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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개 직업 중 방송작가 된 이유는?...“내가 설계한 대로 방송 되는 성취감 중독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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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개 직업 중 방송작가 된 이유는?...“내가 설계한 대로 방송 되는 성취감 중독 때문!”
  • 취재기자 김희선
  • 승인 2020.12.19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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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완성 때까지 퇴근 없고 마음 졸이고...“작가생활은 고3수험생 같다”
작가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방송 내 뜻대로 되면 보람 두 배”

요즘 TV에는 예능 프로그램도 많고 교양 프로그램도 부지기수다. 그중에서 리얼리티라는 장르는 대개 연예인들이 여행 가고, 요리 해먹고, 정글도 탐험한다. 최근에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배우자, 자녀, 부모도 등장한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독특하고, 흥미를 자아내고, 기발하고, 시청자의 웃음과 눈물을 만든다.

정말 연예인과 그들 가족이 그런 시청률을 사로잡는 ‘어록’을 스스로 했을까? 그럴 수도 있다. 원래 태생이 유머러스한 사람도 있고 자연스런 생활 속에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아내는 멘트들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 대화 속에는 대본이 있다. 100% 대본대로 리얼리티 쇼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본 방향과 기초 대화는 다 거기에 나와 있다. 방송 프로그램의 오리지널 창조자는 다름 아닌 작가다. 방송 뒤에 숨어 있지만, 사실은 거대한 설계자가 바로 작가인 것이다. 시빅뉴스가 방송작가 몇 사람을 만나 이들의 삶을 따라가 봤다.

화려한 스튜디오와 출연자 뒤에는 모든 대화와 구성을 창조한 방송작가가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화려한 스튜디오와 출연자 뒤에는 모든 대화와 구성을 창조한 방송작가가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방송작가란 한마디로 방송의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다. 시나리오는 물론 출연자 섭외부터 프로그램 전체의 구성까지 방송 프로그램의 골격을 짜는 역할을 한다. 방송작가는 드라마 작가, 예능 프로그램 작가, 시사·다큐·교양 프로그램 작가 등으로 구분된다. 방송작가, 구성작가라는 말을 서로 교차해서 쓰기도 한다.

드라마 작가는 드라마 대본을 쓴다. 예능 프로그램 작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디어를 내서 예능적 재미를 주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시사나 다큐 작가는 대상이 되는 뜨거운 이슈나 토픽에 대한 토론이나 다큐의 기본이 되는 취재도 하고, 대본도 쓰고, 프로그램 골격을 짜는 구성도 한다. 그리고 방송 프로그램의 대본 작성, 출연자나 장소 섭외, 취재 및 정보 찾기, 시청자의 요구 반영 등 작가가 해야 할 일은 끝이 없다. <나는 방송 구성작가다>란 책을 쓴 주혜영 작가는 “‘방송작가’ 하면 글을 쓰는 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방송국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있을지 모르다. 절대 아니다”라고 쓴 적이 있을 정도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0년 5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업 수는 1만 6891개다. 이 많은 직업 중에서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있다. 김민정 작가는 대학에서 신문방송을 전공하고 케이블TV PD로 시작해, 부산 KBS 방송작가 20년을 거쳐서, 현재 부산시청 스피치라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아침마당(부산)’, ‘6시 내 고향(부산)’, ‘생생투데이’, ‘사람과 세상’ 등의 프로그램 작가로 일했다. 김민정 작가는 “그냥 어릴 때부터 방송일을 하는 게 꿈이었고, 대학교 졸업하던 그즈음 케이블TV가 많이 생기면서 운 좋게 PD 일을 먼저 시작하게 됐어요. 그리고 결혼 육아 등으로 방송을 쉬다가 2001년에 KBS 부산 방송작가 공개모집에 지원해서 합격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일을 쉬고 있지만, 과거 서울 KBS에서 ‘러브인아시아’, ‘체험 삶의 현장’, ‘생생정보통’, SBS에서 ’좋은 아침’ 등의 프로그램을 맡았던 김정은 작가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했다. 김정은 작가는 대학 시절에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와 평소에 즐겨보는 TV를 접목시켜 진로를 찾다보니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발견하게 됐다. 그래서 구인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방송작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면접 후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다. 김정은 작가는 “가수 god를 좋아했는데, ‘방송국에 들어가 god와 같이 일하리라!’는 꿈도 방송작가가 되는 데 한몫했답니다”라고 말했다.

