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분석의 3단계: 초기유망구조, 잠재유망구조, 시추유망구조 분석
동해 석유탐사는 시추 직전 단계... 지질전문가의 사투 기억해야
20세기 냉전 기간에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치열했다.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무기를 비롯한 군사적인 분야에서의 경쟁은 물론, 과학기술 발전을 상징하는 우주개발 경쟁도 뜨거웠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함에 따라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아폴로계획과 같은 대규모 우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국과 소련 간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미국은 과학교육 혁신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도 크게 늘렸다. 그런 냉전 시대 우주 경쟁에서 미국이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가 정부의 재정지출을 뒷받침한 미국 석유기업들의 중동지역 탐사 성공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계 최대 가와르 유전
20세기 초에 미국의 일부 석유 전문가들이 중동지역에서 석유 발견 가능성을 예견했다. 미국 석유기업들은 1920년대부터 중동지역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1938년에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담맘(Dammam) 인근의 ‘담맘 7번 유정’에서 석유를 발견했다. 담맘 7번 유정의 발견은, 현재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아람코(Aramco: Arbian American Oil Company, 아람코는 설립 당시 미국 회사였으나,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1975년에 25% 지분을 인수하고 1980년에 나머지 지분을 모두 인수한 다음, 1988년에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로 개명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의 약칭)의 모태가 됐을 뿐만 아니라 미국 석유기업들의 중동지역 진출을 촉진했다. 아람코는 1948년에 사우디아라비아 ‘가와르(Ghawar) 지역’의 석유부존 가능성을 파악했고 1951년에 그 지역 중 북쪽인 아인 다르(Ain Dar)에서 석유를 발견했다.
그림에서 보듯이 아람코는 가와르 유전지대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탐사 범위를 넓혀 1952년에는 북쪽의 셰드굼(Shedgum)에서, 그리고 1953년에는 중부의 우트마니야(Uthmaniyah)에서, 1954년에는 하위야(Hawiyah)에서, 1955년에는 남쪽의 하라드(Haradh)에서 석유를 연속적으로 발견하였다. 이로써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가와르 유전 지대가 세계 최대 규모 유전임이 밝혀졌다. 길이 약 280km, 폭 30km에 이르는 가와르 유전은 현재까지 누적 생산량이 960억 배럴에 이르며 지금도 하루 400만 배럴을 생산 중인 세계 최대 유전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진행된 가와르 유전의 대규모 개발사업에 따라, 아람코는 수천 개 유정을 시추했고, 관련 인프라를 대폭 확충했다. 이처럼 중동지역에서의 석유탐사 성공으로 미국 석유기업들이 얻은 막대한 수익이 미국의 60-70년대 우주개발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했다. 미국의 석유 지질전문가들은 미국의 중동 석유탐사 성공이 달 탐사의 뒷배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석유와 커피의 닮은 점
황량한 사막의 모래 아래에서 석유 부존 가능성을 인지하고 찾아내는 사람들은 지질학자다. 그들이 어떻게 땅속의 검은 황금을 찾아 나가는지 알아보자. 석유(원유)는 여러모로 커피와 닮은 점이 있다. 커피 분말에 뜨거운 물과 압력을 가해 커피를 추출하고, 컵에 받아서 빨대를 꽂아 마시는 과정이 석유 생성 과정과 유사하고, 갓 생산된 커피나 원유는 뜨겁고 검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끄는 점에서도 닮았다. 석유는 지질시대에 광합성을 통해 형성된 유기물(커피의 경우, 원두)이 지하 깊이 묻히면서 열과 압력을 받아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열분해(pyrolysis)하여 생성된다(커피의 경우, 커피머신). 석유는 주변의 암석보다 가볍기 때문에 서서히 위로(커피는 아래로) 이동한다. 이동 중에 막다른 곳에 이르러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하고 한 곳(집유장, 集油場 또는 trap)에 모이게 되면(커피의 경우, 컵), 그곳을 시추하여(커피의 경우, 빨대를 꽂아) 지상으로 뽑아 올린다.
