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인터뷰 시점이 2012년인 까닭에 일부 내용은 현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나눔과 봉사-우리 사회를 지속시킬 이 시대의 화두다.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분노의 물결’, 그 저변의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복지확충의 기대는 높고 국가재정 복지의 한계는 뚜렷한 시대, 우리는 새 가치를 찾아야만 한다. 사회에의 봉사, 약자와의 나눔, 투철한 자기통제…. ‘Together for Tomorrow’ 같은 슬로건처럼, 우리에겐 나눔과 봉사, 소통과 공감 같은 사회문화가 필요하다.
나눔과 봉사, 부산사람 중 이 화두에 호응할 아이콘은? 세정(世定)그룹 박순호(朴舜浩) 회장(73)을 본다. 그는 1974년 부산에서 창업한 이래, 일상처럼 사회공헌에 정성을 쏟아왔다. 부산 최초의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개인자산 거액 기부자 모임) 회원이며, 제1회(2011) ‘대한민국 자원봉사 대상’ 수상자다. 330억 원을 들여 ‘세정나눔재단’을 설립, 체계적인 나눔경영과 사회공헌을 다짐하고 있다. ‘행복한 나눔, 따뜻한 세상’이란 구호와 함께-.
[박순호(朴舜浩) 이력] 1946년 경남 마산 출생. 세정그룹 회장. 세정나눔재단 대표이사. 동아대 명예 경영학박사. 주한멕시코 명예영사, 대한요트협회 회장,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 부산메세나진흥원 이사장, 부산섬유패션산업연합회 명예회장. 성실 납세로, 국무총리상, 은탑산업훈장, 의류산업 경영으로, 한국언론인연합회 제5회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한국최고브랜드 대상 수상, 나눔 실천으로, 제1회 부산시 사회공헌장 나눔부문 으뜸상 수상, 부산 지역 최초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저서: <열정을 깨우고 혼을 심어라>(2011), <맨주먹으로 일궈낸 나의 꿈>(2004). |
나눔경영, “기업 이익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
박순호 회장, 그는 지난 40여 년 부산을 지켜온 향토 기업인이다. 부산에서 나눔경영을 실천하며 부산지역의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데 선도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세정나눔재단을 터 삼아 우리 사회의 나눔문화가 더 넓게, 더 깊이 퍼져나가기를 기대한다. '나눔경영'에 대한 그의 생각부터 묻는다.
"나눔경영, 한 마디로 동업자 정신이다. 투명한 경영과 협력회사와의 상생, 고용창출에의 기여 같은 것이다. 기업이 얻은 이익은 거의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것, 함께 일한 동지와 사회적 약자에게 기업이익을 되돌려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에게 나눔의 철학은 경영에서 성공하는 것만큼 소중하다. 소외계층에의 나눔활동, 그것에의 집착이 오늘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믿을 정도다.
격변하는 기업환경 속에서, 끈질긴 나눔활동은 또 쉽기만 했을까? “그동안 세계 금융위기 같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난 한 해도 소외계층 돕기를 잊어 본 적이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눔에의 관심은 더 높아만 간다.” 그런 초심의 힘일까? 그는 남다른 의지로 성금을 내고, 차라리 즐거움으로 봉사를 실천하며, 나눔재단까지 설립했다.
나누며 감사하는 마음을 배운다
오랜 기부와 봉사 끝에, 그는 ‘나눔문화의 전범’이다. “난, 처음 아내 손에 이끌려 삼랑진 ‘오순절 평화의 마을’을 찾았다. 그 뒤로 철마다 음식과 옷, 돈을 들고 부산지역 복지시설을 돌고 있다. 그러면서, 난 깨달았다. 추운 겨울 내가 기부한 연탄 한 장이 어려운 어르신의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건네는 쌀 한 포대기가 그들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겐 피 같은 돈일 수 있어도, (이웃이) 어려운 걸 알곤 기부를 멈출 수 없었다.”
그는 기부하고 봉사할 때, 늘 온몸으로 나선다. 홀로 사는 노인에게 옷을 보낼 때 직접 직원들과 달동네를 골목골목 돌아다닌다. 나눔 바자를 할 땐 직접 옷을 팔며 고객과 눈길을 맞춘다. “내가 못살았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더 목마른 사람, 더 간절한 사람한테 가게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어려운 이웃을 직접 봐야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자꾸 더 들 것 아닌가…”
그에게, ‘나눔’은, 나아가 나눔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나눔은 돈과 시간과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갖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달동네를 가보라. 외롭게 노후를 보내고 있는 홀로 노인의 방에 들어가 보라. 몸이 불편한 장애우의 복지원에 가보라. 그들은 단지 돈과 쌀만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친절한 손길과 따뜻한 시선을 기다린다.” 그들을 돌볼 때마다 그는,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라’고 동료에게 이야기한다. 내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 나의 몸이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사하라고 말한다. 기부와 나눔, 봉사는 감사를 가르쳐 준다.
