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스치는 인연과 미련...러시아 할머니의 하트파이와 대학생들의 미소를 뒤로 하고...
취재기자 임소강
승인 2017.10.1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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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의 변화를 체감하는 러시아 여행(3) / 취재기자 임소강
내가 지냈던 자리 건너편에는 할머니 한 분과 대학생들이 단체로 탑승했다. 할머니는 옛날 동화에서 봤던 따뜻한 할머니의 모습이라 함께 생활하는 동안 마음이 편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품어주실 것 같았지만 나의 일방적인 편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나와 할머니는 가끔씩 간식을 나눠먹었는데, 할머니께서 주신 '하트 파이'는 충격적으로 맛있어서 나중에 지역을 옮겨갈 때마다 슈퍼에서 하트 파이를 사먹었다. 열차에서 내린 이후 지상 여행을 하며 여러 슈퍼를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러시아는 초콜렛과 과자같은 군것질거리가 정말 잘 만들어져서 나온다. 러시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다양한 종류의 군것질거리를 먹어보는 경험을 해보길 추천한다.
건너편 대학생들은 열차의 절반을 차지하는 인원 많은 단체로 모두 남자들이었는데, 계속 나와 친구의 행동을 쳐다봐서 처음에는 사실 무서웠다. 동양인 여자라고 만만하게 보나 싶어 항상 경계하며 잘 때마다 중요한 게 들어 있는 보조 가방을 끌어안고 자기도 했다. 실제로 열차 내부에는 범죄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경찰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범죄를 감시하는데, 내가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는 싫었다. 그러다 열차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처음으로 그들과 이야기 하게 되었는데, 다행이게도 조선(漕船)을 전공하며 착하고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사탕을 나누며 같이 사진을 찍자는 모습에 두려움으로 경계했던 이틀이 무색할 정도였다.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는 날에는 일찍 일어나 한국에서 가져온 A4 용지에 편지를 썼다. 건너편에서 3일을 함께 지낸 할머니와 고새 정이 들어버린 대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다. 편지에는 또 만나자는 말을 적었지만, 우리는 모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사 한 번 가본 적 없고, 지금도 유치원 친구를 만나며 연락하는 내게 ‘스치는 인연’의 개념이 아직은 어색하다. 고작 일주일 다녀온 첫 해외여행을 6개월 씩 곱씹는 것만 봐도 나는 참 미련이 많은 사람인가 싶다. 여행의 초행길, 급격히 바뀌는 외부 환경의 모험과 더불어 내면의 나를 발견하는 시간들. 인터넷도 TV도 없는 아날로그한 공간에서 나와 마주한 것은 지루함이 아니라 당연했던 것들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