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무엇을 이루기 위한 스펙이나 성적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더 잘 알고 싶어서 배우고 싶은 분야가 생긴다. 내게 ‘페미니즘’이 요즘 그렇다. 워낙 페미니즘에 관한 책도 많이 나오고 여러 매체에서도 이를 주제로 얘기들을 많이 하다 보니, 정확하게 이것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를 알고 싶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이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침울함을 느꼈다. 그건 분노와는 또 다른 감정이었다.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는 감정보다는 한없이 가라앉는 우울함이었다. 아마도 앞으로의 내 삶도 양성 불평등에 놓은 김지영과 닮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반박하고 싶었다. 김지영의 잘못이 아닌 일에 대해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책임을 묻고, 김지영의 하루 일부분만 보고 그녀를 향해 ‘맘충’이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여자에게 무례하고 인간에 대해 무지한지 알려주고 싶었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게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한다. 여자는 사회에서 차별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내겐 너무도 당연한 명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차별과 멸시의 시선을 내가 마주한다면, ‘여자로서의 나’를 변호할 근거를 난 가지지 못한다.
스스로가 싫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타인에게 내 의견을 피력하고 싶은데, 주장에 힘을 실을 만한 아는 논거가 없어서 감정적으로만 대응할 때가 그렇다. 페미니즘에 관해 공부하고 싶다고,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계기가 바로 이것이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21세 여자 대학생으로서 앞으로의 나를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무작정 서점으로 향했다. 점원에게 페미니즘 관련 책을 추천해달라고 말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손에는 리베카 솔닛이 지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en Explain Things to Me)>가 쥐어져 있었다. 다소 공격적으로 보이는 제목에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내 머릿속을 어지러이 떠다니는 확실치 못한 생각들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재정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미국 인권운동가 리베카 솔닛이 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고 가장 먼저 들었던 느낌은 ‘의외’라는 거였다. 한국보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여성 인권이 높다는 예측을 하고 이 책을 읽었는데, 우리나라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책은 미국에 한정하지 않고 전 세계로 범위를 넓혀 여성에 관한 폭넓은 이야기를 다루었다.
책을 읽은 후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의 여성 인권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궁금해져서 여러 가지 조사 결과들을 찾아보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에 따르면,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145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115위다. OECD 국가 중 한국 남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하루 약 45분으로 꼴찌다. 그리고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 격차는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아직도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온전히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여성 혐오, 여성 차별을 아예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 비하 용어들이 만연하고 있다. ‘김 여사’, ‘김치녀’, ‘된장녀’, ‘취집’ 등등. 특히 개인적으로 화가 나는 단어는 ‘여풍’이다. 여풍은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의 활약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남자가 사회의 중요 요직에 많이 종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를 뒤집어서 여자들이 많이 등장했으니 의외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여성이 사회 요직에 많이 진출하는 것을 예외적인 사회 현상으로 규정짓고 ‘여풍’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우리나라도 여권이 신장했다’는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스스로 우리나라 여권의 현주소를 고백하는 증거다.
한편으론 걱정이다. <82년생 김지영>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고, 나는 비로소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불편함을 느끼게 됐고, 의식적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타인의 태도나 말들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에 맞서 대응할 만큼 대범하지 못해서다. 직장 내 성추행, 성비하적 발언들에 대해 나중에 내가 지위, 계급, 나이를 막론하고 바른 말을 할 수 있을까? 친구 사이에서조차 성 평등이나 성소수자들에 관해 얘기를 나눌 때 혹시 친구들이 나를 유난스러운 애로 보지 않을까 걱정하는 내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이거다. 성 평등에 대해 관심과 개선에 대한 인식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역시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는 양성평등 사회로 가고 있다. 현재의 여성은 과거의 페미니스트들에 빚을 졌다. 그러나 아직 양성평등은 완성되지 않았다. 한국도 그렇고 심지어 미국도 그렇다. 완전한 양성평등으로 나아가기 위해 좀더 역사적이고, 철학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리베카 솔닛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서문에서 “나는 여러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적었다. 여기서 여러 사람은 ‘젊은 여자 보통 사람’이란 의미이다. 미래에 더 양성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 주역이 바로 나 같은 ‘젊은 여자 보통 사람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