나눔재단 설립, 보다 체계적인 나눔활동을 계획하며…
그는 부산 최초(2008년)의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며, 그 중 최고액 기부자(약 120억 원)로 알려져 있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의 마음가짐은 어떠한가? “기부는 주는 것(give)이 아닌 나눔(share) 아닌가. 돈은 버는 것보다 값있게 쓰는 게 더 중요하다. 난, 돈을 벌어 기부했다기보다 어려운 이웃과 나누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다. 기업을 경영하며 나눔의 범위가 날로 넓어진 것은 당연하다.” 지금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은 단 67명(부산 2명). 미국의 고액 기부자 클럽 ‘토크빌 소사이어티’ 회원은 2만여 명이다.
"어떻게 나눔재단까지?" 그의 생각을 묻는다. “부산지역 저소득층․소외계층의 복지증진에 기여하고 문화∙예술․스포츠 지원에 앞장서기 위해서다. 재단을 통해 우리 사회 복지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도록 견인차 역할을 할 각오다. 궁극적으로, 기부를 함으로써 기쁨을 얻는 감동의 경험을 확산시키고 싶고….” 재단의 사업방향도 뚜렷하다. 자립기반이 취약한 사회복지 시설․단체와 장애인∙소년소녀가장 같은 저소득층 이웃부터 주로 지원한다. 학술∙문화예술∙스포츠 부문에 대한 지원사업도 체계적으로 벌여 나갈 계획. 지역인재를 키울 장학사업도 강화한다.
그는 나눔활동 중 어떤 분야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을까. “불우한 이웃을 위한 사회복지 사업이다. 홀로 노인이나 가난한 이웃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장애우나 사회에서 소외받은 사람도…” 그 첫걸음으로, 불우한 홀로 노인들이 모여 살 실버타운을 세우고, 그들의 건강을 돌볼 병원까지 운영할 생각이다. 지금은 부지를 선정하는 단계. 부산과 창원, 김해권역을 아우를 좋은 터를 물색 중이다. 부지 선정이 끝나는 대로 실버타운과 병원, 그들이 자족할 농지까지 마련하여 스스로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것이다.
아직 우리 기부문화는 일회성 기부 수준이다. 바람직한 기부문화는 어떻게 조성해야 할까? “우리가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나눔의 가치를 외면한다면 우리 사회는 갈수록 각박해지고 어려운 이웃은 날로 늘어날 것이다. 이제 나눔의 문화를 꽃피워야 할 때다. 나눔엔 척도가 없다, 어떤 형태든 좋다, 요즘은 나눔을 실천할 방법도 다양하지 않은가.” 물질적 기부뿐 아니라, 봉사를 하거나 멘토링 후원, 재능기부처럼, 개인의 역량에 따라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자발적으로 사회공헌 앞장서는 세정 가족
박 회장의 나눔철학은 세정 가족의 생활 속에 두루 녹아 있다. 자신의 월급을 쪼개어 이웃돕기에 동참하고, 단체 헌혈을 통해 아픈 소외층을 돕는다. 여러 나눔활동 중 박 회장이 가장 기분 좋아하는 행사는 ‘아름다운 토요일.’ “세정 가족들은 토요일 자선바자에 월급을 쪼개고 물품을 기증하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회공헌에 열심히 참여한다.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고 자부하며 밝은 웃음으로 서로를 격려한다.”
세정 직원들은 ‘1인 1결연 맺기’를 통해 홀로 노인과 소년․소녀 가장을 찾고 있고, 연말이면 “과연 올해는 충분한 나눔활동을 했는가?”를 스스로 묻곤 한다. 그런 집단적 DNA가 있었기에 제1회 ‘대한민국 자원봉사 대상’도 받을 수 있었을 터. 대상은 부산의 세정과 서울의 삼성생명, 허남식 부산시장 역시 부산에서 자원봉사 대상을 수상한 것을 크게 기뻐하며 박 회장께 특별한 축하를 했다고. 인터뷰 당시 박 회장의 컨디션이 저조했던 것도 ‘봉사’ 탓이었다. 며칠 전 자선바자 때 2박3일 ‘현장근무’를 하고, 청와대 봉사대상 시상식에 어렵게 참석한 뒤끝이다.
세정, 고객 사랑과 우수한 제품으로 승승장구
나눔에는 당연히 개인 또는 기업의 성공이 필요할 터. 박순호,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17세 때 일을 시작했다. 사업가의 꿈을 갖고 가게 점원으로 출발, 봉제업과 의류 유통업을 배웠다. 마산의 작은 의류가게와 부산의 큰 메리야스 가게 점원을 거치며 현장을 익혔다. 부산에서 뿌리를 내린 것은? ‘더 넓은 세상’을 찾아서다. 급속한 산업화 속에 부산은 섬유∙패션도시로 뜨고 있었다. 시장 환경이나 기반에서 패션을 선도할 이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그를 키운 ‘세정’의 출발은 어떠했나?
