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 특별한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실버 세대의 이미지가 깨지고 있다. 예전보다 경제적 여유가 늘어난 실버 세대들이 패션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늘리고 있다. 한국 실버 패션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19.4%에 머물렀던 고령자들의 의류 직접 구매 비율이 10년 사이에 45.3%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패션쇼에 실버 세대용 패션이 선보이기도 했다.
실버 패션 산업의 선두에는 실버 패션쇼와 실버 패션모델들이 있다. 환갑을 넘어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최규임(67, 부산시 광안1동) 씨는 신문에서 실버 패션쇼 모델 모집 공고를 보자마자 직접 참가 신청을 했다. 최 씨는 “아무 생각 없이 신문을 보던 중 이 실버 패션쇼 모델 모집 공고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참가 계기를 밝혔다.
실버 모델을 전문으로 양성하는 대학교 평생 교육원의 실버 아카데미도 생겼다. 여기에 다니다가 실버 패션모델 공모 소식을 듣고 참가한 최무락(67, 부산시 연산동) 씨는 “나이가 들어도 예쁘고 멋진 것이 좋다”며 “나이가 들수록 생활에 활력소가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딸의 권유로 실버 패션쇼 모델에 응모한 된 백석조(66, 부산시 가야2동) 씨는 “처음에는 솔직히 망설이기도 했는데, 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며 “지금은 딸에게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버 패션쇼는 노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패션쇼로 ‘신 노년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2007년 사회복지법인 ‘청전’ 산하의 노인생활체험관 교육지원센터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 올해로 7회째다. 예산은 부산시의 보조금, 기업과 금융기관의 후원, 지역 업체의 의상 협찬으로 충당된다.
올해 7월과 8월 사이에 진행된 모델 선발 심사에서 106명이 참가해 40명이 선발됐으니 경쟁률은 약 3:1이었다. 성별, 연령대별 구성이 다양하도록 선발됐다. 작년에는 최고령이 86세였으며, 올해 최고령은 76세였다. 청전의 사회복지사 박진희 씨는 “노인들이 무언가에 용기 있게 도전하고 활기찬 삶을 살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이런 행사를 주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버 패션모델 양정애(61, 부산시 망미동) 씨는 “옷을 멋지게 입고 패션쇼에 서있는 순간만은 엄마, 아내, 며느리가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릴 수 있어서 굉장히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동영(67, 부산시 부곡동) 씨는 실버패션쇼의 몇 명 안 되는 남성 참가자 중 한 명이다. 이 씨는 “여성들이 많지만, 그건 전혀 고민거리가 아니다”라며 “그저 내가 패션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복지법인 창전이 주최한 올해 실버패션쇼는 부산디자인센터 6층 이벤트홀에서 11월 22일 열렸다. 그날 패션쇼장에는 실버와 패션이 어울린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약 500여 석의 자리가 모두 꽉 채워졌고, 자리가 모자라 서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패션쇼는 정장에서 시작해서 한복으로 마무리됐다.
실버패션쇼가 성황을 이룬다는 사실은 곧바로 실버패션 매장이 늘고 있는 현상으로 연결된다. 경남 창원 해운동에서 실버 브랜드 매장을 운영하는 임모(62) 씨는 실버 패션 산업의 변화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 임 씨는 “예전에는 자식들이 무모에게 옷을 사주는 모습이 주를 이뤘다면, 요즈음은 옷을 입어보는 것에서 구매하는 것까지 어르신 혼자 하는 분들이 늘었다”며 “경제적 여건을 갖춘 노인들이 소비문화의 주체가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부산 서면의 백화점 내 실버 브랜드 직원 황모(53) 씨도 “노인용이지만 확실히 전보다 젊은 감각의 디자인이 많이 나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청전 사회복지사 박진희 씨는 “요즈음 실버세대 중에는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멋있고 당당한 분들이 많다”며 “이 분들이 바로 뉴 실버세대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