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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 홀리는 '숨듣명'의 신선한 매력과 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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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 홀리는 '숨듣명'의 신선한 매력과 마성
  • 취재기자 조봉선
  • 승인 2020.10.31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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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문명특급’에서 시작된 숨듣명 열풍... 틴탑, 유키스 등 재조명
다양성과 추억 회상 매력... “청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음악" 입소문
“이제는 ‘숨어듣는 명곡’ 아닌 함께 듣는 ‘명곡’ 돼야” 목소리도
대학생 김유진(22, 경남 창원시) 씨의 노래 취향은 남들과 조금 다르다. 최신곡이나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주로 듣는 친구들과 달리 김 씨의 플레이리스트는 나온 지 10년 가까이 된 일명 ‘숨듣명’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남들에게 보여주길 꺼려했던 김 씨였지만, 요즘은 당당히 보여주며 노래를 추천해주기까지 한다. 김 씨는 “요즘 숨듣명은 숨어듣지 않는 게 대세”라며 “이젠 주변에서도 숨듣명을 찾아 듣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유진 씨의 플레이리스트 중 일부분이다. 김 씨의 플레이리스트는 대부분 '숨듣명'으로 알려진 노래들로 가득 차 있다(사진: 김유진 씨 제공).
대학생 김유진 씨의 플레이리스트 중 일부분이다. 김 씨의 플레이리스트는 대부분 '숨듣명'으로 알려진 노래들로 가득 차 있다(사진: 김유진 씨 제공).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을 장악했던 가수들의 ‘숨듣명’이 최근 재조명을 받으면서, 2020년의 음악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숨듣명 열풍은 90년대생들의 향수 자극은 물론,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느낌을 안겨주고 있다. 숨듣명이란 ‘숨어 듣는 명곡’의 줄임말로, 나에게는 명곡이나 남들과는 같이 듣기 부끄러워 숨어 듣는 노래를 말한다. 이러한 노래들은 전반적으로 멜로디는 좋으나 횡설수설하면서도 난해한 가사, 독특하고 괴이한 콘셉트, 촌스러운 구절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숨듣명은 발매 당시에는 큰 사랑을 받지 못하고 묻혀버린 케이스가 많다. 숨듣명이 최근 재조명을 받게 된 데에는 유튜브 웹 예능인 <문명특급>의 영향력이 크다. 2018년 11월에 올라온 <문명특급 EP.30 숨어서 듣는 명곡 아는 사람?>편이 바로 그 시발점이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진행자 ‘재재’는 아이템 회의를 하면서 숨듣명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숨듣명을 부르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를 본 시청자들은 숨듣명에 대한 깊은 공감을 표시했고, 댓글을 통해 자신만의 숨듣명 리스트를 써내려갔다.
'문명특급 EP.30 숨어서 듣는 명곡 아는 사람?' 편에 달린 댓글들이다. 댓글을 단 이들은 각자 자신의 숨듣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 유튜브 캡처).
'문명특급 EP.30 숨어서 듣는 명곡 아는 사람?' 편에 달린 댓글들이다. 네티즌들은 각자 자신의 숨듣명에 대해 이야기 한다(사진: 유튜브 캡처).
