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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외모지상주의’보다 내면이, 한반도에는 경쟁보다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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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외모지상주의’보다 내면이, 한반도에는 경쟁보다 평화가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8.03.30 21:5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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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정태철

인터넷신문을 운영하다 보니, 실시간 검색어를 체크하는 일이 잦게 됐다. 그런데 ‘외모지상주의’란 단어가 가끔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는 현상이 발견됐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으니, 외모지상주의는 인기 웹툰 제목이며, 그 웹툰이 업데이트되는 날이 바로 그 단어가 검색어 순위에 올라가는 날이라는 것이었다.

외모지상주의가 인기 웹툰의 제목이 될 정도로 요즘 젊은이들은 외모 집착이 심각한 모양이다. 약혼남이 결혼 직전에 대머리임을 고백해서 파혼을 고민 중이라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이 글은 결혼 전이나 적령기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단한 화제가 됐다고 한다. 시빅뉴스도 이 사건을 기사화했다(2017년 12월 19일자).

당사자 여성은 자식에게 대머리 유전자를 물러주고 싶지 않아서 파혼을 고민 중이라고 썼다. “머리카락을 뜯어 먹고 살 것도 아닌데 웬 파혼이냐”는 의견도 있었고, 대머리인 것보다 그 사실을 약혼자에게 속인 것이 믿음을 깬 것이므로 파혼 사유가 된다는 의견도 있었으며, 대머리는 유전이라 자식을 생각해서 무조건 안 된다며 파혼에 동조하는 의견도 있었다. 이를 두고 인터넷사이트 ‘포스트웨어’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썩 과학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1725명이 참가한 조사 결과는 ‘충분히 파혼할 수 있는 일이다’를 지지한 응답자가 참여자의 48%, ‘아무리 그래도 파혼은 너무 했다’를 선택한 응답자가 참여자의 52%로 나타났다. 대머리가 파혼 사유가 될 수 있을까?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반에 육박한다는 점이 가슴을 무겁게 한다.

우리는 왜 외모는 보면서 안 보이는 내면을 생각하지 못할까. 대머리라는 사람의 외모가 무슨 육체적 질환일까? 머리털이 부족한 걸 인간의 중대 결격 사유로 본다면, 책을 안 읽어서 머릿속이 빈 것도 문제로 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약혼한 사이의 한 사람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읽었다면서 그 안에 나오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문장을 대화 중에 인용했다고 하자. 그런데 나중에 그 책을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 상대방은 파혼을 고민해야 할까? 무슨 결벽증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것을 따지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없다. 그러나 내면이 외모보다 더 중요하다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지식을 속이는 것도 위선은 위선이다. 그리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은 학교 성적을 위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우리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내면보다는 외모를 선호하므로 이와 같은 내면의 진실성이 다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게 우리 현실일 뿐이다.

세상에는 장애인과 결혼하는 비장애인들도 있다. ‘바비 헨라인’이라는 전직 미군 병사는 이라크 전투에서 폭탄 공격으로 전신 화상을 입었고, 수없는 성형 시술을 받았지만, 그의 얼굴은 괴물처럼 변했다. 그와 같이 사는 부인은 이혼을 하지 않았고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남편의 외모가 그녀의 삶의 가치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 서정주는 <꽃밭의 독백-사소단장(娑蘇斷章)>이란 시를 읊었다. 이 시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노래가 낫기는 그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멧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나는 이 시를 대학교 1학년 때 신라 향가를 풀어낸 고 양주동 선생의 초청강연회에서 배웠다. 그분에게서 배운 바를 어렴풋이 기억해 내면, 대강 이 시는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노래와 같이 감각적인 삶이 좋아 열심히 즐겼지만, 하늘 구름 끝 갈 때까지 가보니 별 게 아니었고, 젊어서 욕망의 화신처럼 말을 타고 달리며 신나게 살아 봤으나, 그것도 바닷가 벼랑이란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으며, 남 따라 쟁취하고 소비한 산돼지와 산새라는 물질은 나중에는 입맛을 잃게 되니 다 허무한 일이고, 오히려 고귀한 정신세계만이 그립더라.’

세월이 많이 흘러 그분의 해석이 100%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시를 감정보다는 이성이, 외면보다는 내면이, 그리고 물질보다는 정신이 중요하다는 교훈으로 새기며 살았다. 세상에 자신 있게 좌우명을 지키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나 역시 교훈의 언저리를 잡으려 애쓸 뿐이다. 그러나 외모지상주의를 외치는 젊은이들에게는 이 시의 의미를 꼭 전해주고 싶다.

아울러 이 시는 강대국들의 탐욕 강한 지도자들로 둘러싸인 최근 한반도 정세를 떠올리게 한다. 툭하면 우방국들에 관세폭탄을 쏟아 붓는 트럼프, 장기 집권 태세를 갖춘 시진핑과 푸틴, 핵을 쥐고 살아 보려는 김정은,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 감옥에 있는 두 명의 한국 전직 대통령, 성폭력 혐의로 구속된 유명 인사들... 모두들 말을 타고 네 발굽으로 치달리며 활로 멧돼지를 사냥하려고 기세등등하게 버티고 있다.

그런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한반도 정세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서정주 시인의 같은 시 다음 부분에는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어 섰을 뿐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마치 우리 한국이 문제해결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강가 주변을 맴돌고 있는 헤엄 못 치는 아이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시는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로 끝이 난다. 한반도 문제가 감상적으로 해결될 리는 없지만, 한반도에 이상향의 문이 활짝 개벽하여 꽃이 가득 피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가져본다. 아울러 외모지상주의에 갇혀서 진작 내면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일부 세태의 어리석음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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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뉴스 2018-04-05 10:14:22
일리 있는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의견을 반영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수정했습니다.

안녕하세요. 2018-04-04 12:51:42
'정상인'을 '장애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쓸 경우에는 '장애인'에 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고,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배려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정상인'보다는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쓰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장애인'은 비록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은 말이나 충분히 만들어 쓰일 수 있는 말이므로, 조어법상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출처 : 국립국어원 누리집

본문에 사용된 단어 중 일부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되어 의견남깁니다.

맷돼지가아니고 2018-03-30 23:25:23
멧돼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