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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어느날, '부역'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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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어느날, '부역'의 추억
  • 칼럼리스트 손동우
  • 승인 2016.12.29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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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니스트 손동우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부역’이라는 낱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➀부역(賦役)은 ‘국가나 공공단체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하여 보수 없이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노역’이고, ➁부역(附逆)은 ‘국가에 반역이 되는 행위에 동조하거나 가담하는 것’이다. ➂부역(赴役)은 ‘병역이나 부역(賦役)을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전대미문의 엽기적 헌정 유린 사건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진행되면서 ‘부역’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주로 야당이 여당을, 여당 내에서 비박계가 친박계를 ‘최순실 부역세력’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범죄를 묵인·방조·엄호한 것이 나라의 기틀, 곧 국기(國基)를 무너뜨린 행위라는 뜻이다. 특히 새누리당 비박계(지금은 탈당해서 ‘개혁보수신당’을 꾸렸지만)는 서청원,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 이정현, 조원진, 김진태, 이장우 등 친박계 의원 8명을 ‘최순실의 남자’ 곧 ‘최순실의 부역자’로 지목한 뒤 “당을 떠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서의 ‘부역’은 당연히 ➁를 가리킨다. ‘부역’이 국가나 민족에 대한 반역죄인만큼 그 처벌 또한 가혹할 수밖에 없다. 근대에 이르러 반역자 처단을 가장 성공적으로, 가장 엄혹하게 실행에 옮긴 나라는 아마도 2차 대전 직후의 프랑스일 것이다.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던 1940년에서 1944년까지의 5년 동안 나치의 괴뢰였던 비시 정권은 의무노동제를 도입하여 65만 프랑스 노동자를 독일의 공장으로 보냈으며, 나치가 ‘적을 체포·처벌·제거’하는데 악명높은 협력을 자행했다. 나치의 ‘적’이란 곧 레지스탕스, 사회주의자, 유태인 등이었다. 실제로 유태인들은 비시 정권의 협력으로 7만 6,000명이 수용소로 끌려갔고, 그 중 3%만이 살아남았다. 특히 부역자의 대명사였던 ‘협력주의자’들은 가장 극단적인 반역행위를 일삼았다. 이들은 친나치정당을 이끈 정치인들과 파시즘을 설파한 언론인들로 대별되는데 이 언론인들의 영향력이 정치인들보다 훨씬 컸다. 언론인들의 죄질이 훨씬 악질적이었다는 뜻이다. 나치가 무너지고 파리가 해방된 후 시작된 부역자 처벌에서는 그야말로 피바람이 불었다. 부역 혐의자 12만여 명이 재판에 회부됐고, 1만 500명에게 사형이 집행됐다. 공민권 박탈자도 5만 명이 넘었다. 곡필을 휘둘렀던 언론인들에게는 예외 없이 사형 등의 중형이 선고됐다. 부역자들 가운데서도 이들을 향한 민중의 증오가 가장 드높았기 때문이었다. ‘박순실 게이트’의 부역자들 가운데 핵심은 새누리당의 친박계 의원들이나 김기춘·우병우와 같은 ‘법률 미꾸라지’ 등이겠지만 언론도 결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TV조선'의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와 같은 낯뜨거운 아부와 무조건적 찬양을 일삼았던 언론과 언론인들은 어떤 형식이든지 책임을 져야 한다. ‘부역 언론’에 대해 이런 저런 상념에 젖다가 문득 ‘나도 그 일원이 아니었던가’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2007년 이맘때였다. 당시 나는 '경향신문' 논설위원이었다. 그때 경향신문은 박근혜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논설위원실에서는 아침 회의에서 “우리 신문이 뽑은 올해의 인물을 사설로 받쳐주자”고 결정했고, 정치담당이었던 내가 쓰기로 했다. 2007년 12월 27일 “‘올해의 인물 박근혜’가 말해주는 것”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전문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무릇 승패를 겨루는 일, 특히 선거에서 대중의 환호와 이목은 승자에게 쏠리는 법이다. 패자는 승복, 민의(社情民意) 존중 따위의 아름다운 언설로 패배를 자위하면서 권토중래를 기약하지만 금방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곤 한다. 그런데 승부에서는 분명히 졌지만 승자 못지 않은 주목과 상찬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사실상의 대선 결승전’이었던 한나라당 경선의 패자 박근혜 전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경향신문은 어제 박 전 대표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선정 사유는 두 가지다. 눈 앞의 이익보다는 대의를 존중하는 ‘원칙’과 파괴적 정치언어의 홍수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는 ‘절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명박 후보와 겨룬 건곤일척의 당내 경선에서 선거인단 선거에서는 이기고 여론조사에서 져서 대통령 후보의 자리를 놓치는 상황에서도 깨끗이 승복했다. 또한 그는 온갖 복선과 간지(奸智)가 덕지덕지 묻어나고, 상대의 가슴을 후벼파는 폭언이 난무하는 우리의 정치언어 환경 속에서 간명하고 핵심적인 어법으로 주위를 압도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라는 사실상의 경선 불복에 대해 “정도가 아니다”라고 짤막하게 언급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올해의 인물 박근혜’는 배신, 야합, 반칙, 변칙 등의 불합리와 부조리가 당연한 것처럼 치부되는 우리의 현실 정치가 ‘원칙’과 ‘절제’의 경연장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일깨워준다. 