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거대한 시스템을 통해 흐르는 문명과 경제의 피라 할 수 있다. 시스템이란 여러 요소로 구성되고 각 요소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 최적화된 조직이다. 컴퓨터 시스템은 입력장치(키보드, 마우스), 처리장치(메인보드), 출력장치(모니터, 프린터)로 구성되며, 각 장치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사람이 지시한 작업을 수행한다.
에너지란 시스템의 작동 원리도 이와 유사하다. 국가 에너지 시스템은 1차 에너지원(핵연료, 석탄, 원유, 수력, 태양광, 바이오 연료 등)의 확보와 변환 공정, 그리고 변환된 2차 에너지(휘발유, 열, 전기 등)의 유통망 및 소비 설비로 구성된다. 이들 구성요소 간의 상호작용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에너지가 거래되는 시장에 좌우된다. 정부는 일상생활의 필수상품인 에너지의 안정적인 수급, 적정가격 유지, 환경부담 저감 등을 목표로 삼으며, 에너지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은 당연히 수익창출을 도모한다.
연료의 화학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꾸는 장치인 자동차의 예에서 보듯이, 에너지 생산과 소비 과정은 태양 에너지나 지구 내부 에너지의 변환 과정이다. 에너지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으나, 그 에너지를 필요한 형태로 충분히 모으고 변환시키는 일은 자연에 관한 이해와 설비를 필요로 한다. 그 일을 담당하는 에너지 기업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거대 설비의 건설 및 유지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전문 인력을 확보해 기술혁신을 추구한다.
기업이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에너지도 일반 상품처럼 수요공급에 따라 그 가격이 정해지나, 인프라 의존성이 크고, 물처럼 일상생활의 필수상품이므로 공공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나라든 에너지 시스템의 유지발전은 정부가 국익 내지는 공익을 위해서 정책으로 대처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가계소득 범위 내에서 적절한 식비를 정하고, 가족수와 식단을 고려해서 식재료를 사고, 조리해서 먹으면서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돌본다. 이처럼, 정부는 다양한 에너지 수요를 파악하여 1차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그 다음은 이를 적절하게 변환시키고 효율적인 소비를 유도하여 국가경쟁력과 국민의 복지수준을 높여야 한다.
1차 에너지원의 종류가 여러 가지고, 열, 전기, 연료 등의 2차 에너지도 품질, 양, 시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소비되므로, 국가 에너지 시스템 유지는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서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수급하기 위한 ‘변수(조건) 최적화’가 관건이다. 1차 에너지의 94%를 수입하는 우리나라 에너지 시스템은 과연 얼마나 안전하고 효율적일까를 따져 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국가 에너지 시스템의 수급안정성과 효율을 평가하는 지표이면서 에너지 정책의 적절성을 평가할 만한 지표는 ‘에너지 집약도(energy intensity)’와 ‘에너지 안전성 위험점수(energy security risk scores)’다. 에너지 집약도는 에너지원단위라고도 하며, 1차 에너지/총부가가치(GDP)로 정의되고, GDP 단위당 에너지 소비를 가리킨다. 이때 1차 에너지의 양은 생산에 투입되는 1차 에너지의 열량을 석유를 기준으로 환산시킨 석유환산톤(TOE: Tonnes of Oil Equivalent, 1 TOE=10⁷kcal)으로 표기된다.
에너지원단위는 효율적인 에너지 활용과 산업 경쟁력의 잣대를 의미하며 낮을수록 좋다. 에너지원단위는 에너지 효율 향상에 힘입어 전 세계적으로 낮아지고 있으며, 2017년 전 세계 평균이 116(정확한 단위는 TOE/GDP $1000, $는 구매력 기준의 2015년 달러가치로 $2015p)이고, OECD 평균은 98, 미국은 118, 일본은 81, 영국은 62, 중국은 138인데, 우리는 159다.
우리의 에너지원단위, 즉 에너지 효율성(159)은 일본(81)보다 2배다. 이는 우리가 에너지를 일본보다 거의 2배 정도 비효율적으로 소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1차 에너지를 자급할 정도로 에너지가 풍부한 미국(118)보다도 우리는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국이고, 세계 제일의 에너지 소비국 중국(138)보다도 무모하게 에너지를 소비하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원단위가 높은 이유는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 제철, 제지, 시멘트 산업 때문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에너지를 무분별하게 낭비하고 절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높은 에너지 집약도(에너지원단위)는 지구온난화가 화두인 21세기에 국가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갉아먹는다는 문제와 직결된다.
에너지의 효율적 소비 상황이 이렇게 좋지 않은 가운데,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에너지 안정성 위험점수’ 역시 불안하다. 미국상공회의소 산하기관인 글로벌에너지연구소는 2012년부터 2년마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25개국의 에너지 수급 사고 발생(단전사태 등)과, 에너지 시장의 변동에 대한 대처능력과 연관된 29개 지표(화석연료의 전 세계 매장량, 화석연료의 수입, 에너지 집약도, 유가변동성, 1인당 GDP, 전력다양성 등) 각각의 점수를 매긴 다음, 각 지표마다 적절한 비중을 곱해서 얻은 점수를 모두 합하여 에너지 안정성 위험점수를 결정한다.
2016년의 우리나라 에너지 안전성 위험점수는 1389점으로 에너지 다소비 상위 25국 가운데 23위다. 글로벌에너지연구소에서 1980년부터 5년마다 계산한 위험점수 순위를 보아도 21~24위로 만년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는 우리나라 에너지 시스템이 1차 에너지원의 조합(energy mix), 에너지 수입국가 편중, 에너지원단위, 에너지 비용지출(2017년 전체 수입액의 23.9%), 온실가스 배출 등의 여러 측면이 변화가 심하고(안정적이지 못하고) 그래서 개선의 여지가 많음을 가리킨다.
우리 에너지 시스템의 상태를 가리키는 각종 지표가 취약한 원인은 에너지가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기 때문일 수 있다. 1977년부터 1993년까지 동력자원부라는 에너지 전담 중앙부처가 있었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OECD국가 가운데 에너지 전담 부처가 없는 유일한 국가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다루는데, 에너지(자원)를 단독이 아니라 산업과 통상의 부수적 분야 정도로 취급한다는 인상을 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과 그에 따른 실행 방안인 10개의 하위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계획 대비 실행 상황을 점검하고 그에 따른 국가 주요 에너지 정책을 심의 조정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위원장이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다. 무언가 에너지가 뒤로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제도를 두고, 우리나라가 현대 문명사회를 지탱하는 에너지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