방송작가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만큼 보고 느끼는 것도 다르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그들에게는 어떤 보람을 줄까? ‘아침마당’ , ‘금요와이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와 같은 교양 프로그램에서 막내 작가 기간을 보내고, 서브 작가로서 ‘문희준의 순결한 15+’, ‘개밥 주는 남자’, ‘고등 래퍼’ 등의 예능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를 회상한 홍주희 작가는 어느날 본인이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된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단다. 홍주희 작가는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를 할 때 ‘우리 딸이 000 프로그램 하잖아’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마음가짐을 가졌죠. 그게 굉장히 보람스런 일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그 복잡하고 혼잡한 방송국에서 보람 찬 일이 있으면 힘든 일도 있기 마련이다. 시청자들과의 소통, 기약 없는 퇴근 시간, 소속감 없는 프리랜서의 한계점 등 그들의 어려운 점은 다양하다. 한 작가는 방송 마감에 맞춰서 밤을 새우고 퇴근이라는 개념 없이 매일 집까지 일거리를 끌고 와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실토했다. 그녀는 올해 하반기에 코로나19로 실의에 빠져 있는 상권을 찾아가서 상인들에게 힘을 주고 응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의 현장에 가면 그들의 힘든 상황이 눈으로 보였다. 작가는 “이들에게 방송 진행에 필요해서 ‘무엇이 힘드냐’, ‘어떻게 이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있느냐’ 등을 물으려 하니 힘든 분들께 이런 것까지 물어서 더욱 힘들게 하는 게 맞나 싶어 심적으로 힘들었지요”라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방송작가의 세계와 실제 그들이 겪고 있는 작가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

주말엔 그림 책방을 운영하고 평일엔 부산 지역 방송국에서 라디오 작가 일을 하는 임수진 작가는 “방송작가는 방송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는 말을 어디서 듣고 방송작가가 됐다. 그후 임수진 작가의 생활은 어떻게 됐을까? 임 작가는 “방송 시간 제외하고 방송 준비하는 데만 일주일을 붙잡고 있던 적도 있었어요. 특히 막내 작가로 일할 때는 내 시간은 있을 수가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홍주희 작가도 “TV 드라마에 나오는 방송작가는 우아하고 럭셔리하게 그려졌는데, 막상 작가 생활을 하고 나니, 내 생활은 고3 수험생과 비슷한 모습으로 일하고 있답니다”라고 실토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의 직업 만족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위는 한의사, 2위는 의사, 3위는 약사 및 한약사다. 직업 만족도 조사 결과 순위에 들지도 않았고 힘든 일도 많지만, 방송작가들의 직업 만족도는 높았다. 김정은 작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송 제작은 참 재밌어요.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좋아하는 것도 꽤 뿌듯한 일이구요. 그렇지만 밤샘이나 매우 고단한 제작 과정이 있어서 별 다섯에서 별 하나는 빼고 싶어요”라고 웃었다.

홍주희 작가는 “방송의 모든 과정이 많이 힘들지만 방송 현장에 가면 ‘내가 살아 있구나’하는 걸 느껴요. 그만큼 현장이 너무 재밌어요. 현장에서 출연자들의 ‘티키타카(탁구공이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빠르게 말을 주고 받는 것)’를 보고 있으면, ‘그래, 내가 그리던 그림이 바로 저거였어! 저걸 보기 위해 우리가 그 고생했지’하는 성취감의 중독에서 못 벗어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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