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잔서(殘暑)가 때 아니게 거센 비를 몰고왔다. 산사(山寺) 옆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높여 이 가을의 정취를 돋구고 있다. 대웅전을 아우르는 청산이 왼쪽 경주 남산으로 뻗어내리고, 오른 쪽으로는 KTX 신경주역 방향으로 흐른다.
모처럼 어제 오후 경주로 들어와 우리 오두막집에서 하루밤을 보냈다. 깊은 산골짜기에 안개가 자욱해서 시골 저녁밥 짓는 부엌 연기마냥 산자락을 따라 퍼져 나간다. 적막 강산이 바로 여기다. 오두막집 바로 앞 선원(禪院)에서 저녁 예불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습한 공기를 타고 창문을 넘어 들어온다.
오늘 오후엔 잘 되지도 않는 가부좌를 틀고 법당에 앉았다. 세속에서 찌든 떼를 싯어내고 마음을 붙잡아 보려고 하는데, 금방 흔들리는 마음을 묶어두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하긴 우리같은 속인이 한 생을 수행에 바치는 스님을 따라가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하루를 늦추기로 했다. 주말이라 선방을 찾아온 도반 12분, 스님 7분들 사이에 끼어 다시 시도해 본다. 지푸라기 한 개라도 잡을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마음을 다잡고 알아차림을 한 순간이라도 이룰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삶의 한자락 기적이고 열반이다.
바로 '여기 이 순간'(now and here)이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고, 오늘은 지나봐야 안다. 모두 확실하지 않다. 오직 지금 이 순간 뿐이다. 도(道)를 깨치는 일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참으로 호락호락 허락되는 일이 아니다. 이걸 아는 그 순간이 바로 도를 터득하는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월남 사이공 함락 직전 프랑스로 망명, 플럼빌(plum village)을 세운 틱 낫한 스님의 말(<기도의 힘(The Energy of Prayer)>이다. 그 월남 패망은 멀쩡한 한 나라가 어떻게 망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이다.
살어리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2018년 9월 16일, 묵혜(默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