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에서는 영남권을 떠들썩하게 한 발표가 있었다. 1992년 부산시 도시 기본계획에서 최초로 김해공항의 대안 공항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 여러 정치인들이 끊임 없이 공약으로 제시했던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프랑스 용역업체의 발표였다. ‘가덕도냐, 밀양이냐’를 두고 갑론을박했던 가운데, 결과는 예상을 빗나간 ‘김해공항 확장’이었다.
부산시 강서구에 위치한 가덕도는 우리나라에서 인천공항 다음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김해국제공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24시간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밀양과 함께 유력 후보지로 떠올랐던 곳이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가덕도 신공항 유치에 실패하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힐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부산시의 가덕도 신공항 유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조용한 어촌마을을 뒤흔들어 놓은 신공항 건설 논란은 10년이 넘도록 가덕도를 ‘희망고문’했다.
그 가덕도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 주민들은 요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공항 좌절 5개월이 지난 지금 가덕도 주민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신공항 예정부지였던 가덕도 대항새바지와 천성동을 찾아갔다.
쌀쌀한 11월의 날씨 속에 찾아간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는 평화롭고 조용한 어촌마을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차 문을 열자마자 강렬한 바다 냄새를 뿜으며 펼쳐진 섬마을 풍경이 눈앞에 다가왔다. 가족 단위 관광객과 낚시꾼들이 방문객이 주를 이루는 이곳은 도심에선 보기 힘든 여유가 보인다. 여러 매체들의 보도처럼 가덕도 주민들 역시 신공항 좌절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직접 만나본 주민들은 의외로 덤덤했다. 그들의 ‘진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았다.
가덕도 천성항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백철민(35) 씨는 “이번 발표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입지 선정이 안 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에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혹시 가덕도로 유입되는 관광객의 발길이 줄어들어 금전적인 손해를 보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백 씨는 “원래 이곳은 유동 인구가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낚시꾼들이 몰려 관광 전망은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고 답했다. 천성항 근처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30) 씨 또한 “가덕도의 관광객 수요는 공항으로 난리가 난 후엔 지금은 낚시로 더 큰 영향을 받는다”며 비슷한 주장을 폈다.
가덕도에서 평생을 살아온 허영호(78) 씨는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공항이 안 들어와서 좋다. 우리는 바다를 보면서 살기 때문에 농사도 잘 짓지 않는데, 공항이 들어오면 바닷일도 어려워질 뻔했다. 결국 공항이 들어오면 삶의 터전을 잃게 될 뻔했다”고 말했다. 가덕도에 실질적인 타격은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손사래를 치며 “우리 부락에는 큰 타격이 없었다”며 김해 공항 확장안에 찬성한다고 했다.
다수의 주민들은 가덕도 본연의 모습을 지킬 수 있어서 좋다며 김해공항 확장안에 찬성했다. 하지만 가덕도 공항 유치 실패는 그간 가덕도의 발전 가능성을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에게는 금전적인 손해를 불러왔을 터. 실제로 2009년에 가덕도가 밀양과 함께 최종 신공항 예상 입지로 선정되면서 가덕도의 땅값은 몇 배 뛰었다.
24일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부산시 강서구 대항동에서 2006년 8월에 거래된 자연녹지지역 약 722㎡가 3,000만원에 거래됐지만 2016년 4월에는 자연녹지지역 약 380㎡가 1억 1500만원에 거래됐다. 이는 2006년 8월에는 3.3㎡당 가격이 4만원 꼴이었던 것이 던 것에 비해, 2016년에는 약 30만원으로 7.5배 올랐음을 뜻한다.
가덕도 대항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대항동 이장 황영우(53) 씨는 “가덕도는 원래 토지거래 허가구역이기 때문에 그간 발전이 어려웠다. 신공항이 들어서면 토지거래 허가구역이 해제돼 카지노, 골프장 등이 개발되기로 했기 때문에 땅값이 많이 올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항동 주민 김모(60) 씨는 “땅값이 오르든 외지인이 들어오든,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고 특별히 반대 입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신공항이 가덕도에 지정됐어도 정부의 뜻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연을 해치거나 주변 환경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신공항이 들어 선다고 마구잡이로 건물을 짓는 걸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차라리 잘 됐다”고 말했다.
현재 가덕도 내에는 신공항 건설 특수와 보상금을 노렸던 다수의 주거용, 상가용 건물들이 완공되었거나 건설 중이다. 신축 건물들은 대개 비어 있었고, 건물을 짓다가 포기 한 곳은 을씨년스럽게 방치돼 마을의 흉물이 되어 있었다.
가덕도가 고향인 김성건(30, 부산시 영도구) 씨는 지난 달 오랜만에 가덕도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신공항 때문에 가덕도가 떠들썩한 것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새 건물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김 씨는 “가덕도 본연의 모습을 잃은 느낌이다. 부산의 구석구석까지 어느 곳 하나 개발되지 않은 곳이 없는 상황에서 가덕도 한 곳 만큼은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쉽다”며 예전의 가덕도를 추억했다.
반면 신공항 효과를 기대하고 대항동 새바지 인근에 무인카페와 편의점을 마련한 이지영(55) 씨는 “지역주민들에게는 큰 영향이 없을지 몰라도 이윤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에게는 문제가 생겼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팔아야 하니 손해가 났다. 밀양보다는 타격이 작은 편이지만, 투자자들에게 타격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하지만 대개의 투자자들은 외지인들이고 이 씨 자신도 외지인이어서 가덕도 본토 주민 중에 손해를 본 사람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부산 전 지역의 상가 매매 업무를 맡고 있는 부동산 업자 김모(57, 부산시 부산진구) 씨는 “원래도 가덕도 땅의 거래량은 그리 많지 않았고, 신공항 발표 이후는 더 줄었다. 신공항을 기대했지만 (입지 선정이) 안 되었으니 빨리 땅을 팔아달라는 일부 요청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간 가덕도의 토지 매매를 많이 해 봤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해안가를 뺀 내륙 쪽은 다 산지라 토지로는 매력이 없는 땅”이라며 “거기다 토지거래 시 강서구청의 허가가 필요한 까다로운 곳인 데다 공항 유치까지 실패했으니 앞으로도 가덕도 토지 거래는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덕도 주민들은 신공항이 없어도 가덕도 그 자체를 사랑하는 듯했다. 대항동 이장 황영우 씨는 “신공항이 무산되면서 인근 종합개발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공항이 들어서네, 안 들어서네 하며 토지 개발은 물론이고 현지 사람들에게까지 족쇄를 채운 정치놀음에 놀아난 것 아니냐. 결국 아픔을 겪는 것은 현지 주민”이라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덕도민과는 상의도 없이 가덕도를 내세워 부산시장 선거 운동했던 서병수 시장은 자신 말대로 책임졌어야 하는 것 아닌가. 가덕도는 누구라도 절대 함부로 주무를 수 있는 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홍보 수단으로 이용했다. 힘없는 가덕도 주민들의 마음을 안다면 그렇게 해선 안 된다”며 그간의 답답함을 술 한 잔에 담아 토로했다.
많은 매체에서는 가덕도 신공항이 가덕도 주민들의 오랜 염원이자 바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이 지나도록 선거철마다 외치던 ‘가덕도 주민의 바람, 부산의 희망’은 가덕도 주민의 것은 아닌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