사실 박근혜의 ‘원칙’과 ‘절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이행해야 할 상식적인 덕목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모습의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단연 돋보이는 것이다. 정치뿐만 아니다.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고, 반칙과 몰상식을 일삼는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일은 이제 모든 분야에서 사라져야 한다. ‘박근혜 정치’가 우리 사회의 상식과 원칙을 바로세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사설에서도 언급됐지만 박근혜가 경향신문의 2007년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그해 8월 한나라당 경선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이었다. 선거인단 선거에서는 이기고 여론조사에서 패배해서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치는 상황에서도 그는 억울해하거나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승복했다. 당시 정치상황에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된다는 것은 곧 대통령 당선을 의미했기 때문에 박근혜로서는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대통령 일보직전에서 좌절한 셈이었다. 박근혜의 이러한 모습에 대중은 박수를 보냈고, 나 역시 박근혜의 정치적 반대자에 속했지만 그러한 자세에는 높은 점수를 매겼다. “눈 앞의 이익보다는 대의를 존중하는 원칙,” “파괴적 정치언어의 홍수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는 절제,” “간명하고 핵심적인 어법으로 주위를 압도,” “박근혜 정치가 우리 사회의 상식과 원칙을 바로세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 운운의 대목은 지금와서 읽어보면 낯뜨거운 것이긴 하지만 적어도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진보를 지향하는 언론사의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된 보수 정치인’을 ‘제대로 평가했다’는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도 느꼈다. 나는 그때 최순실의 존재를 몰랐고,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도 몰랐다. 또한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가 보여준 모습에 대해서는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인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게다가 사설은 나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경향신문이라는 언론사 전체의 공식적인 견해였다. 이런 것들을 내세우며 변명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박근혜 게이트’ 발생에 조금이나마 부역했다”는 사실로부터는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현대 사회학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막스 베버는 정치인이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꼽았다. 신념윤리란 대의와 명분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며, 책임윤리란 자신의 언행의 결과로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언론인도 정치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실, 정의, 공동선 등의 보편적 가치에 헌신하고 복무하는 ‘신념윤리’와, 자신이 쓴 글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책임윤리’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특히 ‘책임윤리’가 중요하다. 선의를 바탕으로 쓴 글, 또는 그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쓴 글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나중에 어떤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을 때 책임질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쓸 당시 박근혜에 대한 선의를 갖고 있었다. 또 그런 글을 써도 무방한, 어쩌면 그런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부역죄 조각사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부역 행위는 2차대전 직후 프랑스의 부역자 재판소나, 해방 직후 이땅의 친일파들을 단죄한 반민특위에서처럼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 필자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사설이었던 만큼 내가 입을 다물면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내가 커밍아웃을 한다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뭘 그까짓 거 갖고 그러느냐’며 관용을 베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임윤리’를 다하고 싶다. 내가 책임지는 방안은 이런 기회를 통해서나마 나의 행위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글을 쓸 때, 그것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도 최대한 심사숙고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9년 만에 떠오른 ‘부역의 추억’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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