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의 변화를 체감하는 러시아 여행(4) / 취재기자 임소강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 60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는 구간이 있었다. 일제히 시선은 창문으로 향했는데, 바로 바이칼 호수를 볼 수 있을 때였다. 바이칼 호수는 한반도의 1/3 넓이에 1630m의 깊이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세계 담수의 2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횡단열차가 달릴 때 기차 안에서도 20분 가까이 바이칼 호수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니 호수의 둘레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드문드문 지어진 오두막과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벌판, 그리고 파란 바이칼 호수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한국에서 챙겨온 믹스커피를 마시며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경치 좋은 카페에 온 듯했다. 잠시 후 기차에서 내려 저 호수를 직접 보러 갈 생각을 하니 새삼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르쿠츠크 역에서 하차한 후 시내에서 바이칼 호의 알혼섬까지 이어주는 대중교통은 없으나, 내가 묵는 호스텔에서 미니버스를 쉽게 예약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단, 미니버스는 이른 아침 일정한 시간에만 출발하기 때문에 시간 약속에 유의해야 한다. 버스 예약은 손글씨로 종이에 적어주는 간이 티켓이 전부라 사기는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음 날 버스는 제 시간에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을 태우는 건지 가방을 나르기 위함인지 헷갈릴 만큼, 버스 내부는 여행객들의 짐으로 가득했다. 점점 많아지는 짐들에 대해 동행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니, 중국인이라 생각했던 아저씨가 한국말로 말을 우리에게 걸어왔다. 지구상 여행지 어디에나 한국인은 있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국 여행이 시시해 해외여행을 왔지만, 한국어도 영어도 통하지 않는 러시아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초면에도 친밀함이 생겼다. 몽골에서 넘어왔다는 아저씨로부터 몽골 사막여행에 관한 이야기와 바이칼 호수 관련 책자를 얻어 보며 시간을 보냈다.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직선 그리고 또 직선이었다. 계속되는 길과 넓은 들판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졌다.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러시아의 평야를 보고 있자니, 옛날 사람들이 새삼 지구가 네모라고 생각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넓은 들판에서는 끝을 생각할 엄두도 나지 않기에 네모진 땅끝에서 떨어질 걱정도 없었을 거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긴 하나 드넓은 초원에 덩그러니 위치한 집들은 현실감이 없었다. 실제 사람이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외딴 집들은 알혼섬으로 가는 길목에서 의심 많은 여행객을 안심시키기 위한 장식품 같기도 했다. 표지판도 신호등도 없는 도로를 쉴 틈 없이 달리는 차 안에서, 자연은 가장 흥미로운 생각거리였다. 이렇게 꾸밈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좋다가도, 내 생활과는 너무 다른 환경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은 여행과 어울리지 않게 우울하기까지 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막연히 오랜 시간 버스 안에 있지만, 지금이 몇 시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해가 뜨면 아침이고, 노을이 지면 저녁이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준들이 이 넓은 벌판에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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