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 유권자가 있습니다. 어느 해 국회의원 선거 때 투표를 하는데 1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먼저 투표를 끝낸 남편이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물었더니, 유력 후보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아 망연히 서 있기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국 사태’ 때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에 나왔습니다. 한 시민은 “내가 이런 데 나올 사람이 아닌데, 나라가 엉망진창인데다 분하기도 해서...”라고 했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민은 자유한국당 집회와 인근의 교회 집회 둘 다 거리를 둔 채 화단 곁에서 전전긍긍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는 ‘조국과 그들’이 싫어서 광화문 집회에 나왔을 것인데, 한국당이 민심을 대변하기엔 역부족이라 느꼈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런 시민들을 우리는 ‘중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시중에는 중도 혹은 무당층이 40%란 말이 있습니다만, 제1 야당이라는 한국당은 현 정권의 오만방자와 내로남불, 실정(失政)에도 불구하고 국민 다수의 마음을 얻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하리란 예감이 드는 것은 황교안 대표가 ‘야심차게’ 준비했다는 ‘1호 인재 영입’의 내용이 지극히 실망스러운 탓입니다. 이 사안은 한국당 혹은 ‘황교안 체제’가, 흔히 이르는 바 수구에 불과하거나, 많이 봐줘서 감수성과 민심을 읽는 정무감각이 허약하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당장 상대 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감사하다"는 반응이 나왔고, 중도층은 냉소를 보였으며, 한국당 내부에서도 반발하거나 곤혹스러워했습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인재 영입’이라고 했을 때 참신, 개혁, 헌신, 봉사, 훌륭함 같은 단어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1호 인재 영입’이 빚은 소동은 해프닝 정도가 아니라 ‘참사’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찬주 전 육군 대장,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 안병길 전 부산일보 사장 등입니다.
황 대표는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해서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을 영입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최고위원들이 반대했고, 그 반대는 관철됐습니다. 박 씨는 공관병을 비인간적으로 대한 문제 등으로 인해 이미지가 많이 훼손된 인물입니다.
그 이후가 더 문제였습니다. 자신을 괴롭힌 군인권센터 소장 아무개 씨가 비록 밉고 가소롭다 하더라도 ‘삼청교육대’ 운운할 계제는 아니었습니다.
삼청교육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당시 힘없는 서민들은 주정을 부렸다는 이유만으로도 군부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습니다. 동네 건달과 양아치들이 공무원 연줄을 이용해 피해 나간 건 별개의 일입니다. 한 마디로 삼청교육대는 초법적 인권유린의 현장인 것인데, 그걸 자랑이랍시고 들먹였으니 그의 인권 의식과 시대적 감수성의 수준을 알겠습니다.
공관병이 공관의 감을 따는 문제만 해도, 잘못된 관행이라며 사과를 한 뒤 병사들이 훈련과 무관한 그런 하찮은 일을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는 4성 장군을 지냈습니다만, 병사의 종기에 난 고름을 입으로 빨았던 춘추전국 시대의 오기 장군이나 2차대전의 영웅으로서 ‘졸병 장군’으로 불렸던 미국의 브래들리 장군 같은 스타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오기와 브래들리의 방식이 다 옳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병사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짚어보려는 것입니다.
요컨대, 박찬주 씨 같은 인물이 시대가 원하는 참신한 인재인지는 의문입니다.
이진숙 전 대전MBC사장은 ‘유능함’과 ‘훌륭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인물입니다.
이 씨는 ‘이라크 전쟁’ 때 종군기자로서 일을 잘 했습니다. 유능한 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12년 MBC 홍보국장 시절에는 동료들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시 MBC기자회는 기자 해고와 편파보도에 대한 대외 왜곡 브리핑 등의 책임을 물어 이 씨를 기자회에서 제명했습니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기자총회의 결과는 찬성 115, 반대 6이었습니다.
MBC가 비록 ‘노영방송(노조가 운영하는 방송)’이란 말을 듣는 터였지만, 이 정도의 결과라면 심각하게 짚어볼 사안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 씨는 또 대전MBC 사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보도 문제로 인해 구성원들의 퇴진 압박을 받다가 결국 물러났습니다.
내부에서는 아예 보수정권 시절의 편파보도 등에 관여한 ‘부역자’라 부르고 있으니 이 씨의 영입을 두고 순리다, 매끄럽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씨는 어쨌든 영입됐습니다.
안병길 전 부산일보 사장은 1차 영입 대상에 포함됐다가 최고위원 등의 반대에 부딪혀 제외됐습니다. 안 씨를 두고는 입에 오르내린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네이버를 비롯한 대형 포털에서 ‘안병길’을 쳐보면 그 이유가 자명해집니다.
안 씨는 부산일보 구성원들의 절대다수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고 물러난 인물입니다.
이번에 안 씨의 이름이 거론되자 부산일보 노동조합은 긴급 대의원·운영위원 연석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지난 6일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시빅뉴스> 11월 8일자 기사 ‘부산일보 노조, 안병길 전 부산일보 사장 “더이상 부산일보를 팔지 말라” 경고’ 참조)
이 성명서는 민망한 내용으로 점철돼 있습니다. 주요 내용을 간추려보겠습니다.
“(안 씨는)단체협약, 사원윤리강령, 편집규약, 신문윤리실천요강, 노동법을 위반해 사내 민주주의를 내려 앉혔다. 겁박, 독주·불통경영, 인사전횡으로 ‘갑질경영’을 일삼았다.(...)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위반 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반성을 해도 모자랄 그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쫓겨난 게 아니라 엄청난 대의명분을 갖고 사장직을 스스로 그만둔 것처럼 처신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부연하자면, 안 씨는 2018년 6월부터 159일 동안 부산일보 구성원들과 시민사회단체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고 조기 퇴진했습니다. 한국당 후보로 부산시의원 선거에 나선 부인의 선거운동을 한 게 발단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선거법을 위반하고 여러 차례 거짓말을 한 사실이 탄로 나 공분을 샀습니다.
일부에서는 노조가 좌파 정권의 사주를 받고 한국당 지지자인 안 씨를 공격한 것이란 말을 하고 있다는데, 최소한 부산일보 내부에서는 그렇게 보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안 씨는 외부 요인이 아니라 개인적 비리와 부조리 때문에 물러났다는 것입니다.
특히 안 씨의 경우, 소소한 직함이라지만, 이미 한국당 중앙위 해양수산위원장을 맡고 있고, 이미 서구의 사무실에 대형 걸개 사진을 내건 채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터에 새삼스럽게 ‘영입’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니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세 사람은 ‘1호 인재 영입’ 대상이 됐습니다. 황 대표가 어떻게 해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는 미스터리입니다. 자신은 ‘삼고초려’ 운운하지만 명색 ‘1호 인재’를 영입한다면서, 크로스체킹을 해 본 것 같지도 않고, 잠시 시간을 내 포털 검색을 해 본 것 같지도 않습니다. 몇몇 ‘친박’ 간신배들의 이름만 어른거리는 형편입니다. 최고위원들이 당일에야 영입 사실을 알고 집단 반발한 게 그 증거입니다.
국민은 지금 한국당이 기어이 환골탈태해서 훌륭해 지고 감동을 주길 바라는 것 같은데,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난망한 일인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말한 어느 여성 유권자와 광화문 집회의 언저리만 맴돌았다는 그 시민이 눈에 밟혀서 황 대표께 굳이 고언을 하나 드리고자 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입니다.
“문제를 초래한 사고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