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요가와 시절인연
비밀은 토론거리가 아니다
아쉬람에 머문 지 일주일 쯤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너무 순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주일 간 그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열심히 따라했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어디서나 배울 수 있는 평범한 요가였다. 어쩌면 평범한 게 당연했다. 아쉬람의 핵심 제자에게만 비밀리에 전수되는 수련법을 면세점에서 세일하듯 근본도 모르는 외국인에게 가르쳐 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히말라야의 비밀요가를 터득한 라히리 마하사야는 “일반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공개적으로 토론하거나 글로 펴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중국의 선도는 비밀을 공개하면 구조(九祖)가 망한다고 경고한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먼 한국 땅에서 잔뜩 기대를 안고 순진하게 날아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연봉의 직장까지 팽개치고. 그렇더라도 일주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을 만류했었다. 앞으로 10년은 더 해먹을 수 있는데 제정신이냐. 하고 많은 나라 중에 왜 하필 인도냐. 그러나 내 대답은 한결같았고 나는 어떤 설득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랬는데 고작 일주일 만에 짐을 싸고 돌아가, 내가 너무 순진했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때부터 아마 내 이름 앞에 ‘반피’라는 수식어가 붙을 것이다. 나는 밤새 영어로 항의문을 만들어 오전 9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영어도 짧은데 흥분까지 하면 의사전달이 안 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작 이 정도의 평범한 요가를 배우려고 그 먼 길을 오지 않았다, 나는 이 아쉬람을 창시한 분의 분명한 계시를 받고 머나먼 한국에서 왔다, 진짜다, 아직도 당신들의 스승을 존경한다면, 내게 내린 스승의 계시를 믿고, 나에게 스승의 특별한 비밀요가를 가르쳐 달라…. 강력한 내 요구서를 읽는 아쉬람의 책임자는 의외로 침착했다. 그가 한바닥이나 되는 내 요구서를 읽어 나가는 동안 나는 최대한 비장한 얼굴로 기다렸다. 만약에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대로 갠지스강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듯이. Okay(좋아). I understand(나는 이해했다). 그의 대답은 너무나 쉽고 짧고 명쾌했다. 사실 그가 어렵고 긴 문장의 영어를 쓰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가 또 간단하게 물었다. 너는 특별한 스승을 원하는 것이냐? Exactly(맞다)! That's it(바로 그거다)! 나는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부담할 용의가 있었다. 인도에서 돈은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그는 신용 있는 사람처럼 추가비용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장 따라오라고 한다. Now(지금)? Now(지금). 지금 당장 가자고? 왜 지금 특별한 약속이라도 있는가? No!시절인연(時節因緣)
마하라지와 나의 인연은 특별했다. 1년 전. 나는 범어사 청련암의 벽화를 분석한 <당신은 길 잃은 신이다>는 책을 썼다. 벽화를 그리신 분은 양익스님이란 분인데 4m 되는 범어사 일주문을 단숨에 뛰어넘었을 정도로 불교무술과 티베트 밀교의 당대 최고봉이었다. 불교무술 금강영관법은 청련암에서 직접 가르쳤는데 나중에 선무도 등 우리나라 불교무술의 시초가 되었다. 그러나 홀로 터득한 밀교의 비법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지 않고 청련암 본당에 벽화로만 남겼다. 우연히 나는 국선도 카페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벽화를 알게 되었고 약 4년여의 조사와 연구 끝에 <당신은 길 잃은 신이다>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바로 이 책을 본 국선도 사범이 내가 쓴 책과 너무나 비슷한 책이 있다며 가져온 게 바로 아쉬람의 마하라지가 쓴 책이었다. 책을 가져온 사범은 어렵게 구한 책인데 자신은 아무리 봐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가 내민 책을 본 순간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두 책의 그림은 어느 한쪽이 베꼈다고 할 정도로 너무나 비슷했다. 물론 인도에서 온 책이 훨씬 세밀하고 설명도 구체적이었다. 그건 내게 너무나 강하고 분명한 메시지였다. 거의 명령에 가까웠다.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위해 기꺼이 인도를 향해 출발했다. 누구나 인생에 반드시 전부를 걸어야 하는 승부처가 있다. 그때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깨우치기 전에 절대 돌아오지 않으리라. 리시케시는 내게 더 이상 돌아갈 문이 없는 무문관(無門關)이었다. 