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류(二刀流), 야신 혹은 만찢남. 미국 프로야구(MLB) 선수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 30, LA 다저스 소속) 이야기이다.
일본 검술에서 오른손과 왼손에 모두 검을 들고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하는 검술을 이르는 이도류를 구사하듯 투수와 타자를 겸비한 야구선수, 현실세계에는 없을 법한 만화 속 완벽한 ‘야구의 신’이 만화를 찢고 이 세상에 나온 것 같은 ‘만찢남’ 야구선수. 이 모두가 일본이 낳은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지난해 12월 LA에인절스에서 LA다저스로 이적한 ‘만찢남’ 오타니가 세상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10년간 무려 7억 달러(약 9240억 원)의 천문학적인 계약 금액에 모두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누가 계산했는지 모르겠으나 이 돈을 5만 원권 지폐를 한 줄로 쌓아 올리면 한라산 백록담보다 더 높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지 모르지만 1조 원에 가까운 돈 액수 자체가 일반인으로선 상상조차 되지 않는 금액이다.
이는 역대 MLB 최고 게약금액 기록을 깬 것이며,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2017~2021년 FC바르셀로나에서 받은 6억7400만 달러보다 많다. AP통신은 언론사 답게 이 돈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나 많은지를 알기 쉽게 비교해주었다. “오타니의 연봉은 볼티모어 오리올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선수단 1년 연봉을 초과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7억 달러 중 97%에 해당하는 6억8000만 달러를 계약기간이 끝나는 10년 후에 무이자로 10년간 분할해서 받는 이른바 지급유예계약(디퍼계약, Deferred)을 맺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그는 10년 동안 2000만 달러, 즉 매년 200만 달러씩만 받고 뛰게 되는데 그가 먼저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유는 팀의 전력강화를 위해서란다. 즉 다저스의 유동자금 확보에 도움을 주어 좋은 선수를 더 많이 영입할 수 있도록 스스로 양보했다는거다.
그가 이룬 야구 성적은 여기에서 세세하게 언급하지 않겠다. LA다저스가 그를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가며 데려간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키보드 몇 번만 두드리면 오타니가 거둔 투수와 타자 기록이 줄줄이 나온다. 오히려 현재의 그를 있게 한, 아니 오타니 자신이 스스로를 담금질한 과정이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야구 역대 한일전을 생각하면 심사가 뒤틀리다가도 오타니의 야구 인생을 들여다보면 존경심마저 들게 한다.
오타니의 인간성, 야구를 향한 몰입과 자기관리, 인생관 등은 그가 고등학교 1학년때 완성했다는 만다라트에 드러난다. 만다라트는 만다라(mandala)와 아트(art)의 합성어. 오타니는 큰 정사각형 안에 세로와 가로 두줄 씩을 그어 9개의 작은 정사각형을 만들고 한 가운데 정사각형에 드래프트 1순위로 일본 프로야구단에 입단하겠다는 핵심 목표를 적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몸만들기, 제구, 구위, 스피드 160km/h, 변화구, 운, 인간성, 멘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를 나머지 8개 칸에 구체적인 세부 목표를 세웠다. 몸만들기를 위해서는 영양제 먹기, 매일 식사로 저녁 7숫갈, 아침 3숫갈 이라고 적어놨으며, 구위 부분에는 ‘위에서부터 공을 던진다’ '볼을 앞에서 릴리스한다‘ 등 구체적인 사항들이 눈에 띈다.
야구선수가 몸을 만들기 위해 어떤 운동을 하고 무엇을 먹을지, 그리고 투수가 갖춰야 할 제구력과 구위, 스피드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은 야구 선수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모두가 하는 공통사항일 것이다. 그런데 오타니는 특이하게도 운, 인간성, 멘탈이라는 항목을 만다라트에 넣어두고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지금까지 실천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지금의 세계 최고의 ’만찢남‘ ’이도류‘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오타니는 멘탈 관리를 위해 ‘일희일비하지 않기’ ‘머리는 차갑게 심장은 뜨겁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 ‘마음의 파도를 안만들기’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을 유지하면서도 ‘승리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운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오타니는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쓰레기 줍기’ ‘인사하기’ ‘긍정적 사고’를 실천하자고 적어놨다. 그가 야구장에서 공수가 교체될 때 그라운드에 떨어진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은 작은 휴지조각은 물론 화난 관중들이 야구장 안으로 던진 쓰레기를 줍는 모습이 곧잘 카메라에 잡힌다. 그는 쓰레기 하나 주울 때마다 운을 하나 줍는다고 생각한단다. 오타니는 상대팀 선수들에게도 언제나 모자를 벗어 공손하게 인사한다. 투수로서 스트라이크를 볼로 판정하는 심판에게 언짢은 표정이나 화를 낼 법도 한데 언제나 웃음을 잊지 않는다.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선수다. 그러기에 앞서 반듯한 청년이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일관되게 실천하기는 어렵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면 대부분 천방지축 날뛰고 반항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다. 그런 시기에 오타니가 이런 계획을 세우고 지금까지 하루 하루 이를 지켜오고 있다는 게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보다 배 이상 나이를 많이 먹은 입장에서 부끄럽고 한편으론 그가 존경스럽다. 새해 아침에 오타니에게 인생을 다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