개의 열쇠>가 있다. 과학문명이 디지털, 신소재, 종자, 태양, 돌연변이라는 다섯 개에 의해 좌우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돌연변이가 심상치 않다. <엑스맨>이라는 영화는 돌연변이로 인해 날개나 손칼 등 특이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인 이야기인데 영화이기에 허황되다. 하지만 교육방송이 만든 이 프로그램은 고등학교 융합형 과학 교과서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그럴 수 없다. 돌연변이(mutation)란 세포 핵 안에서 염색체를 이루는 유전자 DNA가 여러 내적 외적 자극으로 인해 원본과 달라져 일어나는 유전형질의 변화다. 세 가지 예가 제시된다. 남미 에쿠아도르에 사는 왜소증 난장이는 키가 1미터도 안되는데 무척 건강하다. 암과 당뇨병에 걸리지 않는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평생 빈혈 환자는 몸이 허약한데도 신랑감으로 인기가 좋단다. 혈액 안에 말라리아에 견디는 반달 모양의 적혈구를 가졌기 때문에 오래 산단다. 역시 그런 DNA를 타고 났기 때문이란다. 유럽의 금발 백인들 중에 1/10은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유전자를 타고 났다고 한다. 14세기 페스트(black death)로 인해 유럽 인구의 절반이 죽어갈 때 돌연변이로 생겨난 유전자의 페스트 저항성이 에이즈 저항성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란다. 현대인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돌연변이에 의해 생겨났고 앞으로도 그렇단다. 일례로 야생 늑대는 인간이 기르는 개가 되면서 여러 가지 돌연변이를 거치면서 지금의 여러 가지 개 품종이 있게 되었단다. 지금 저 보석처럼 푸른 눈동자도 돌연변이 때문에 생긴 것이란다. 수만년 전에 어쩌다가 푸른 눈동자가 갑자기 나타났고 이 모습이 이성의 주목을 더 끌기에 이후 세대를 걸쳐 지속되는 유전형질이 되었단다. 돌연변이는 외부 자극으로 인해 생기는데 세상에 넘치는 쓰레기로 인해 지금까지보다 더 요상한 돌연변이가 일어날 조짐은 터 커질 것 만같다. 돌연변이는 다섯 개 열쇠 중 가장 어마무시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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