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28) 씨는 설을 맞아 본가에 가기 위해 4일 오전 운전대를 잡았다. 경남 창원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김 씨의 목적지는 같은 경남 진주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던 김 씨는 순간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앞에서 달리던 흰색 카니발 운전자가 음료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창문으로 내다 버린 것. 김 씨는 “우리 차가 맞지는 않았지만, 뒤에 따라가고 있는 입장에서 기분이 정말 나쁘더라. 차만 깨끗하면 뭐하나. 아직도 이런 무개념 운전자들이 도로를 활보한다는 것이 기가 찰 뿐”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명절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하는 신현우(37, 서울 강남구) 씨는 담배꽁초를 그대로 차창 밖으로 던지는 운전자를 민폐 1순위로 꼽았다. 신 씨는 “3일,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에 창밖으로 담배꽁초 버리는 운전자 여럿 봤다. 한국에서 흡연자의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거기다 부채질을 하는 셈"이라고 혀를 찼다. 신 씨는 이어 “차에 작은 휴지통이나 비닐봉지를 두는 게 운전자의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고속도로 쓰레기 무단투기 행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명절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며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부 몰상식한 운전자의 안일한 행동이 들뜬 마음으로 귀성길에 오른 운전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고속도로와 이로 인한 사고 위험 증가는 덤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쓰레기 무단 투기 문제는 명절마다 언급된다. 한 네티즌은 “사람이고 생각할 줄 아는 나이면 쓰레기는 정해진 곳에 버리길 바란다. 오늘 고속도로에서 꽁초 버리는 앞차 운전자, 정말 천박하고 한심해 보였다”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고속도로 쓰레기 때문에 사고 날 뻔했다. 짐승 시체인 줄 알았는데 쓰레기봉투더라. 인간이 덜된 사람이 버렸겠지”라고 분노했다.
실제로 명절 연휴 기간에 고속도로 쓰레기양이 평소보다 약 3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국도로공사에서 받아 4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6~2018년 명절 연휴 기간 고속도로 쓰레기 발생량은 하루 평균 48t이었다. 연간 하루 평균 쓰레기양이 17t인 것을 감안하면 명절 기간에 발생하는 쓰레기는 약 2.8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쓰레기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노선은 어딜까.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이 208t으로 불명예를 안았다. 이어 인천과 강릉을 잇는 영동선 139t, 서울외곽순환선·통영대선·중부선이 122t, 서해안선 108t이 뒤따랐다. 어마어마한 쓰레기가 버려지다 보니 쓰레기 처리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 3년간 명절 연휴 고속도로에 버려진 쓰레기는 총 1463t으로 그 처리 비용은 4억 5230만 원이었다.
현재 고속도로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는 경범죄처벌법상 벌금에 해당한다. 적발 시 5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의 과태료와 벌점 10점을 부과한다. 그러나 달리는 차 안에서 순식간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를 적발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 도로공사 관계자 역시 “현실적으로 무단투기 단속과 적발이 어렵기 때문에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자주, 많이 치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힌 정부는 이같은 불법 행위를 감소시키기 위해 국민들의 손을 빌렸다. ‘신고 포상금 제도’ 운영이 바로 그것. 법을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 시민들의 신고와 제보를 받고 이를 알린 시민에게 현금으로 보상하는 제도다. 고속도로에 쓰레기를 투척하는 행위에 대한 포상금은 최대 20만 원이다.
구체적으로 고속도로 본선뿐만 아니라 비탈면, 나들목 램프, 졸음쉼터 등 위반 행위별로 과태료의 20% 정도 신고한 시민에게 지급한다. 따라서 불법 투기 장면을 목격한 경우 차량 번호가 담긴 영상이나 사진을 찍고 해당 구청 홈페이지나 1588-2504로 신고하면 된다. 다만 본인 확인이 돼야 하며, 공범의 신고자는 포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일부 시민들은 신고포상금을 위해 양심 불량 운전자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기도 했다. 대학생 신모(22, 부산 진구) 씨는 “지난 명절에 아빠 차를 타고 할머니 댁을 가다 옆 차 운전자가 담배꽁초와 껌봉지 같이 작은 쓰레기를 버리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우연히 언니에게 ‘신고포상제’ 얘기를 듣고 휴대폰 손에 꼭 쥐고 양심 없는 운전자를 찾았는데, 없더라. 용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정말 아쉬웠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유심히 관찰할 생각”이라며 웃었다.
이와 더불어 환경부는 고속도로 쓰레기 무단투기 특별관리 대책을 내놨다. 환경부는 지난달 21일부터 지자체, 한국철도공사, 한국도로공사 등과 함께 철도역사, 고속도로 휴게소 등 다중 이용시설을 중심으로 쓰레기 분리배출 요령을 홍보했다. 또 청소인력 배치, 이동식 간이쓰레기 수거함을 설치해 분리수거 관리도 강화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