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리시케시
왜 '새벽 2시 40분'이면 눈이 떠지는가?
새벽에 잠이 깨이면 늘 베개 사이로 갠지스강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매번 달랐다. 어떤 날은 굵은 ‘옴(AUM)’ 소리로 들렸다가 어떤 날은 낮은 천둥소리로 들렸다. 낮에는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 오토바이, 릭샤, 자동차들의 경적소리와 고함소리에 묻혀 갠지스는 무대에서 쫓겨난 여배우처럼 멀리서 침묵을 지켰다. 휴대폰을 열면 어김없이 새벽 2시 40분이다. 왜 늘 2시 40분이 되면 눈이 떠지는 걸까? 새벽에 혼자 남은 갠지스강이 심심해 나를 깨우는 것일까? 그런데 2시 30분도 아니고 2시 40분은 또 뭔가? 내 신체 시계가 10분이 늦어진 탓일까? 누구 아는 사람이나 비슷한 경우가 있으면 연락해 줬으면 좋겠다. 물론, 리시케시에서 이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지만. 나는 천천히 일어나 명상할 자세를 잡는다. 아쉬람의 하루는 아침 5시 30분에 시작된다. 그때까지 남은 2시간 50분은 오로지 나의 개인 명상시간이다. 나는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왜 무엇을 찾아 이리 먼 곳에서 혼자 깨어 있는가? 남들은 한창 달달한 잠을 즐기고 있는데. 그러면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대답한다. 집에 가만히 있다고 답이 있는 건 아니잖아. 뭐야 또 그 소리야? 또 라니! 넌 너무 게을러. 꼭 이 시간에 깨어 청승을 떨어야 부지런한 거야? 가끔 진짜 소리가 입 밖으로 나갈 때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옆방 사람을 깨울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괜찮아, 난 자유로우니까!
옆방 프랑스 여자는 어제 아침에 떠났다. 일주일 있겠다고 하더니 겨우 삼일 만에 떠났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해서 좋았는데 오늘은 또 어떤 사람이 들어올지 걱정이다. 내가 옆방의 손님에게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조용하면 된다. 대체로 선진국일수록, 남자보다 여자일수록 조용하다. 사흘 만에 떠난 프랑스 마담은 바라나시로 간다고 했다. 바라나시는 지금 엄청 덥다고 했더니 괜찮단다. 길도 좁고 위험하고 시끄럽고 더럽기까지 하다고 해도 괜찮다며 자기 덩치만큼이나 큰 배낭을 가리킨다. I am okay! I am Free!(괜찮아! 난 자유로우니까!) 그녀는 어떤 이유로 멀리 리시케시까지 왔다가 다시 겨우 사흘 만에 여기보다 더 힘든 바라나시로 가는 걸까? 유명한 바라나시의 화장터를 찾아 가는가. 그녀는 왜 덥고 위험하고 불편하고 시끄럽고 먼지투성이인 인도를 떠나지 않는 걸까. I am free! 라는 외침에 단서가 있을까. 50대 전후의 가정주부 같은데, 이혼을 했을까? 직장은? 아이는 다 키웠을까? 가고 나면 더 아쉽고 궁금해진다. 요가에는 관심도 없었던 그녀는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이 되면 조용히 들어와 잠을 잤다. 들어왔는지 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녀는 고양이과 동물처럼 지냈다. 나도 프랑스에 간 적이 있어. 어디? 거기! 프랑스에서 제일 유명한 곳 피라미드!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이집트에 있는데? No! No! 프랑스에도 있잖아. 거기. 아, 유명한 곳인데. 끝내 그곳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끝내 내가 이집트와 프랑스를 착각하는 한국인으로 알고 갔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름이 떠올랐다. 루브르. 이름이 어렵다. 발음도 어렵고. 못 외우는 것이 당연하다. 안 당연한가? 그래도 루브르에서 제일 유명한 피라미드를 모르다니. 자기 나라면서. 모나리자라고 했어야 했나. 프랑스 마담 이전에는 러시아 사람이 왔었다. 키가 크고 젊은 백인 커플이었다. 저녁에 계단에서 마주쳤는데 여자가 헬로우 하는데 나는 당황해 굿모닝! 했다. 참나. 저녁인데. 그들도 당황했는지 침묵을 지키며 자기들 방으로 올라갔다. 초면에 놀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래도 외국어니까 헷갈리는 건 당연하다. 아닌가? 굿 이브닝. 또 이건 뭔가 발음이 매끄럽지 못하다. 굿모닝이 첫 인사로 훨씬 깔끔하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우주정거장’에서의 하루
