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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색 치마 저고리 매력에 반세기 인생 바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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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색 치마 저고리 매력에 반세기 인생 바쳐
  • 취재기자 정혜리
  • 승인 2013.12.16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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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인간문화재 유정순 명장, "한복은 내 삶의 전부"
▲ 류정순 교수의 강의모습 (사진: 취재기자 정혜리)

부산 경성대학교 중앙도서관 201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곳저곳 놓인 옷감과 한복, 다리미와 재봉틀이 보인다. 그리고 큰 탁자 앞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 가까이 다가가니 모두들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자, 옷감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사람이 보인다. 바로 한복 명장 류정순(63) 씨다. 50년 동안 그는 오로지 한길로 한복을 지었다.

류정순 명장은 1950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바느질을 접했다. 그녀가 처음에 만든 것은 장난감 인형이었다. 그 시절엔 장난감을 살 형편이 안 되니까 그녀는 자투리 천으로 인형 옷을 만들어 입히고 놀았다.  그 때에는 각 가정에서도 직접 옷을 만들어 입었고, 그 때문에 류 명장은 어머니와 외할머니 어깨너머로 바느질을 배웠다. “어른들은 한복이 힘들다고 말렸지만, 인형 옷을 만들고 수놓는 일이 그렇게 재미났어요”라고 말하며 생기있게 웃는다.

류 명장은 자신의 한복 스승으로 어머니, 외할머니, 그리고 전통복식학자 고 석주선 씨를 꼽았다. 석주선 씨는 그가 한복 궁중복을 알게 된 계기된 스승이다. 한복에는 많은 철학이 담겨있다는 류 명장은 색동옷을 예로 들며 오방색에 관한 음양오행설을 설명한다. 그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한복의 아름다움에 대해 또 예찬한다. 치마에 놓인 꽃모양 수는 한복의 멋스러움을 표현하는 하나의 요소란다. 그녀는 “한복의 미는 곡선미라고 할 수 있어요. 저고리의 팔 부분을 보면 한옥 처마와 같은 곡선이 있죠. 이런 미학적 요소들이 곳곳에 들어있는 옷이 바로 한복이에요”라고 덧붙였다.

결혼을 하고서도 한복 일을 계속해 온 류 명장은 1998년에 명장 칭호를 받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꼭 인간문화재가 될 거야”라고 말하며 자랐다는 그는 당시 한복 명장으로는 최연소로 명장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 후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03년과 2005년에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과거 사람들은 바느질하는 사람을 하찮게 대했다. 류 명장은 “사람들이 바느질쟁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춤쟁이, 노름쟁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내가 바느질을 잘하니까 쟁이라고 불러주는구나”라며 그것 또한 자부심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자부심과 고집을 세워 단지 옷을 만들어 파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옷은 사람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옷이 그 사람을 나타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한 명, 한 명의 고객들과 오랜 신뢰를 쌓았고 그 신뢰로 지금까지 한복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한복에는 아름다움과 대단한 솜씨, 그리고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열정이 담겨 있다. 그런 한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류 명장은 경성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한국복식전승반을 만들어 16년째 후학을 기르고 있다. 그의 한국복식전승반은 어떤 공모전이든 나가기만 하면 상을 휩쓸어 업계에선 그 실력으로 유명하다. 2010년 대한민국 전통의상 공모대제전에서는 대상, 최우수상을 비롯해 11명이 입상했고, 2009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는 금, 은, 동메달을 모두 휩쓸었다. 그런 덕분에 한국복식전승반 수업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 한복 저고리를 만들고 있는 복식전승반의 학생 (사진: 취재기자 정혜리)

대구에 사는 이승아(32) 씨는 월요일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 오전 5시에 일어난다. 이미 한복업을 하고 있는 이 씨는 한복을 역사와 함께 더욱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복식전승반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경북 청도에서 찾아오는 유선영(24) 씨는 집과 거리가 멀지만 류 명장의 한국복식전승반이 굉장히 유명하다고 해서 배우러 왔단다.

한국복식전승반 학생들의 연령대는 20대 초반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류 명장은 어린 나이임에도 한복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젊은이들을 볼 때면 뿌듯하다.

▲ 복식전승반의 최고령 학생(오른쪽)과 지도 중인 류정순 명장 (사진: 취재기자 정혜리)

한 평생 한복의 길만 걸어온 류정순 명장에게 한복은 그의 ‘삶의 전부’이다. 그것은 그의 손을 봐도 알 수 있다. 매일을 바느질로 살아온 그의 손은 여자의 손임에도 손가락 하나하나, 마디마다 굳은 살이 박혀 투박하기 짝이 없고, 지문은 닳아버리고 없다.

“우리가 서양 옷을 많이 입지만 그만큼 또 우리 옷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가르칠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치고 싶어요. 그리고 진정한 꿈으로 소장하고 있는 한복 작품을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전시해 우리나라 옷이 서양 어떤 드레스보다 멋지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칠순을 바라보는 류정순 명장은 한복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알리는 것이 그의 작은 꿈이다. 오늘도 그는 묵묵히 그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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