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0-28 11:22 (월)
어르신 건강 식단 책임지는 요양병원 영양사의 명과 암
상태바
어르신 건강 식단 책임지는 요양병원 영양사의 명과 암
  • 취재기자 김태희
  • 승인 2020.11.27 13: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창시절 급식표 보고 영양사 꿈꿔... “식단표 짜는 것도 쉽지 않아”
조리사들과 화합도 중요...영양사 덕목은 리더쉽과 책임감

병원, 기업, 또는 학교에서 단체 급식할 때 음식의 영양분과 칼로리를 따져서 식단을 짜는 일을 하는 보건 전문 인력이 있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어봤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하얀 가운을 입고 바쁘게 배식을 지휘하고 음식 조달을 조시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대개는 여자인 이 직업이 바로 ‘영양사’다. 우리는 영양사를 그저 식단을 짜주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지만, 영양사의 일은 그것보다는 훨씬 많고 중요하다. 시빅뉴스는 영양사의 세계를 조명하기 실제 한 영양사를 집중 인터뷰했다. 인터뷰에 응한 영양사는 이서희(26, 가명) 씨다.

서희 씨는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으로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고 꿈을 찾지 못해 꽤 오랜 시간 방황했다. 그러한 서희 씨에게 유일하게 가장 즐거운 일은 음식을 먹는 일이었다. 서희 씨는 만약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음식과 관련된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고등학교 교실 내에 부착된 게시판에서 급식표를 구경하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학생들을 보고 급식표를 만드는 영양사라는 직업을 꿈꾸게 됐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급식표 만으로도 웃으며 대화하는 것이 서희 씨에게 크게 와 닿았다. 그녀는 “음식은 단순히 인간의 생명 유지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이서희 씨가 2017년 12월에 취득한 영양사 면허증이 담긴 봉투. 이 봉투를 받아들 때만 해도 서희 씨는 포부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사진: 취재기자 김태희).
이서희 씨가 2017년 12월에 취득한 영양사 면허증이 담긴 봉투. 이 봉투를 받아들 때만 해도 서희 씨는 포부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사진: 취재기자 김태희).
이서희 씨가 영양사 면허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했던 시험문제집들. 서희 씨는 총 4권의 문제집으로 시험을 준비했고 당당히 합격했다(사진: 취재기자 김태희).
이서희 씨가 영양사 면허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했던 시험문제집들. 서희 씨는 총 4권의 문제집으로 시험을 준비했고 당당히 합격했다(사진: 취재기자 김태희).

서희 씨는 큰 포부를 가지고 부산 지역 한 대학의 식품영양학과에 2014년 입학한 뒤, 영양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녀는 3학년 때인 2016년에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에 통과하여 자격증을 취득한다. 이는 영양사가 되기 위한 필수 시험은 아니지만, 조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함이었다. 한식조리기능사는 필기시험과 실기 시험으로 나뉘어 있는데, 특히 실기 시험은 서희 씨를 난관에 봉착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50여 가지의 한식 메뉴가 있는데 그중 어떤 메뉴를 요리할지는 당일에 복불복으로 알려주는 형식이었다. 솔직히 너무 어려워서 시험에서 여러 번 떨어진 끝에 겨우 합격했다”고 설명했다. 서희 씨는 그 후 대학교에서 4년 동안 배운 지식을 토대로 2017년 12월 영양사 면허 시험에 합격하여 영양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서희 씨는 2019년 3월 마침내 한 요양병원에 영양사로 입사했다. 서희 씨는 취업했다는 기쁨도 컸지만, 직접 영양사로서 실무를 담당하게 됐다는 것 때문에 걱정도 됐다. 그녀는 “첫 사회생활이자 첫 취업이었으므로 의미가 남달랐다. 그래도 전공을 살려서 취업했다는 점에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서희 씨는 병원에 필요한 서류들을 정리하고, 위생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체크했다. 또한 요양병원 환자들은 컨디션에 따라서 식사가 바뀌기 때문에, 바뀐 식단을 일일이 조리사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녀는 “예를 들어 당뇨가 있는 환자에게는 잡곡밥을 배식한다거나, 환자들의 상태에 따라 밥을 죽이나 미음으로 바꾸는 경우들을 일일이 조리사들에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희 씨에게 가장 힘들었던 일은 바로 식단표를 짜는 일이었다. 일반 산업체 같은 경우에는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점심 식사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다양한 식단을 시도할 수 있으나, 요양병원은 단순히 맛있는 메뉴만 짜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병원 특성상 하루 삼시세끼 전부 다른 식단으로 배식해야 했고, 조리사의 인력이나 병원이 허락한 단가도 고려해야했기 때문에 서희 씨에게 식단표를 짜는 일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산업체에서는 주말을 제외하고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의 점심 한 끼로 총 5개의 식단이 필요하지만, 병원에서는 주말이고 뭐고 없으니 일주일에 하루 세끼로 총 21개의 식단이 필요한 셈”이라며 “열심히 구상한 메뉴를 넣었음에도 결과가 너무 안 좋아서 당황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서희 씨는 식단표를 보면서 영양사로서의 꿈을 키웠으나, 그게 먼 훗날 서희 씨에게 큰 난관으로 돌아온 것이다.