“부산에서 ‘동춘상회’를 창업, 메리야스를 팔다 불경기에 직면했다. 1970년대 제조업이 각광받던 시절 난, 서울까지 가서 철저한 시장조사를 한 끝에 국내 최초의 터틀넥 티셔츠를 만들어 ‘인디안’이란 이름을 붙였다. 요즘 말로 '대박'을 쳤고…” 1991년, 그는 개인회사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하며 ‘세정’이란 이름을 찾았다. 성숙하고 미래지향적인 이름이다. 세정(世定)은 세상 ‘世’ 에 정할 ‘定’자를 쓴다. 정할 ‘定’자를 보면, ‘지구 밑에 인간이 서로 기대어 살아간다’는 뜻이 있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도 있듯, 세정 역시 그동안 숱한 난관을 겪었다. “위기는 옥석을 가릴 계기다. 진심을 담은 브랜드, 우수한 제품은 고객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세정이 한결같이 성장한 바탕은 고객에 대한 사랑, 제품에 대한 진심이다.” 세정 역시 IMF 같은 불황기를 겪었지만, 제품에의 믿음에 바탕한 공격적 경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IMF 시절, 다른 기업들이 브랜드를 철수할 때 TV광고를 강화하고 새 브랜드 ‘니(NII)’를 론칭, 3년만에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난 부산 기업인, 세정은 부산을 지키는 기업”
그는 최고의 품질과 합리적 가격으로 고객감동을 실현하며 해마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록했다. 세정은 오늘 국내 대표적 패션전문 그룹이다. 제일모직, LG패션, 코오롱Fnc와 같은 반열이되, ‘한국문화’를 앞세우는 올곧은 패션그룹이다. 2011년 매출은 1조 1500억 원. 비즈니스 정장 ‘인디안’ ‘앤섬(Anthem)’, 여성복 ‘올리비아 로렌(Olivia Lauren)’, 아웃도어 ‘센터폴(Centerpole)’, 만성토털 ‘트레몰로(Tremolo)’, 영 캐주얼 ‘NII'까지, 다양한 브랜드를 갖고 있다.
“나는 부산 기업인, 세정은 부산을 지키는 기업이다. 수도권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도 오직 부산을 거점 삼을 것이다. 부산사람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박 회장의 부산사랑은 대단하다. 특히, 패션사업을 부산에서 운영하기가 쉽기만 했을 것인가. 부산 거점 기업을 운영하기엔 장, 단점이 있다. 그래도 세정이 성장하며 부산의 동료, 기업(박 회장은 ‘반려자’라는 뜻에서 ‘동료’, ‘동지’ 같은 표현을 자주 쓴다)들과 인연을 맺은 만큼, ‘동지와의 의리’를 굳게 지키겠다는 다짐이다. 세정은 ‘패션기업 1조 클럽’ 입성을 바탕 삼아, 글로벌 토털 패션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다. 2015년 매출목표 2조 원의 건실한 향토기업으로서-.
“앞으로도 패션 한 길 걸으며, 나눔에 힘쓸 것”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젊음을 바치고 즐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박순호, 그의 경영인생을 정리하며 동시대인에게 전해 주고 싶은 메시지다. 2011년 5월 발간한 경영 에세이집 <열정을 깨우고 혼을 심어라>를 통해서다.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은 성공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 자신에의 믿음과 자신감으로 맡은 일에 열정을 쏟으라는 것이다.
박순호 회장의 나눔경영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솔직히, ‘나눔’에의 열의가 나보다 더하다.” 일찍이 부모님의 구휼활동이 활발했다. 첫째 딸은 솔선수범, 나눔에 앞장서고 있다. 세정나눔재단 역시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실현에 이르렀다. “나는 패션이라는 한 분야에 ‘진심을 다한 장인(匠人)’으로 남고 싶다.” 그의 진솔한 바람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 역시 패션을 한결같이 사랑하며 일하고, 나눔활동에 힘쓸 각오라는 것이다.
인터뷰 끝에 마무리 삼아 털어놓은 그의 ‘나눔론’은 정녕 이 ‘분노의 시대’를 극복할 경험론적 문화의식이다. “나눔은 상생이며 사회안정의 나침반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바빠도 나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남에게 베푸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그는 평소 자기자랑에 서툰 사람이다. 세정 최규인 광고홍보 이사 역시 “회장님은 자신의 성취를 얘기하기에 샤이(shy)하신(수줍어하는) 분”이라고 귀띔한다. 그런 그가 장담한다, “일단 한 번 나눔활동을 경험해 보라. 그 다음에는 누가 뜯어말려도 나눔에 나서고 싶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