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상대 진영 비판 받고도 지지층 결집 의도로 연일 욕설...문재인·심상정도 가세 / 정인혜 기자
대통령 선거가 1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후보자들의 입이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이놈’, ‘도둑놈의 새끼들’은 물론 ‘지랄’이라는 욕설까지 서슴없이 쓰고 있다. 지지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줌으로써 막판 표심을 붙들려는 포석이란 분석도 있지만, 막말이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막말 논란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후보는 단연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다. 홍 후보는 지난달 29일 경남 김해에서 유세 연설을 하던 도중 “도둑놈의 새끼들”이라는 발언을 입에 올렸다. 이날 그는 자신이 경남도지사에서 퇴임할 때 소금을 뿌린 시민단체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홍 후보는 “(경남도지사 하면서) 빚 다 없애주고, 50년 먹고살 것 마련해주고 청렴도 꼴찌였던 것도 1등 시켜주고 나왔는데, 집 앞에서 데모를 하질 않나, 퇴임하는 날 앞에서 소금을 뿌리지 않나”라며 “에라이, 도둑놈의 새끼들이 말이야”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이에 다른 후보 측은 일제히 홍 후보를 성토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캠프 측은 이날 논평을 통해 “‘홍준표 막말’은 한도 끝도 없다”며 “여성 폄하 발언, 취재기자에 대한 폭언,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망언 등 과거 발언은 물론 유세가 진행되는 현재에도 경악을 금치 못할 막말과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아무리 막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에 ‘도둑놈 XX들’이라고 하는 모 후보나, ‘적폐세력’이라고 하는 모 후보나 도긴개긴”이라며 “한심하다”고 말했다. ‘적폐세력이라고 하는 모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는 지난 6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적폐세력 지지도 많이 받는 상황”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같은 비판에도 홍 후보의 막말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홍 후보는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인천 부평에서 거리 유세하던 도중 “언론에서 어떻게 하면 홍준표를 비틀 수 있을까 한다”며 “어떻게 해서라도 나를 대통령 안 시키려고 온갖 '지랄'들을 하고 있다”며 방송 불가 수준의 막말을 했다. 홍 후보는 또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조사기관에 대해서도 "집권하면 한두 개는 문을 닫게 하겠다"고 언론자유에 배치되는 발언도 했다.
문 후보의 발언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문 후보는 지난 30일 충남 공주시 유세에서 “선거철이 되니까 또 색깔론, 종북몰이가 시끄럽다”며 “이젠 국민도 속지 않는다, 이놈들아”라고 말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거센 단어들을 늘어놓고 있다. 심 후보도 이날 대구 동성로를 찾아 “수구 보수는 염치가 없다”며 “막가파나 다름없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심 후보는 “대통령 만들어 헌정 사상 초유의 파면을 당했으면 다음에는 자중을 해야 되는데, 정권을 잡겠다는 것도 모자라서 하필 그 사람이 부패 비리 혐의로 형사 피의자”라고 홍 후보를 겨냥했다. 이어 “온갖 엽기적 발언과 행동을 해서 제가 좀 싫어한다”며 “말도 듣기 싫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렇듯 후보자들이 거친 발언을 쏟아내는 데는 선거 판세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지지층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져 표심을 결집시키겠다는 의도인 것. 1위 굳히기든 막판 뒤집기든 각각 지지층을 결집하는 차원에서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실제 홍 후보의 지지율은 최근 계속 상승세를 타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10%를 넘어섰다. 홍 후보는 지난달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지지율 15%를 넘어설 것을 장담한다”며 “사실 구체적으로 이야기는 안 하는데 이미 훨씬 넘어섰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한심하다’는 반응이다. 직장인 김경운(33, 서울시 중랑구) 씨는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도 이런 질 떨어지는 선거는 안 하겠다”며 “한 나라 대표를 뽑는 대선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품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요즘 보면 다들 ‘우리나라를 어떻게 끌어나가겠다’는 이야기는 없고 상대방 약점만 잡고 늘어지는 것 같다”며 “살다 살다 대통령 후보들이 국민들에게 욕 퍼붓는 장면을 볼 줄은 몰랐다”고 혀를 끌끌 찼다.
이에 유권자들이 더 냉정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직장인 하모(28) 씨는 후보들 간의 막말 공방전을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현재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 대통합’”이라며 “막말을 내뱉으면서 삼류 정치 공세를 하는 후보들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국민들이 명심하고 투표에 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