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문제는 누가 해결해야 할까? 이것은 길거리 청소 업무거나 유기 동물 업무이므로 구청 관할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발견하면 대개는 구청보다는 경찰을 먼저 떠올리고 경찰에 알린다. 경찰은 국민으로부터 고양이 사체 신고 전화를 받으면 즉각 출동한다. 경찰은 그 업무가 경찰이 할 일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는다. 신고에 늑장 출동이라는 오명이 인터넷에 뜨면, 그 여파가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전화 한 통으로 모든 일에 개입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경찰이다. 정말 국민이 문제가 생겨 경찰에 전화하면 경찰은 무조건 출동해야 할까? 일선 경찰들은 할 말이 많다.
부산의 한 지구대에 근무하는 경찰 이모 씨는 “시민들은 무조건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저희들은 아마도 시민들은 어디에 전화해야할지 몰라서 경찰에 신고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신고가 들어온 이상, 경찰은 출동할 수밖에 없다. 부산의 또 다른 경찰 김모 씨는 “고양이 죽으면, 100% 경찰이 가죠. 왜냐하면, 신고가 들어오니까요”라고 말했다. 결국, 출동한 경찰은 고양이를 치우는 등 초동 조치를 끝내고 구청에 이 사실을 통보하는 게 다반사란다.
길거리에서 고양이 사체를 보고 119를 떠올리고 거기로 신고하는 시민들도 있을 것이다. 119 상황실의 한 근무자는 “저희는 멧돼지나 말벌 등 살아있는 동물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출동하지만, 죽은 동물은 저희 쪽에서 처리하지 않고 통상 구청으로 이관하지요”라고 말했다. 119 상황실 담당자는 동물 건에 대해 야간처럼 구청에서 처리가 곤란한 경우는 경찰 긴급 전화인 112로 전화를 돌려주거나 112에 직접 협조를 구한다고 말했다.
경찰에게는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도 골칫덩어리다. 위층, 아래층이 시끄러워 발생하는 문제는 경찰의 업무일 것 같지만, 실은 공동주택에 관련된 구청 업무이다. 하지만 신고는 경찰에게 들어온다. 이 경우, 막상 경찰이 출동하면, 층간 소음은 사라진다. 부산 경찰 강모 씨는 “왜 조용해 지냐구요? 경찰이 떴으니까, 층간 소음 자체는 조용해지죠”라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출동한 경찰을 앞에 놓고 분쟁 당사자들은 한 쪽을 처벌해 달라고 소리를 지른단다. 강 씨는 “출동하면 한 쪽에서는 감옥에 쳐 넣어라. 다른 한 쪽에서는 자기가 뭘 시끄럽게 했냐고 우기죠”라고 말했다. 경찰 업무인 ‘인근소란죄’로 처벌하려면 층간 소음을 규정하는 데시벨 기준을 넘어야 하는데, 경찰이 소음 문제로 출동하면, 소음 자체는 사라져서 소음을 측정할 수도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도 없는 것이다. 강 씨는 “결국 소음 해결보다는 싸움 말리고 오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찰은 시민들의 주차나 견인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는다. 운전자가 차안에 있거나, 도로에 황색실선이 있는 경우의 불법 주차는 경찰의 주차 단속이 가능하지만, 그밖의 불법 주차 차량은 경찰의 권한 밖이다. 황색실선이 없는 도로의 불법 주차 차량에 대한 견인도 불가능하단다.
그런데 주차나 견인 문제는 운전자가 뜨고 없는 차량이면서 황색실선이 없는 골목길에서 주로 일어난다. 이 또한 구청 업무이지만, 시민들은 어김없이 경찰을 찾는다. 강 씨는 “본인 차가 남 차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해서 화가 나는 거를 신고자들은 대개 경찰한테 풀어요. 차번호만 안다고 신원조회가 되는 게 아닌데, 시민들은 경찰이면 다 되는 줄 알고 빨리 차번호 조회해서 운전자를 잡아 가라고 성화를 부리죠”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경찰들은 담당 업무가 아니면서도 현장에 달려 갈 수밖에 없는 일을 자주 겪는다. 그리고 경찰에게 막무가내로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시민들로 지쳐만 간다. 강 씨는 “우리는 경찰 업무가 아닌 다른 일에만 매달릴 수가 없어요. 도둑이나 폭력 등 경찰의 고유 업무에 대한 신고와 출동에 상시 대비해야 하거든요. 근데 시민들은 그거 해결 안 해준다고 경찰한테 화풀이를 해요. 스트레스 많이 받지요”라고 말했다.
경찰은 산불이 나도 출동한다. 산불 진화는 소방서나 구청의 업무다. 하지만, 구청 업무가 끝난 야간에 들어온 산불 신고에 달려갈 사람은 소방관과 경찰밖에 없기 때문에, 경찰은 신속히 출동해서 초동 조치를 한 후 구청에 연락을 취하게 된다.
이처럼 심야에는 구청의 업무가 종료되기 때문에, 어떤 일이 발생해도 무조건 경찰이 출동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심야 지구대 가용 인원은 많아야 2~3명 정도다.모든 일에 출동하기 힘들다.
강 씨는 심야에는 인원이 적은 지구대 한계 때문에 꼭 출동해야할 사건 사고 상황에 바로 출동하지 못하는 일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구청 업무 종료 후, 신고가 경찰한테 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