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비용 들고, 포획하기도 만만치 않아 '도시의 애물단지'
사랑과 평화의 상징으로 불리던 비둘기가 이제는 '혐오'의 상징이 되고 있다. 비둘기가 혐오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비둘기가 생성한 배설물이 길거리 미관을 해치고, 이것저것 마구 쪼아먹는 비둘기의 모습에서 과거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비둘기는 집비둘기일 가능성이 크다. 환경부의 ‘유해 집비둘기 관리업무 처리지침’에 따르면, 집비둘기는 ‘야생동·식물보호법’에 근거해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돼 있다.
유해 집비둘기가 거리를 넘어 우리 집까지 찾아오면 어떨까. 대학생 유현준(25, 서울 송파구) 씨는 비둘기 때문에 창문을 열기 꺼려진다. 유 씨는 “아파트 창 밖 난간에 비둘기 똥이 자주 떨어진다”며 “비둘기 똥 때문에 창을 열지 못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비둘기의 피해자 대학생 박영민(23, 서울 송파구) 씨는 끔찍한 비둘기 '모닝콜'을 하소연했다. 그녀는 “아침이면 창 밖에서 구구구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깬다”며 “창 밖 난간에 앉아 있는 비둘기를 쫓아내며 어쩔 수 없이 하루를 시작한다”고 토로했다.
국립중앙과학원에 따르면, 집비둘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같은 해 장애인 올림픽 때 많은 수의 비둘기를 방사하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비둘기는 먹성이 좋고 번식력이 뛰어나 빠르게 개체수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강한 산성을 띈 집비둘기 배설물은 건축물과 구조물 등을 부식시키고, 흩날리는 깃털 때문에 주민들은 비위생적인 집비둘기에 대한 불쾌감이 높아졌다. 이로 인한 주민들의 민원도 늘어 났다. 비둘기 비해를 호소하는 시민들은 비둘기 퇴치 업체를 찾기 시작했다. 조류퇴치 전문기업 ‘버드존99’의 관계자는 “일하는 양은 매년 비슷하지만, 비둘기 퇴치 업체가 늘어났다”며 “시민들의 비둘기 피해가 점차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이사를 하게 된 조영순(51, 서울 송파구) 씨는 에어컨 실외기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 씨는 집 안 환기를 위해 잘 열지 않던 에어콘 실외기 쪽 베란다 문을 열자, 비둘기가 후다닥 날아갔고, 그 자리엔 비둘기 둥지가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문을 닫고 있어서 에어콘 실외기를 신경 쓰지 않았다”며 “비둘기 실외기와 베란다 틈 사이에 비둘기 둥지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더욱 끔찍한 것은 비둘기 배설물이었다. 에어콘 실외기뿐만 아니라 베란다 주변이 온통 비둘기 배설물로 뒤덮인 것이다. 그녀는 “비둘기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는데, 이번 사건 이후로 비둘기를 혐오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상복합 아파트 11층에 거주하는 한 시민도 비둘기에 대해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비둘기가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 자주 았다갔다 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더러워진 배설물 때문에 베란다를 아예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 그녀는 작심하고 베란다 청소를 할 요량으로 에어콘 실외기를 살펴 보니까, 둥지까지 틀고 비둘기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쫓아 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남편이 우산으로 둥지 속의 비둘기를 아무리 쫓아내도 날아 가지 않기에, 잘 살려 보니 둥지 안에 2개의 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업체에게 비둘기 퇴치 비용을 문의하니 생각보다 비용이 비싸 직접 해결했다. 철물점에서 철판과 그물을 구매해 에어콘 실외기 주변에 그물을 설치했다. 그녀는 “막아 놨는데도 한 달간 계속 비둘기가 찾아 왔다”며 “그래도 막아두니 2년이 지나는 지금까지는 괜찮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유해동물로 인해 재산상 피해나 직접적인 피해를 당했을 경우, ‘유해 야생동물 포획허가제도’의 절차를 거치면, 포획이 가능하다. 그러나 환경부는 집비둘기를 모두 포획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마땅한 해결 법안도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자체에 집비둘기 관련 민원이 꾸준히 들어오지만, 집비둘기로 인해 인간이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사례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그는 “집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단속 법안이 없다”며 “집비둘기를 단속하는 것도 찬반이 나뉜다”고 말했다.
비둘기가 얌전하게 앉아서 ‘구구구’ 소리만 내고 있어서 같이 거주하고 있다고 밝힌 주민도 있었다. 비둘기의 극단적인 퇴치는 최후의 방안이라고 이야기한 또 다른 주민은 “비둘기 똥만 해결할 수 있다면, 비둘기는 큰 문제가 없다”며 “불편하고 보기 안 좋다고 멸종까지 도달할 수 있는 극단적인 방법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2012년 집비둘기가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될 당시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현 '동물권행동 카라')는 임의로 포획하고 도살처분을 통해 집비둘기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집비둘기가 살아갈 수 있도록 장기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카라는 조류 박사 윤무부 경희대학교 명예교수의 의견서도 함께 발표했다. 윤무부 교수는 이 의견서에서 “비둘기들의 습성 및 환경을 조사하여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마련해 관리한다면, 이들이 도심에서 지내며 피해를 주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