그렇게 배수의 진을 치고 왔건만, 내 인생의 마지막 승부는 불과 일주일 만에 패배 쪽으로 기울어졌다. 직장에 낸 사직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 내가 너무 순진했다고 반성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아직 승부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약간 젊어 보이는 아쉬람의 도서관장이 내게 특별한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인데 괜찮냐고 했더니 그는 수행자에게 주말이 어딨냐며 오히려 내게 특별한 약속이 있는지 물었다. 인도에서 내가 무슨 약속이 있겠는가. 그의 열정에 한층 기대가 부푼 나는 또 그에게 첫 수업에서 질문할 내용을 밤새 영어로 작문을 했다. 그것은 내가 배운 밀교의 핵심으로 청련암의 벽화에도 나오는 매우 어려운 내용이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먼저 도착해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는 정확한 시간에 명상실의 문을 열고 나를 맞았다. 나는 그에게 떨리는 마음으로 내 질문서를 내밀었다. 드디어 나의 마지막 공부가 시작되는구나. 전쟁 같았던 수십 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직장과 가정을 지키며 수행을 하는 건 전쟁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는 길게 보지도 않았다. 내가 밤새 끙끙대며 요약한 아주 내밀한 수행과 관련된 내용인데 그가 읽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뭐지? 보지 않고도 이미 알 수 있을 정도의 고수인가? “이런 것은 모두 필요 없습니다.” 나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왜? 그는 영어로 얘기했으니까. 그 다음 말은 더 황당했다. 위빠사나가 최고입니다. 그냥 늘 자신을 지켜보며 명상하는 것 그게 깨달음으로 가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혹시 위빠사나라고 들어보셨나요? 들어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행운아입니다. 지금부터 내가 당신에게 특별한 요가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하마터면 내게서 주먹이 날아갈 뻔 했다. 나의 성격을 아시는 분은 결코 내 말이 뻥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습관성 탈골처럼 다시 나는 길을 잃었다. 먼 곳에서 인생의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답답함과 막막함을 모른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다시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앞과 뒤가 꽉 막혀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술이라도 한잔 하면 좋겠는데 리시케시에서 술을 파는 가게는 없다. 나는 우리 안에 갇힌 사자처럼 하루 종일 방안을 서성대다 방 벽에 붙여져 있는 마하라지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분명히 오라 그랬잖아요.” 내가 언제? 늘 나는 성급한 게 문제였다. 그래도 그 책에 실린 그림의 메시지는 너무나 확실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길을 잃어 앞으로 갈 수 없다면 온 길을 다시 차분히 돌아봐야 한다. 지금 내가 다시 시작할 단서는 그것뿐이다. 1년 전이다. 나는 갓 출간한 내 책을 들고 청련암의 주지스님을 만나러 갔었다. 무려 4년이라는 시간과 노력을 바쳐 청련암의 벽화를 해석한 책인데 양익스님의 제자였던 주지스님은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양익스님이 어렵게 터득한 비법을 벽화에 남겼지만 이미 청련암의 스님들은 물론 신도들도 관심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주지스님은 한 가지 일화를 떠올렸다. 어느 날 청련암 벽화를 그린 양익스님에게 제자들이 몰려갔다. 누군가 한 명에게 당신이 터득한 밀교의 비밀을 전해주라고. 스님은 무술을 가르쳤지만 벽화의 비밀은 그 어떤 제자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참고 참던 제자들이 폭발했다. 우르르 몰려가 정 가르쳐주기 싫으면 최소한 수제자 한 명에게 만이라도 전수를 하라고 차선책을 제시했다. 두 차례나 몰려갔지만 스님의 대답은 그때마다 매정한 거절이었다. 그때 말씀하신 게 시절인연(時節因緣)이다. 당신도 시절인연을 만나 스스로 깨쳤듯이 내 뒤에 오는 사람도 때가 되면 스스로 깨칠 것이다. 제자들의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위빠사나가 최고입니다.” 요가 니케탄 아쉬람의 젊은 특별선생은 위빠사나밖에 모르는 사람 같았다. 오로지 위빠사나만 강요하는 아쉬람의 특별선생에게 나는 위빠사나가 위대한 것은 알지만 그건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오직 당신들의 스승 마하라지께서 가르친 그 비밀요가를 배우고 싶다고 그를 설득했다. 범죄 영화처럼. 그는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백했다. 안타깝지만 이 아쉬람에는 위대한 마하라지의 요가를 터득한 사람이 없다고. 그의 자백이 전혀 예상 밖이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더 높은 히말라야에 있는 강고트리 아쉬람에는 있을 것이다. 당장 나를 그곳에 소개해 달라. 