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
100만 명
군부독재 시절, 야당과 민주화 세력은 대중 집회에 자주 기댔다. 거리 정치, 아스팔트 정치. 힘이 없어서 그랬다.
김대중 김영삼 시절에는 한강 둔치와 보라매공원이 주된 집회 장소였다.
한번은 DJ와 YS 간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DJ가 물었다. “발표할 때 집회 참석 인원을 몇 명이라고 할까요?” YS가 대답했다. “100만 명이라 합시더(다).” “그 정도는 안 되는데….”“아, 누가 세보요(세어봅니까 )!”
#2019년의 현실
10만 명? 200만 명? 300만 명?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일원에서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다음날 ‘국민적 열망’과 ‘관제데모’ 논란 속에, 집회 참가자 수를 놓고 소동이 일었다. 여야가 다른 주장을 폈고, ‘친정권’ ‘반정권’ 언론매체들이 가세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주최 측의 주장을 적극 반영해 ‘150만 ~200만’이란 제목을 뽑았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통제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폭주에 보다 못한 국민이 나섰다. 어제 ‘200만 국민’이 검찰청 앞에 모여 검찰개혁을 외쳤다”고 논평했다. ‘200만 명’이 공인되는 장면이었다.
야당은 반박했다. 이만희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은 ‘조국 비호집회’의 참가자 숫자까지 터무니없이 부풀리며 국민의 뜻 운운하고 있다...조작 정권의 행태를 여실히 보여 준다”고 논평했다.
서초구청장 출신인 자유한국당 박성중 의원은 ‘페르미 추정법(Fermi Estimate)’을 적용해 누에다리에서부터 서초역까지의 인원을 계산했다. 그는 3만 5000~5만 명 수준이라고 후려쳤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10만 명 정도를 거론했다.
어쨌든, 3만 5000~10만 대 200만, 시국에 대한 입장 차이만큼이나 간극이 컸다.
페르미 추정법 이어 새로운 계산법 등장
어느 게 진실 혹은 팩트일까?
예전에는 언론들이 ‘주최 측 추산 숫자’와 ‘경찰 추산 숫자’를 함께 제시했다. 주최 측은 높여 잡으려 하고, 경찰은 낮춰 잡으려 하기 때문이었다.
이때 양쪽의 주장이 많을 때는 10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 주최 측이 10만이라고 하면, 경찰은 심지어 5000명이란 숫자를 내놓기도 했다.
실제 사례. 2016년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민중총궐기 때 주최 측은 100만 명이라고 했고, 경찰은 26만 명이라고 했다.
엄밀하게는 경찰의 주장이 맞다. 주최 측은 구경하는 사람들도 포함시키는 등 ‘뻥튀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경찰은 앞에서 언급한 ‘페르미 추정법’을 활용한다 . 이탈리아의 천재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행정 공무원들이 해수욕장의 인파를 계산할 때도 이 방법을 쓴다.
이 기법은 면적을 기준으로 삼는다. 3.3 ㎡(한 평)당 앉아 있으면 6명, 서 있으면 9 명이라고 본다. 그렇게 해서 전체 면적을 곱하면 근사치가 나온다. 연인원이 아니라 특정 시점의 인원만 파악한다는 한계는 있다.
경찰은 숫자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커지자 2017년 1월부터 공표를 하지 않기로 했다. 경찰은 이번에도 공표를 하지 않고 있다.
야권에서는 색다른 계산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를 통해 집회 인근 지하철역의 하차 인원을 입수한 것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서울 지하철 교대역과 서초역에서 내린 승객은 10만 2229명이었다. 당일 다른 대중교통은 통제되었으므로, 이 숫자가 합리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집회 인원을 파악하는 방법이 보라매공원 시절에 비하면 많이 진화한 셈.
그러자 여권은 “숫자는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얼버무렸다. 이런저런 정황을 토대로 판단한다면 야권이 판정승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개천절인 지난 3일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쪽에서 주최한 ‘조국 사퇴’ 집회에는 진보 쪽의 집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진보 집회가 200만이라면 우리는 2000만”이라고 했는데, 어쨌든 ‘300만 명’론이 승기를 잡았다.
진보진영은 5일 서울 서초동에서 다시 같은 성격의 집회를 열었다. 보수진영의 대규모 집회에 자극을 받은 듯 지난번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300만 명 이야기가 나왔다.
한심한 세 대결로 전락한 집회
한편으로는 이 ‘숫자 타령’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개탄을 하고 있다. 집회의 성격이 ‘6월 항쟁’처럼 아름답지가 않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사라져 버린 채, '정치'의 실종 속에서 진영 간의 한심한 세 대결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6월 항쟁’ 때는,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한 가운데, 택시와 버스들이 지지 경적을 울려댔고, 직장인들이 빌딩 창문에서 손수건을 흔들어댔고, 넥타이를 맨 남성들과 하이힐을 신은 여성들이 함께 길거리에서 구호를 외쳤다.
지금 두 진영 간의 집회는 과연 어떤 집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