이후 <문명특급>은 숨듣명을 불렀던 가수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명 ‘숨듣명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해당 시리즈는 가수에게 노래를 받았을 때의 심경, 비하인드 스토리 등에 관해 인터뷰하는 코너로, 숨듣명에 대한 청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추석에는 SBS 추석 특집 프로그램으로 <문명특급-숨듣명 콘서트>가 방송되기도 했다. 이러한 숨듣명 시리즈로 인해 <문명특급>은 구독자 수가 88만 명에 육박할 만큼 많은 인기를 얻었으며, 숨듣명 또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됐다. 그렇다면 2020년을 사로잡은 숨듣명에는 어떤 노래들이 있었을까? 2020 숨듣명의 대표주자들로 아이돌 그룹 틴탑, 유키스, '제국의 아이들'을 거론할 수 있다. 2011년에 발매된 틴탑의 <향수 뿌리지 마>는 세상을 상큼하게 노래하는 가수와 그렇지 못한 가사로 인해 숨듣명으로 급부상했다. 연신 미소를 지으면서도 “향수 뿌리지 마, 이러다 여친한테 들킨단 말야”라며 태연히 바람을 피우는 가사를 내뱉어 듣는 이들을 황당하게 했다. 틴탑의 멤버 니엘은 <문명특급>에 직접 출연하여 “노래를 부를 당시 나이가 어려 여심 저격 노래인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키스의 <만만하니>는 2009년 발매 당시 ‘만만하니 열풍’을 불러 일으켰을 정도로 유키스의 메가 히트곡이다. 그러나 과하게 삐딱하고 껄렁대는 컨셉으로 인해 숨듣명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 중 멤버 알렉산더의 파트인 “너 완전 짜증나”와 “여우같은 Girl”은 현재 알렉산더 특유의 여우같은 손동작과 함께 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다. 또 다른 숨듣명 <시끄러!!>는 시도 때도 없이 “시끄러”를 외치는 가사와 허공을 가르는 독특한 안무 등으로 화제가 됐다. '제국의 아이들'은 ‘숨듣명 부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많은 숨듣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데뷔곡 <Mazeltov>는 난해한 가사로 주목을 받았다. 뜬금없이 영어로 ‘월화수목금토일’을 외치는 후렴구와 세계 각국의 Girl들을 찾는 가사들로 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최대 히트곡 <후유증>은 고르지 않은 파트 분배로 웃음을 유발했다. 숨듣명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특히 해당 노래를 들으며 자랐던 90년대생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본 것 마냥 반가운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김혜리(28, 경남 창원시) 씨는 “학창시절에는 부끄러워 몰래 들었던 노래들이 이제는 당당히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되니 신기하고 반갑다”고 말했다. 직장인 황지훈(25, 부산시 사상구) 씨는 “남들 모르게 듣던 노래들이 화제가 돼 이렇게 다시 듣게 되니 마치 이를 처음 접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말했다. 숨듣명 열풍으로 최근 노래를 처음 접한 중학생들의 반응도 신선했다. 중학교 2학년 최민성(15, 경남 양산시) 군은 “요즘 나오는 노래들을 보면 거의 다 비슷비슷한데, 이에 비해 숨듣명은 독특한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황윤서(14, 부산시 사상구) 양은 “뭔가 병맛 같으면서도 중독성이 엄청 심해서 나도 모르게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마성의 노래들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숨듣명의 매력은 먼저, ‘다양성’이다. 대학생 정지영(24, 경남 창원시) 씨는 “요즘 아이돌 시장은 진부하기 그지없어 들을 만한 노래가 없다”며 “그래서인지 최신곡을 듣다 숨듣명을 들으면 오히려 귀가 신선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지은(22, 경남 창원시) 씨는 “숨듣명의 특징은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범상치 않은 콘셉트”라며 “청순, 섹시, 걸크러쉬 등으로 틀이 딱 정해져 있기보다는 다양한 컨셉으로 청자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숨듣명의 또다른 매력은 ‘추억 회상’이다. 직장인 박나영(23, 경남 창원시) 씨는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학창 시절이 그리울 때가 정말 많다”며 “그럴 때마다 숨듣명은 그 시절 추억에 잠길 수 있게 해주는, 그나마 위안이 되는 존재”라고 말했다. 직장인 박영호(26, 경남 창원시) 씨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걱정이 많아지고 웃음이 사라졌다”며 “그런데 숨듣명을 들으면 아무 걱정 없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고 말했다. 일부 청취자들은 이렇게 매력이 있는 노래들이 숨어 듣는 노래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대학생 이수연(22, 경남 창원시) 씨는 “숨어 듣는다고 해서 이상한 노래일 것 같지만 막상 들어보면 오히려 개성 있고 좋은 노래들이 많다”며 “오히려 이 좋은 노래들을 일부로 숨어 듣는 것은 노래를 부른 가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문명특급>이 숨듣명 시리즈에서 버릇처럼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숨어 듣지 마세요”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문명특급>의 말을 본받아 더 이상 숨듣명을 숨어 듣지 않고 남들 앞에서 당당히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학생 최민서(21, 경남 창원시) 씨는 “발매 당시에 좋은 성적과 평가를 얻지 못했다고 해도 나 자신에게 좋은 음악이라고 여겨지면 그 순간부터 그 노래는 숨어서 들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숨듣명들이 ‘숨어 듣는 명곡’보다는 그냥 ‘명곡’으로 불릴 수 있는 날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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