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끝난 지 66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전쟁의 불안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이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을 기리는 특별한 공원이 부산에 있다.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유엔기념 공원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이란 이름이 붙은 ‘유엔기념 공원’으로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이 안장된 곳이다.
1950년 10월 통일을 목전에 두고 한국군은 압록강으로 북진을 계속했다. 그때 중공군이 참전해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유엔군 사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51년 1월, 본국으로 수송할 겨를이 없는 상황에서 전사자 매장을 위해 유엔군 사령부가 유엔기념 묘지를 부산에 조성했다. 전국 각지에 가매장돼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된 이곳 유엔기념 공원 면적은 14.39㏊(약 4만 5,000평)이다. ‘재한 유엔기념 묘지’란 명칭으로 출발했으나, 친숙한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2001년 한국어 명칭을 ‘재한 유엔기념 공원’으로 변경했다.
이곳은 세계 유일의 UN묘지라는 특수성을 살려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나도록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유엔기념 공원을 찾은 박선옥(48) 씨는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서 평소에도 자주 찾곤 하는데 올 때마다 경건한 마음이 절로 생긴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유해가 안장된 주 묘역에는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터키, 영국, 미국 등 7개국의 묘역이 있다. 처음 유엔기념 공원에는 21개국 유엔군 전사자 약 1만 1,000여 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었다. 하지만 일부 유해가 그들의 조국으로 이장돼 현재는 유엔군 부대에 파견 중에 전사한 한국군 중 36명을 포함하여 11개국의 2,300구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참전용사들 뿐만이 아니라 부부가 같이 안장된 부부합장묘도 있다. 유엔기념 공원 관계자는 남편 옆에 같이 묻어 달라는 부인들은 모두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참전용사 중 사후에 개별적으로 부산 유엔묘지에 안장되는 사례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엔기념 공원에는 묘역 뿐만이 아니라 의미 있는 건축물 또한 많다. 한국전쟁 당시의 유엔군 사진자료 및 기념물이 전시되고 있는 기념관도 있다. 그곳에는 그 당시 최초로 사용되었던 유엔기도 정면에 전시돼 있다.
기념관에는 국내에 세워져 있는 한국전쟁 관련 참전 기념비, 변해가는 유엔기념 공원의 모습, 그리고 각국에서 방문한 VIP 들의 모습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이 전시돼 있다. 기념관 관계자는 참전용사들이 이곳을 방문해 그 당시의 자기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잘 가꾸어진 모습에 감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캐나다인 데이비드 크루라는 한 한국전 참전용사가 한국전쟁이 끝나고 몇 십 년이 지나 이 기념관을 방문해 자신의 군 생활 당시 사진이 전시된 것을 발견하고 감격했다"는 일화를 전해 주었다. 관계자는 “참전용사들이 방문을 해서 당시를 회상하는 모습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며 “유엔기념 공원이 관리가 잘 돼 있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을 보면 더 책임감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한국의 유명 건축가 김중업 씨가 설계한 추모관도 방문객들의 눈길을 끈다. 이곳은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과 의지를 담은 추모 공간으로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추모관에서는 유엔기념 공원 홍보 동영상도 볼 수 있다. 15분간 상영되는 한국전쟁과 유엔기념 공원의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참배객들에게 한국전쟁과 유엔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추모관에 들려 영상을 관람한 박상용(77) 씨는 “내가 어린 시절에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을 영상으로 보니까 먹먹해진다”고 전했다.
유엔기념 공원에서 8년째 자원봉사 일을 하고 있는 류진화(84) 씨는 추모관에서 영상을 틀어주는 일을 맡고 있다. 그는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추모관에 들려서 영상을 보고 가는 분들에게 영상을 틀어주고 설명도 해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유엔기념 공원에는 한국인들 뿐만이 아니라 미국,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위해 방문하곤 한다. 문화관광해설사로 국내외 참배객들에게 유엔공원 조성 경위와 6.25 전쟁을 설명하는 일을 맡고 있는 최구식(73) 씨는 외국인들도 한국전쟁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선조들이 전쟁에서 어떻게 싸웠는지 설명해 주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유엔기념 공원에 있는 기념관과 추모관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방문도 잦다.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려고 이곳을 찾았다는 안현우(23) 씨는 “처음에는 공원이 아름다워서 들렀는데 기념관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보고 해설도 들으니 마음이 경건해진다”고 말했다.
추모관을 나와 길을 따라 가다보면 녹지지역이 나오는데, 유엔군 위령탑을 지나 더 내려가다 보면 11개의 계단으로 구성된 수로인 ‘무명용사의 길’이 나온다. 이 길은 11이라는 숫자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11개의 물 계단, 11개의 분수대, 수로 가에 줄지어 있는 11개의 소나무까지 모두 11개로 구성되어있다. 이것은 유엔기념 공원에 안장된 11개국을 의미한다. 대학생 이지예(22, 부산시 동래구 사직2동) 씨는 “유엔기념 공원이 학교 근처에 위치해서 자주 들르곤 하는데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유엔기념 공원의 충실한 관리에 나선 것은 대한민국이 은혜를 아는 의리 있는 국가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인식시키고 혈맹관계를 바탕으로 한 돈독한 외교관계의 초석으로 삼기 위한 것. 한국전쟁에 참여했거나 목격한 세대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유엔기념 공원은 후세에 전쟁의 비참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 되기도 한다. 부산시도 부산의 대표적인 '전쟁 유적' 관광명소로 자리잡도록 가꿔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