석유 부존의 조건: 퇴적분지, 근원암, 저류암, 덮개암, 그리고 집유장
석유탐사는 제일 먼저 퇴적층이 쌓이는 퇴적분지에 대한 조사(분지 해석)로부터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석유는 유기물을 포함한 퇴적암층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커피로 비유하자면, 커피 애호가들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주변의 커피 전문점을 찾는 것과 같다. 탐사 대상 퇴적분지에 대한 문헌조사나 야외지질조사를 통해 ‘근원암(根源巖 또는 source rock, 석유의 원료인 유기물을 포함한 암석으로 석유의 근원이 되는 암석)’의 존재와 근원암이 원유를 생성할 만한 온도와 압력 조건에 있었는지 조사한다. ‘저류암(貯留巖 또는 reservoir rock, 석유가 스며들 수 있는 작은 틈, 즉 공극, 孔隙이 발달한 암석)’이 아무리 좋아도 근원암이 없으면 석유 자체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원암과 원유 생성 가능성이 확인되면, 저류암을 찾아본다. 저류암이 확인되면, 저류암의 일부를 덮고 있는 ‘덮개암(cap rock)’을 찾아본다. 그리고 저류암이 덮개암으로 덮여있는 곳(저류암에 모인 원유가 새어 나가지 않고 모이는 곳으로, 이곳이 바로 ‘집유장’이라 함)을 찾아본다. 이런 여러 암층과 집유장이 확인되면 탐사 대상 지역의 잠재성을 평가하기 위해, 해당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 열적 성숙도, 석유가스의 생성 및 이동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석유 시스템 분석’을 실시한다.
퇴적물이 쌓여 퇴적암이 형성되는 퇴적분지에 석유의 근원 물질인 유기물이 있고, 적절한 온도 압력 하에서 열분해됐으며, 생성된 석유가 이동하다가 보관될 수 있는 곳이 형성되었다면, 그러한 퇴적분지에서 석유 발견을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석유와 가스가 생성, 이동, 집적, 보존되는데 필요한 모든 요소의 조합을 ‘석유 시스템(petroleum system)’이라 한다. 석유 시스템은 세 가지 요소와 세 가지 작용을 적절한 순서에 따라 작동시키는 지질작용의 산물이다.
석유 시스템의 세 가지 요소와 세 가지 작용
여기서 세 가지 요소는 유기물을 포함한 ‘근원암’, 석유가 스며들어 모일 수 있는 ‘저류암’, 저류암에 모여 더 이상 달아나지 못하게 막아주는 ‘덮개암’을 가리킨다. 세 가지 과정은 지하에 묻힌 유기물의 열분해로 인한 ‘원유 생성(generation)’, 근원암에서 생성된 원유가 ‘저류암으로 이동하는 과정(migration)’, 그리고 집유장에 모인 원유가 더 이상 분해되거나 새어 나가지 않고 ‘보존되는 과정(preservation)’을 가리킨다. 석유 시스템의 세 가지 요소와 세 가지 작용이 적절한 순서로 작동하는 타이밍이 또한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석유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되려면 세상의 모든 일처럼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저류암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유가 이동하게 되면 집유장에 모일 수 없을 테니 석유 시스템 분석에서 석유가스를 탐사할 퇴적분지나 광구지역의 지질 역사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초기유망구조 분석 단계
석유 시스템 분석으로 가능성이 엿보이면, ‘초기유망구조(lead)’ 분석 단계로 넘어간다. 초기유망구조는, 아직 충분한 지질 자료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석유나 가스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지질구조나 지층을 의미하므로, 추가적인 탐사와 분석이 필요하다. 석유탐사에서 필수불가결한 탄성파 탐사자료의 해석에서 제일 먼저 배사(背斜)구조처럼 폐쇄된 구조(closure)를 찾는데, 이 작업이 초기유망구조를 찾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초기유망구조 분석 단계에서는 지질학적, 지구물리학적 자료를 확보하여 ‘잠재유망구조(play)’를 식별해 내려고 노력한다. 초기유망구조의 규모, 위치, 지질학적 특성 등을 고려하여 잠재유망구조 후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추가 탐사 계획을 수립한다.