서희 씨는 환자들이 메뉴를 칭찬해주거나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줄 때는 영양사로서 행복감을 느꼈다. 이 씨는 “가끔씩 어르신들이 ‘어제 그 메뉴 맛있었어!’라고 툭툭 내뱉고 가실 때가 있는데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또한 서희 씨는 요양병원에서 식단표를 통해 소소한 이벤트를 진행할 때 큰 성취감을 느꼈다.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명절 음식을 배급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오이냉국과 콩국수를 배급하는 등 환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식단을 제공하는 것은 서희 씨에게 즐거운 일이었다. 서희 씨는 “환자들의 생일이 되면 소불고기와 같은 특별한 식단도 준비했는데, 어르신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열심히 직장을 다니던 서희 씨가 영양사를 그만두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조리사들과의 트러블이었다. 영양사는 조리사에게 일을 시키며 그들을 관리해야하는 입장이지만, 서희 씨의 성격상 본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조리사분들을 책임지고 관리하기에 부담감을 느꼈다. 그 과정 속에서 조리사들과 트러블이 발생했다. 서희 씨는 “첫 직장이었으니 업무에 대한 확실한 숙지도 부족한 상황에서 조리사들에게 지시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그들에게 무시당하고 조롱당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서희 씨는 조리사들과 불화가 생기면서 일을 못하는 영양사로 낙인찍히자, 조리사들로부터 일방적인 괴롭힘을 받기도 했다.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들이 서희 씨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깔려있어, 서희 씨가 일하기에 너무 힘겨웠다. 어느 날은 서희 씨가 에어컨 물을 받는 통을 비우지 않자, 조리사들이 발로 통을 차며 서희 씨를 비난했다. 서희 씨는 “나는 통에 물이 다 차지 않았기 때문에 비우지 않은 것이었는데, 물이 조금 차 있었다고 그런 행동을 했다. 너무 당황스럽고 심한 괴롭힘을 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서희 씨를 향한 조리사들의 일방적인 괴롭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루는 전구가 다 닳자, 서희 씨가 다 닳은 전구를 찾기 위해 천장을 두리번거렸는데, 이때 조리사들이 서희 씨의 포즈를 흉내 내면서 깔깔 웃는 등 서희 씨를 조롱했다. 서희 씨는 “사실 앞서 말한 것들은 매우 사소한 것들이다. 더 자세하게는 말할 수 없지만, 정말 고독하고 외로웠다”고 말했다.

서희 씨는 영양사의 처우개선을 위해 이뤄져야할 것으로 재료 단가 마련과 월급 인상을 꼽았다. 영양사에게 주어지는 식품 단가가 부족하면 식단을 짜는 데에 큰 제약이 생긴다. 또한 영양사는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고 꼼꼼한 일처리가 필요한데 일하는 양에 비해 월급이 너무 적다는 것이 서희 씨의 의견이다. 서희 씨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한 달에 세금 다 떼고 160만 원을 받았다. 영양사는 사람들의 질병예방과 건강을 위해 누구보다 힘쓰는 직업이므로 처우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희 씨는 현재 영양사에 재도전할 의욕은 없는 상태지만, 영양사로서 요양병원에서 근무했던 7개월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서희 씨는 훗날 영양사에 한 번 더 도전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안정을 취하면서 주변을 돌아볼 계획이다. 서희 씨는 “만약 다시 영양사에 도전한다면 조리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잘 이뤄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아무래도 처음보다는 조금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서희 씨는 영양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자신감’과 ‘리더십’을 강조했다. 조리사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리더십이 중요하고,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가지는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것. 서희 씨는 “어떤 직업이든 힘든 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영양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면 힘든 점을 잘 극복해서 멋진 영양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