그러나 그는 소용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덧붙여 지금 이곳을 비롯해 마하라지가 만든 모든 아쉬람에는 마하라지의 요가를 배우겠다는 사람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했다. 어디서 들어본 말이었다. 양익스님이 그린 청련암의 벽화에 대해 물었을 때와 똑같았다. 아, 나는 왜 이리 스승과 인연이 없는가. 늘 나는 한발이 늦었다. 세상이 무너진 듯 실망감을 안고 돌아서는 내게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위빠사나가 좋다고. 확, 마. 마하라지는 55세에 위대한 스승을 만나 법을 물려받은 뒤 108세에 돌아가시기까지 무려 53년간 수천 명의 제자들을 아쉬람에서 가르쳤다. 그러나 마하라지가 만든 세 개의 아쉬람에 마하라지의 법을 이어받아 가르치는 제자는 현재 단 한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쉬람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확인했다. 사무실 직원, 가장 오래된 식당의 주방장, 아쉬람에 머무는 수행자들까지.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매우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아쉬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역시 내가 성급했을까. 내 방에 걸린 마하라지의 사진은 여전히 말이 없다. 혹시 내가 뭔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비법(秘法)이라는 게 원래 없는 것은 아닐까. 있기는 하지만 전해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양익스님도 그렇게 매정한 분은 아닌데 전할 수 없는 것을 달라고 하니 시절인연 핑계를 대지 않았을까. 소림무술을 창시했다고 알려진 달마대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전해진 법을 28번째로 이어받은 분이다. 달마대사는 인도 출신이지만 동쪽으로 와서 중국 선종을 세웠다. 육조 혜능대사는 달마대사로부터 여섯 번째로 법을 이어받은 분이다. 육조 혜능은 빈농에다 일자무식이었다. 어느 날 나무를 팔러 시장에 가는 길에 금강경을 듣고 깨달아 오조 홍인대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홍인대사는 그에게 불경은 가르치지 않고 방앗간에서 방아만 찧게 했다. 어느 날 홍인대사가 법을 잇기 위해 제자들에게 게송을 짓게 했는데 방아만 찧던 혜능이 일등을 해서 육조 혜능이 되었다. 언뜻 달마대사의 비밀이 육조까지 전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육조 혜능이 오조 홍인에게서 비밀을 받은 적이 없다. 그는 금강경을 듣고 스스로 깨달았고 홍인대사 밑에서도 방아만 찧었다. 바로 양익스님이 말씀하신 시절인연이 와서 스스로 깨친 것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달마대사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귀중한 법을 갖고 왜 조국인 인도를 등지고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까지 갔을까. 그 쪽에 시절의 인연을 갖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에게 신묘한 법을 전할 때도 특별한 무엇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연꽃을 들어 보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스승은 필요가 없는 것일까? 그건 또 아니다. 나무꾼인 혜능이 금강경을 듣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홍인대사 밑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평생 나무꾼으로 늙어 죽지 않았을까. 마하가섭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에 가지 않았다면 정법안장과 열반묘심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길은, 길을 잃은 사람만이 찾는 법이다
새벽에 잠이 깨이자 어김없이 갠지스강 소리가 들렸다. 며칠 비가 오지 않은 탓인지 갠지스강물 소리도 풀이 죽었다. 수만 년 전부터 저렇게 갠지스는 흐르고 앞으로도 흐를 것이다. 간밤에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한 마리 매를 보았다. 덩치가 작아 독수리 같지는 않았다. 날개소리도 없이 매 한마리가 날아오더니 높고 긴 대나무 위에 앉았다. 매의 무게에 대나무 끝이 휘청거렸다. 흔들리던 대나무가 안정되자 매가 지긋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 듯한 눈이었다. 단호하지만 확신에 차 있었고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얘기가 무엇인지 내게는 들리지 않았다. 잠이 깨이자 어디서 본 듯한 매의 눈이 사진 속 마하라지의 눈과 닮았다는 걸 알았다. 뎅그렁! 뎅그렁! 새벽 5시 15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의 명상시작을 알리는 아쉬람의 종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요가메트를 메고 방문을 나섰다. 희붐한 새벽하늘 멀리 높이 뜬 별 하나가 나를 반긴다. 여전히 나는 길을 잃었다. 그러나 길을 잃은 사람만이 길을 찾는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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