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만'의 위기가 도래했다. 대한민국의 인구 변천사에 실로 위기가 닥쳤다. 한 명의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는 0.78 명으로 전년 대비 0.03 명 감소했다. 60년 전만 해도 아이를 너무 많이 낳아 문제였다는 과거는 뒤로 한 채, 한 세대로 지나지 않아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낮아지는 출산율에 정부의 긴급회의, 저출산 대·정책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실질적인 출산율을 높이기엔 아득하기만 하다. 과출산이 문제였던 과거와 현재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걸까.
과거를 살았던 기성세대와 현재 2030 세대의 큰 차이는 각자의 ‘삶의 질’이다. 여기서 말한 삶의 질에는 부모와 아이 모두가 만족하는 삶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 미래를 생각했을 때 어떠한 수준까지 삶을 꾸며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다. 이제는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통해 자신이 만족하고 일정한 수준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에 따른 판단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이 한 명을 낳아 온전한 성인으로 양육하기 위해선 엄청난 비용과 희생이 따른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날이 갈수록 과열되고 있다. 공교육보다 사교육의 비중이 확연히 커지고 우선순위가 된 현실에, 어릴 때부터 얼마나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는가에 따라 수준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출산을 망설이는 이유 중 돌봄 문제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육아휴직을 하거나 퇴사하고, 육아 도우미 없인 현실적인 양육이 어려운 판국에 최근 개편된 69시간 근무제는 난색을 보일 수밖에 없다.
69시간 근무제는 노동자의‘워라밸’을 보장하자는 취지의 개편안이다. 이를 아이 양육을 위한 시간을 보장하자는 목적의 부모 급여 정책과 나란히 봤을 때, 정책과 정책 간의 보편적인 목적은 비슷하지만, 실상은 모순 그 자체다. 주, 월, 반기, 정기 등으로 쪼개어 개편했다 한들 대기업 혹은 공기업과 같은 회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들이 재직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기본적인 노동법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실질적인 근무 시간만 늘어나게 된 셈이다. 정부 차원에선 근무시간 조정을 통한 개편안이 아닌 현존하는 권리 증진에 힘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유로운 결혼과 출산을 위해 정부 차원의 사회 구조 변화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비수도권의 일자리 창출, 부동산 관련 규제를 통한 집값 안정화, 적극적인 인플레이션 통제 등 고착화 된 사회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많은 것이 변해버린 세상에서 청년들은 좌절하고 포기한다. 초저출산이라는 문제에 사로잡혀 주먹구구식의 정치 유세로만 활용된다면 더 이상 오천만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다. 청년들은 바보가 아니다. 결혼과 출산을 통해 자신의 삶에 이득이 될 부분, 아닌 부분, 잃는 부분을 단호히 판단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채 아이만 낳으라 종용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픈 사회가 만들어져야만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 결혼과 출산을 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