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개 어떤 일에 뛰어들기 전에 미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열정 하나만 가지고 맨 몸으로 비보이 세계에 뛰어든 사람이 있다. 그 주인공은 25세 조현광 씨.
비보이들은 대개 닉네임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 중 조 씨는 ‘웜즈(wormz)’라고 불린다. 특별히 그렇게 불리는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웜즈라는 게임이 있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내 외모가 닮았대서 이름을 그렇게 정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현재 부산에는 다양한 크루(크루는 영어의 crew로 승무원, 팀원을 의미한다. 힙합팀을 흔히 힙합크루라고 한다)들이 존재한다. 오샤레크루, 맥스크루, 스텝크루, 킬라몽키즈, 사우스 인디언즈 등이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크루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현재 부산을 대표하는 크루 중 하나가 ‘사우스 인디언즈(South Indianz)’다. 조 씨는 그 크루의 멤버다. 2008년 창단된 사우스 인디언즈는 활발하고 진취적인 인디언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삼았고, 부산에 거주하고 있으니 지리적으로 남쪽이라는 의미를 추가한 이름이다. 조 씨가 속한 사우스 인디언즈는 2009년 SDK 아카데미에서 주최한 mix battle 준우승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부산연등축제 비보이 배틀에서 3위로 입상하는 등 다양한 곳에서 20여 차례의 수상 이력을 갖고 있다.
결성 당시엔 멤버가 5명이었지만, 지금은 10명으로 늘어났다. 초창기 멤버 중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은 그를 포함해 3명이고, 나머지 2명은 개인 사유로 탈퇴했지만 아직도 서로 연락하며 비보이 활동에 대해 서로 조언을 주고 받고 있다. 이들은 상업적인 공연보다는 순수하게 비보잉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 올리는 데 이 팀의 활동 목표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처음 춤을 접하게 된 것은 언제였을까? “초등학교 때 TV에서 팝핀 현준의 공연을 보면서 춤을 추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했요. 비보잉 흉내를 내다 15세 때 인터넷 카페에서 비보이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형식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모습이 좋아 보여서 비보잉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되었죠. 그렇게 해서 춤을 춘 지 어느덧 벌써 10년차가 되었네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0년 동안 비보잉을 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렸을 적에는 현실적인 여건이 마땅치 않아 집 근처 지하 주차장에서 혼자 춤을 추고 연습하기도 했다. 춤추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조명 밑에 비치는 그림자를 거울삼아 춤 연습을 하기도 했다.
비보이 활동을 놓고 부모님과 크고 작은 마찰이 없을 수 없었다. 부모님의 눈으로는 군대를 제대하고서도 남들처럼 번듯한 취업 준비는 하지 않고 춤만 추는 아들이 달가워 보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부모님께 쓴소리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도 현광 씨의 열정을 알고서는 뒤에서 응원해주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비보잉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그렇게 빠져들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예전에 어릴 때는 춤출 때 누군가 나를 알아봐줬으면 좋겠고 주목받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팀원들과 함께 땀 흘리면서 춤을 추고 함께 호흡하고 하는 과정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고 행복해요. 상을 받는다거나 남들이 알아봐 준다거나 하는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안무를 만들어 내고 연습하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레퍼터리를 만들어내면서 얻는 자신감과 성취감이 보이지 않는 자격증이 아닐까요?”라고 그는 반문한다.
그래서 조 씨는 비보이 동료를 누구보다 아낀다. 그렇기에 경쟁이 치열한 비보이 문화가 한편으로는 찜찜할 때도 있다. 비보이 대회에서의 수상 여부에 따라 팀의 인지도가 좌우되기 때문에 많은 비보이들이 더 기회를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조 씨는 얼마전 부산에서 활동하는 여러 크루에게 감사한다는 마음을 담은 옷을 제작해서 증정하기도 했다. 옷의 앞면에는 부산이라 쓰고 뒷면에는 ‘Thanks to Leaders‘라 쓰여진 파란색 옷을 다양한 크루의 대표들에게 전달했다. 그 덕인지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기 바빴던' 경쟁적인 비보이의 활동 풍토에서 화합하는 분위기가 싹트고 있다고 한다. 춤은 즐겁게 춰야한다는 현광 씨의 신념이 전달된 셈이랄까.
현재 그는 비보이 활동을 하는 한편으로 속기사 공부도 하고 있다. 춤만 출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춤으로 생계비를 버는 비보이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비보이로 유명해지는 꿈도 좋지만 꾸준히 춤출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그의 당면 목표.
그는 비보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는 넓은 시야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가까운 나라에서 수많은 비보이 문화가 있고 특색도 다르기 때문에 고정관념과 형식에 얽매인다면 이 길을 걷는 데는 아무래도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죠." 비보잉과 삶에 대한 폭넓은 시야는 좋은 비보이로 성장하는 씨앗이 될 것이라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