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와 알혼섬 일대는 샤머니즘의 발원지로 유명하다. 실제로 알혼섬은 지구상에서 땅의 기운이 가장 센 곳으로 손꼽혀서 전 세계 샤먼들이 찾아와 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터트리기도 한다고 한다. 샤먼 바위가 보이는 언덕에는 하늘에 사는 신과 땅에 사는 인간의 연계 고리라고 하는 13개의 세르게(성황당) 기둥이 있다. 사람들은 기둥에 리본을 묶거나 바닥에 동전을 던지면서 기도한다. 비록, 나는 샤먼의 초자연적인 기운을 실감할 수 없었지만,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이칼의 바람을 맞으며, 세르게 기둥 앞에서 여행에 감사하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했다.
알혼섬은 이르쿠츠크 시내와 편도 6시간의 거리를 둔 깊숙한 곳에 있지만 한 해 수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할 만큼 성황을 이루는 관광지다. 문명의 발원지라는 신비함 한 편에 상업적인 모습 또한 공존한다는 뜻이다. 여행 출발 전 찾아본 사람들의 후기에는 알혼섬 안에서 머리 한 번 감기도 힘들어 낙후된 관광지처럼 묘사해 놓은 내용들이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경험한 알혼섬은 20세기를 향수하는 지극히 21세기다운 곳이었다. 알혼섬 후지르 마을의 겉모습은 자작나무를 이용해 만든 러시아 전통 가옥 이즈바(Izba) 형식의 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또한 비포장도로 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는 얼룩소들을 보고 있자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마을 곳곳에 송전탑이 있어서 핸드폰 사용이 편리했으며, 수세식 변기를 사용할 수 있었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며 라떼와 치즈케이크를 즐길 수 있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 여행 후기를 볼 때는 그게 언제 일인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바이칼을 몸으로 마음으로 즐기고 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 파란 호수를 노란 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항상 생각이 많은 나는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가만 서서 노을로 물든 바이칼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자연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사람을 감동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