아쉬람은 잠깐 머무는 우주정거장 같다. 어떤 이는 텅 빈 영혼을 보충할 연료가 필요하고 어떤 이는 휴식이 필요하다. 가끔은 뭐가 필요한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내가 그런가? 뎅그렁! 뎅그렁! 새벽 5시 15분을 알리는 아쉬람의 종소리다. 나는 개인 명상을 마무리하고 요가매트를 메고 아쉬람의 명상홀로 향했다. 히말라야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큰 나무들이 흔들리며 신음소리를 냈다. 하늘엔 드문드문 별이 떠 있고 생기를 잃은 하현달이 더욱 쓸쓸하다. 명상홀에 들어서니 가야트리 만트라가 흘러나온다. 아침 명상(Morning Meditation)은 아침 5시 30분부터 6시30분까지 1시간 동안 진행된다. 지도하는 늙은 선생이 있지만 가르쳐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앉아 각자 명상을 하는 시간이라 요가를 배우는 시간보다 참석률이 많이 떨어진다. 오늘은 일본인들이 눈에 띄었다. 일본인 인솔자는 흰 머리 희끗한 60대 할아버지인데 대개는 열 명 안팎의 인원을 데려와 일주일쯤 머물렀다. 가끔 중국인도 네댓 명 섞인다. 한국인이 가장 희귀한데 더군다나 나 같은 장기 투숙 한국인은 아쉬람 역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그래도 동아시아인들의 자세가 좋고 진지하다. 유럽인들 중에는 처음부터 매트를 깔고 드러눕는 사람도 있다. 책상다리가 힘드니 누워서 명상을 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가끔 코를 고는 사람도 있다. 아침 요가(Morning Yoga)는 아침 6시 45분부터 8시 10분까지다. 하타 요가(Hata Yoga)를 가르치는데 홀이 꽉 찰 정도로 참석률이 높다. 키가 크고 무사처럼 강인하게 생긴 선생이 가르치는데 몸은 버들잎처럼 유연하다. 요가선생들은 대부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쉬람에 들어가 요가를 배우기 때문에 아무리 젊어 보이는 선생도 최소 20년 이상 요가를 수련한 베테랑들이다. 무뚝뚝한 선생이지만 자세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콕 꼬집어 칭찬의 한마디를 덧붙인다. Good!(좋아!) 8시 30분부터 아침식사 시간이다. 보통 바나나 한 개와 달달한 차와 간단한 밥 종류가 나온다. 그러나 나는 아침을 먹지 않는다. 바나나 한 개만 들고 방에 들어와 한국에서 가져온 차를 끓인다. 바나나에다 차를 마시며 글을 쓴다. 일기를 쓸 때도 있고 책을 쓸 때도 있다. 사실 둘의 경계는 애매하다. 그래서 가끔 섞이기도 한다. 반성문이 될 때도 적지 않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얻겠다고 이 먼 곳까지 와서 불편과 외로움을 감수하는가. 답은 내 안에 있다고 하는데 굳이 먼 곳까지 떠나올 필요가 있었는가. 퇴직을 하고 싶은 핑계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그렇다고 가만히 집에 있다고 해결이 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석가모니 부처님도 결국 떠났기 때문에 안에 있는 진리를 만나지 않았던가. 내 안에 있는 진리라도 보는 방법을 모르면 끝내 빈손이지 않는가. 이렇게 끝도 없는 반성문을 쓰다보면 뎅그렁! 뎅그렁! 또 다음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오전 10시 30분부터 12시까지는 베단타 경전을 배우는 시간이다. 물론 수업은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내게는 고행의 시간이다. 인도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영어를 한다. 인도는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로 있었고 해방이 되어서도 영어는 여전히 통용되었다. 혹시 인도인들의 영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혀가 짧은 충청도 사람처럼 그들의 발음은 독특하다. 그래도 외국인들은 잘 알아듣는다. 역시 내가 문제일까. 베단타 경전을 가르치는 선생의 발음도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나는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 영어실력이 훌륭해서? 아니다. 나는 굿모닝도 헷갈리는 실력이다. 그가 하는 강의는 빤한 내용이었다. 지금 있는 자신이 진짜 자신이 아니라고. 기뻐하고 고통 받고 즐거워하는 모든 행위의 주체가 사실은 진짜 자신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 아쉬람에 명상을 하겠다고 온 사람 중에 그런 흔한 책 몇 권 읽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아무리 짧은 영어실력을 가진 나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전혀 새로울 게 없는 강의였다. 문제는 어떻게 가짜인 나를 진짜 체험할 수 있느냐다. 내 생각이 들렸던 것일까? 갑자기 베단타 선생이 강의를 멈추고 나를 가리키며 한국에서 왔냐고 물었다. 난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했다. Yes(예). 그랬더니 그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강의를 계속했다. 넓은 요가홀에는 대략 서른 명쯤 되었고 일본인과 중국인들도 섞여 있어 나를 한국인이라고 콕 찍은 건 대단하다. 설마 내 속마음을 읽은 건 아니겠지. 아쉬람에서 한국인들은 매우 드물다. 며칠 전 한국에서 온 스님도 내게 물었다. From Tokoy?(도쿄서 왔나요?) 일본인은 당연하고 어느 도시에서 왔냐고 물었다. No. I am Busan,(아니오. 부산. 실은 from Busan이 맞다) 뎅그렁! 뎅그렁! 오후 4시에 울리는 종소리는 가장 행복하게 들린다. 