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만 쏙쏙 '체리피커,' 가급적 집안 칩거 '코쿠닝 족' 등 불황시대 신조어 봇물
최근 대형마트대신 집 근처 중소형 마트로, 구매대신 렌탈 서비스로, 식당대신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절약 차원의 알뜰소비를 넘어 초저가 제품만을 찾는 소비심리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나타나는 ‘불황형 소비’라고 부른다. 경제 불황 속에서 소비자들은 소극적으로 소비하고, 판매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내놓으면서, 여기에 따른 낯선 단어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모루밍(morooming)족
백화점 등 매장에서 제품을 꼼꼼히 살펴본 뒤 구매는 온라인에서 싸게 구매하는 ‘쇼루밍’은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매장에서 정가에 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인터넷에서 할인을 받거나, 공동구매, 해외 제품은 직거래 등을 이용하고 있다.
‘모루밍족’은 이 같은 쇼루밍족의 한 종류이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살펴보고 스마트폰으로 쇼핑을 하는 소비자들을 말한다. 모바일을 통해 물건을 구입하면 다른 유통 경로를 이용할 때보다 편리하고 저렴하기 때문에 모루밍족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모바일 쇼핑 거래액은 14조 8,090억원으로 전년도 6조 5,596억원에 비해 125.8%나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원 이지예(27) 씨는 전형적인 모루밍족이다. 백화점에서 원하는 제품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구입한다. 이 씨는 “같은 제품이 많게는 두 배가 쌀 때도 있다. 요즘 배송도 빠르기 때문에 굳이 매장에서 비싸게 살 필요를 못 느낀다. 스마트폰은 항상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매장에서 사고 싶은 것을 착용해보기만 하고 스마트폰으로 바로 구매한다”고 말했다.
옴니채널(omni-channel)
이는 ‘모든 방식’을 뜻하는 ‘옴니(omni)’와 유통경로를 의미하는 ‘채널(channel)’의 합성어로, 쇼루밍, 모루밍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과 인터넷, 모바일 등 다양한 채널을 결합한 쇼핑체계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경로를 넘나들면서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다.
대표적인 방식으로 온라인에서 구입한 상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찾을 수 있는 ‘스마트픽’이 있다. 쿠폰 할인이나 무이자 할부 혜택 등 온라인의 장점을 그대로 이용하고, 매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수령할 수 있다. 부산 대신동에 거주하는 주부 조진영(33) 씨는 스마트픽을 자주 이용한다. 조 씨는 “온라인에서 싸게 사고 매장에서 직접 받으니 믿음이 간다”며 “배송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받을 수 있는데다 교환이나 환불도 쉬워서 좋다”고 설명했다.
코쿠닝(cocooning)
‘코쿠닝’이란 용어는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 ‘페이스 팝콘’이 처음 사용했다. 원래는 “불확실한 사회에서 단절되어 보호받고 싶은 욕망을 해소하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사용됐지만, 오늘날 경제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소비문화로 통용되고 있다. ‘코쿤(cocoon)’은 누에고치를 뜻한다. 누에고치가 보호막을 치며 딱딱한 껍질 속에 숨 듯, 최근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만 지내려고 하는 코쿠닝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들은 외출을 꺼리고 집안에서 모든 생활을 해결한다. 밥도 집에서 해 먹고, 필요한 물품도 마트에서 배달받는다. 집에서 있는 것이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배달의 민족'인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딱 맞는 생활관습이다.
자취생 김가람(28) 씨는 요즘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심지어 친구들과의 약속도 자신의 집으로 잡는다. 김 씨는 “나가면 다 돈이다. 차비, 밥값, 커피값, 술값 등 한 번 나가면 몇 만 원이 금방 나간다. 그래서 밖에서 약속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밖에서 술 한 번 마시면 몇 차까지 가고 택시타고 귀가하는데, 집에서 친구들을 만나니까 술값도 훨씬 절약되고 편하다”고 말했다.
벌크형 소비
지난해 유통업계가 과대포장으로 인해 “질소를 사면 과자를 덤으로 준다”는 비난을 받으며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했다. 불안한 경기에 소비자들은 적은 가격에 많은 양(bulk)을 원한다. 이 같은 현상을 ‘벌크형 소비’라고 부르는데 벌크형 소비는 전형적인 불황형 소비에 꼽힌다. 소비자들의 심리는 반영한 듯 최근 ‘벌크형’ 제품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중 하나가 대용량 커피다.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1리터 가량의 대용량 사이즈 커피를 파는 커피숍이 많이 들어섰다. 소비자들이 더 싸고 더 많은 양을 원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정모(22) 씨는 “일부 프렌차이즈 커피는 가격도 너무 비싸고, 양도 얼마 없어서 빨대로 몇 번 마시면 없어진다”며 “그런데 요즘 생긴 곳은 싼 가격에 두 배나 많은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부담 없이 찾게 된다”고 전했다.
이밖에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삼립 ‘누네띠네’ 대용량 과자와 코스트코의 미국형 각종 대용량 제품, 편의점의 대용량 요구르트도 같은 맥락이다.
벌크형 소비는 2011년 미국에서 벌크푸드(bulk food)가 유행한 것에서 변형되었다. 벌크푸드는 필요한 만큼 덜어서 소비할 수 있어 낭비를 막는다는 의미로 사용됐지만, 벌크형 소비는 대용량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같은 양을 저렴하게 샀다는 경제적인 만족감을 나타낸다.
체리피커
얌체 소비도 불황형 소비의 한 형태로 나타난다. 좋게 말하면 현명한 소비자라고 불리고, 나쁘게 말하면 얌체 소비자라고 불리는 게 ‘체리피커’다. 이는 신포도대신 맛있는 체리만 골라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소비자를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의 혜택만 누리고 카드는 사용하지 않거나, 상품이나 서비스를 주문했다가 잠시 동안 사용한 뒤 반품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커피값 계산은 친구가 하지만 적립만은 자신이 꼭 하는 얄미운 사람들도 체리피커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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