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을 출발해서 북한과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기차여행을 떠나는 꿈을 꾼다. 최근 남북한 철도를 연결하고 북한 철도를 현대화시키기 위한 남북 철도 공동조사가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됐다. 이를 보도한 12월 1일 KBS <뉴스 9>과 인터뷰한 한 북한 이탈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화물차에서 기다리고. 이틀이든 사흘이든 그거 타야 되니까, 그저 그렇게 ‘아낙’에서 덜덜 떨면서 그냥 기다렸습니다.”
‘아낙’이라니? 아낙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통일부 북한정보 포털의 남북한 언어 비교 폴더에는 남한말의 ‘내각(內角)’은 북한에서는 ‘아낙각’으로, ‘내항(內項)’은 ‘아낙마디’라고 쓰인다고 돼 있었다.
내각은 수학용어이며 “두 직선 만나서 그 안쪽에 생기는 각” 또는 “다각형의 두 변이 안쪽에 만드는 각”이다. 일부 사전에는 이를 북한에서는 ‘아낙각’이라고 쓴다고 적혀 있다. 내항은 역시 수학용어이며, “비례식의 안쪽에 있는 두 항”을 이르고, 이것 역시 북한에서는 ‘아낙마디’라고 쓴다고 우리 사전에 설명돼 있다. 아낙은 북한에서는 안, 속, 안쪽(內)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아낙은 우리 사전에는 “부녀자가 거처하는 곳을 점잖게 이르는 말, 또는 아낙네와 동의어”라고 표현돼 있다. 그리고 북한어로는 ‘속’ 또는 ‘안’의 의미라고 적혀 있다.
아낙은 아낙네의 줄임말로 소설 속 캐릭터로 자주 등장한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에는 다수의 아낙네가 등장한다. 그 중 ‘귀녀’라는 아낙네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양반을 죽이는 일까지 벌인다. <토지>에 등장하는 기타 수많은 농촌 아낙네들은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면서 여성의 강인함과 다정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래서 아낙은 한국적 여인상이기도 하다.
아낙은 노랫말에도 등장한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이 노래는 주병선이 부른 <칠갑산>이다. 강한 여인의 이미지가 <칠갑산>의 아낙네로 묘사되고 있다.
1970년대 인기가요 <소양강 처녀>를 샘플링한 송민호의 <아낙네>도 있다. 최근 이 노래는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아낙네>는 힙합과 트로트 장르가 조합된 곡으로 친숙한 멜로디와 가사가 중독성이 강하다.
남한의 아낙은 아낙네 또는 여인을 뜻하는데, 아내를 ‘안사람’이라 하듯이 아낙네의 아낙도 ‘안쪽’의 의미와 관련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남한의 아낙네와 북한의 안쪽은 나름 연결이 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어원에 따른 분석은 아니고 단지 추측일 뿐이니, 남한의 아낙과 북한의 안쪽은 좀더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