짜이라는 인도의 전통 차를 준다는 신호다. 12시에 점심을 먹으면 저녁 식사는 오후 7시이기 때문에 모두들 4시에 주는 짜이를 기다린다. 우유와 홍차에다 약간의 향신료를 넣어 끓인 짜이는 영양도 풍부해 한잔만 마셔도 저녁까지 배가 안 고프다. 아쉬람의 수행자는 물론이고 사무실 직원, 청소하는 사람,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까지 모두 짜이를 마시기 위해 다이닝룸으로 몰려든다. 종을 치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 오후 4시에 울리는 종소리는 템포도 빠르고 약간의 장난기까지 섞여 있다. 오후 4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요가를 배우는 시간이다. 오후에는 주로 아헹가 요가를 가르치는데 아침 요가와 동일한 자세는 수리야 나마스카라(Surya Namaskara)라고 태양을 숭배하는 자세다. 이 자세가 사실 가장 어려운 자세인데 열두 가지 자세를 연결해서 한번이다. 이것을 보통 열 번 정도 반복하게 하면 잘 하는 사람도 땀을 흘리며 힘들어 한다. 나도 처음에는 뭐 이리 어려운 자세를 열 번씩이나 반복하게 하나 불만이 많았다. 쉬운 자세는 한번만 하게 하고 어려운 자세는 열 번씩 시키니 하다보면 군대 얼차려를 받는 느낌이다. 인도의 아쉬람에는 그런 게 있다. 우리가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다른 나라에서 태권도를 배우러 왔을 때의 그런 우월감 같은 거. 어렵고 힘들기만 하고 효과는 별로 없어 보이는 자세를 계속 시킬 때 그런 생각이 올라온다. 그런데 자꾸 하다 보니 이게 뭔가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눈을 감고 태양을 내 몸과 영혼에 받아들이는 것처럼 집중해서 열심히 해보았다. 우와! 그런데 정말 내 이마 앞에 태양이 떠오르더니 환하게 빛났다. 온 몸에 넘치는 기운으로 전율이 왔다. 아, 내가 인도에서 이런 경험을 하다니. 나는 정말 100번쯤 계속 했으면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요가선생은 열 번에서 멈추고 다른 자세로 넘어갔다. 환하게 빛나던 태양도 사라졌다. 나는 눈을 뜨고 원망스럽게 요가선생을 바라봤더니 요가선생도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나는 늘 넓은 요가홀의 맨 뒤에서 하기 때문에 맨 앞의 요가선생이 내게 시선을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사람들이 진짜 내 속을 보는 게 아닐까? 오후 6시부터 1시간 동안은 저녁 명상(Evening Meditation) 시간이다. 저녁 명상은 아쉬람의 메인홀에서 진행된다. 메인홀은 아쉬람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지은 건물이다. 가장 오래 되어 약간의 곰팡이 냄새가 났지만 신성한 진동이 느껴져 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명상을 진행하는 선생도 과묵하지만 상당한 파워를 발산하고 있어 명상이 끝나면 그를 존경하게 된다. 물론 가부좌가 불편한 서양인들은 누워서 명상을 하는데 이 시간에도 가끔 코를 고는 사람이 있다. 소리가 크다 싶어 신경이 곤두서면 갑자기 자던 사람이 꿈속에서 누군가에게 한 대 맞은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날 때도 있다. 과묵한 요가선생이 그랬는지도 모른다. 리시케시에서 이상한 일들은 늘 일어난다. 7시가 되면 저녁식사 종이 울린다. 아쉬람의 긴 하루일과가 끝났다는 신호다. 그러나 나는 저녁을 먹지 않고 내 방으로 돌아간다. 아직 나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떠나고 버리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아래층 한국남자가 떠난 것 같다. 불이 꺼져 있다. 하루 종일 보이지도 않았다. 벙거지 모자를 썼는데 삭발한 솜씨로 보아 아마 스님이었으리라. 무뚝뚝했지만 가끔 모국어를 나눌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낮에도 몇 명의 젊은이들이 택시를 타고 떠났다. 스위스로, 프랑스로, 브라질로, 포르투칼로, 캐나다로. 그들은 답을 찾았을까?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이 세상에서 떠나야 한다. 그러므로 떠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절대 같이 갈 수 없다. 오롯이 혼자 떠나야 한다. 떠날 때 가져갈 수 없다면 내 것이 아니므로 버려야 한다. 그게 쉽지가 않다. 떠나고 버리는 것에 연습이 필요한 이유다. 낮에 먹다 남은 식은 짜이 몇 모금에 비스킷 두어 개를 저녁 삼아 먹는데 옆방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낮에 새로 사람이 온 모양이다. 어디서 온 사람일까. 영어를 쓰는 것으로 보아 인도 사람은 아닌 듯한데. 짐을 정리하는 소리가 한 사람인 것 같다. 다행이다. 내일은 실수 없이 첫인사를 해야 되는데. 하기야 아침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내 입에 가장 편한 단어가 있다. Good Morning!저작권자 © CIVICNEWS(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