잠재유망구조 분석 단계
초기유망구조 분석이 성공적이라면, 잠재유망구조 분석 단계로 넘어간다. 잠재유망구조는 초기유망구조 가운데 추가 탐사를 통해 석유나 가스의 존재 가능성이 높게 평가된 구조를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는 지질학적, 지구물리학적, 지화학적 자료를 종합하여 잠재유망구조의 특성을 평가한다. 잠재유망구조 평가 시에는 ‘저류암의 분포’, ‘덮개암의 특성’, ‘트랩의 형태’, ‘탄화수소의 이동 경로’ 등을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잠재유망구조 기반의 탐사 활동: ‘경제성’과 ‘성공 여부’ 판단 단계
그다음은 위의 4가지 평가 요소별로 시공간적인 가시화(可視化) 또는 도면화(圖面化) 작업과 지질학적 관점의 ‘성공 가능성(possibility of success, POS)’을 계량화한다. 예를 들면, 저류암의 두께와 공극률, 분포 범위 등이 양호하면 저류암 분포에 대한 리스크가 거의 없다고 보아 POS=1로 정한다. 이와 같이 각 평가 요소별 가시화와 POS 계량화 작업을 통한 엄격한 지질학적 평가 과정의 탐사 활동을 ‘잠재유망구조 기반의 탐사(PBE, Play-Based Exploration)’라 부른다. 석유 시스템 분석이나 초기유망구조 분석과 달리, 잠재유망구조 분석에서부터는 탐사의 성공 여부와 경제성을 고려하여 탐사의 위험 요소를 석유지질학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잠재유망구조 분석 결과, 위의 네 가지 주요 평가 요소가 모두 만족스러워야 탐사가 성공할 수 있으므로, 각 평가 요소별 POS를 곱한 값이 일정 수준 이하가 되면, ‘시추유망구조(prospect)’에서 탈락시킨다. 만약 시추유망구조의 판정기준이 네 가지 POS를 곱한 값이 0.7 이상이어야 한다면, 각각의 POS가 0.9보다 커야 하므로(0.9×0.9×0.9×0.9=0.6561) 각 평가 요소마다 거의 리스크가 없어야 가능하다. POS에 기초한 시추유망구조 판정기준은 기업마다 다르다. 이 기준을 비교적 엄격하게 적용해야 탐사 실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지질학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잠재유망구조 분석 단계부터는 경제성을 고려하여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시추 위치를 선정하고, 매장량 평가를 수행한다. 이 단계의 주요 목표는 탐사의 성공과 실패 가능성을 지질학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여기서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본격적으로 시추를 고려하는 시추유망구조 분석 단계로 넘어간다.
시추유망구조 분석 단계
시추유망구조는 지질학적, 지구물리학적 자료 분석을 통해 경제적 가치가 있는 석유나 가스의 매장이 예상되는 구조를 의미하는데, 시추를 전제로 삼기 때문에 경제성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 단계에서는 저류암의 물성, 트랩의 형태와 크기, 석유가스의 부존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시추유망구조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시추 위치, 심도, 방향 등을 결정하고, 매장량 평가의 정밀도를 높인다. 시추유망구조 단계의 목표는, 경제성 분석, 리스크 평가 등을 수행하여 시추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일이다. 여러 개의 시추유망구조가 도출된 경우, 각 유망구조별 시추 성공 여부에 따른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경제성을 따져보고, 시추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동해 탐사사업은 ‘시추 직전 단계’
위에서 간략히 설명한 바와 같이 석유 탐사사업은 분지 해석(존재가능성 파악), 석유 시스템 분석(석유 생성 여부 파악), 초기유망구조 분석(탐사할 만한 대상의 파악), 잠재유망구조 분석(성공 가능성 분석), 시추유망구조 분석(경제성 분석) 등의 단계를 차례로 밟아 나가며, 각 단계마다 점진적으로 지질정보의 양과 질이 향상된다. 단계가 진행될수록 탐사 대상 지역의 석유나 가스 부존 가능성과 경제적 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들게 된다. 그렇지만 탐사자료는 수박을 두드려 보고 판단하는 것처럼 간접적인 불완전한 자료이고, 그런 자료를 해석하는 인간의 인지능력이 불완전하므로 탐사의 불확실성은 제거되지 않는다. 동해 탐사사업의 경우, 현재 시추유망구조 분석을 마치고 시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시추유망구조 선정은 짧은 기간에 실행 가능한 간단한 작업이 아니라 위와 같은 체계적인 단계를 거치면서 여러 분야 지질전문가의 지질학적 사고를 집약한 집단지성의 산물이다. “과학은 제한된 감각을 넘어, 선입견과 편향을 넘어,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 무지와 약점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지질전문가들의 과학적 노력이 불확실성과의 고난한 사투임을 이해하고 오랜 기간 애써온 석유공사 지질전문가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