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자블랫의 역작이다.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 두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 직후,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주의조차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고, NYT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썼다. 이 칼럼은 큰 주목을 받았고, ’베스트셀러‘ 책으로 거듭났다.
저자들은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매우 유사한 패턴으로 무너졌음을 발견한다. ‘선거에 의한 독재자의 선출과정’,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지도자’..., 이른 바 민주주의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들을 찾아낸 것이다. 그들은 통찰한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헌법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관용이나 제도적 자제와 같은 ‘규범’임을.
민주주의 붕괴 징후에 한국 역시 둔감할 수 없어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이 책의 부제가 주는 경고 때문일까. 이 책은 국내에서도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제3장의 도표, ‘도널드 트럼프와 전제주의 행동을 가리키는 네 가지 주요 신호’가 주는 시사점은 가볍지 않다. 우리 역시 민주주의를 유지·발전시켜 가야할 터라면, 그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징후를 논의하는 상황에 둔감할 순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넘으며, 우리 민주주의를 점검하는 것은 또 어떤가. 그는 취임사에서 ‘나라를 나라답게’란 구호 위에, 군림·통치하는 대통령 대신 대화·소통하는 대통령, 분열과 갈등의 정치 극복, 기회의 평등-과정의 공정-결과의 정의를 약속했다. 그 약속을 되새기며, 우리 민주주의의 건강성 내지 위기 징후를 읽어볼 수도 있을 터다.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4가지 신호를 보라.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혹은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 부족),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경향.... 우리에겐 그저 낯선 징후인가. 혹, 어떤 데자뷔를 느낄 순 없는가? 거꾸로 묻는다면, 우리는, 민주주의 규범을 준수하려 노력하는가, 정치 경쟁자를 인정하는가, 언론의 기본권을 억압하지는 않는가. 두루 ‘그렇다’고 당당할 수 있는가?
언론 옥죌 규칙, ‘훈령’ 강행? 군부독재 넘을 전제적 발상
우선, 언론의 기본권 문제. 한국언론은 지금 엄중한 내우외환 상황이다. 특히 ‘밖으로부터의 시련’은 날로 심각하다. 대통령이 ‘가짜뉴스’ 대응을 얘기한 데 이어, ‘언론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대통령은 ‘언론과 정부의 관계’를 전제하면서도, 굳이 ‘언론개혁’을 거론한다. 당연히 정부·여당은 ‘가짜뉴스’ 근절 및 유튜브 규제를 벼르고 있고.
최근 법무부가 언론을 옥죌 규칙들을 거론하는 양상을 보라. 국민의 알 권리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들을 그저 ‘훈령’으로 강행하려는 위헌적 발상이다. 좁게는, 오보 기자의 검찰출입 제한, 수사진행 사안에 대한 검사·수사관의 기자접촉 금지에, 넓게는 피의사실 공표금지, 공직자의 명예훼손 논란까지.... 그럼 ‘오보’는 누가 판정하고 ‘수사’는 누가 감시하며, 정부의 ‘거짓말’은 누가 밝혀내나? 말 그대로, 신군부 시대를 넘을 독재·전제적 발상이다.
언론계의 반발은 당연하다. ‘권력감시를 위축시킬 수 있다’(경향), ‘언론의 권력감시 무력화 시도’(한국), ‘언론자유 침해 넘어 통제 수준'(동아).... 훈령대로라면, “‘밀실수사’를 벌이고 정권비리는 덮어버릴 수 있다는 뜻”,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감아주고 편파적 수사를 해도 견제할 길 사라진다” 같은 우려도 높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언론-권력의 갈등관계는 필연적이다. 그 갈등관계를 규율하는 분명한 룰도 있다. 권력은 언론영역의 어떤 표현을 두고 가치 없다거나 유해하다는 주장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표현이 더러 해악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시정기능은 사상의 경쟁체제에 의존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 우리 ‘권력’이 촉발시킨 ‘언론 논쟁’은 주로, 언론의 공정성·객관성에 대한 비평·논쟁이 아닌, 논조에 대한 이념적 논란이다. 권력을 감시·비판해야 할 언론에, ‘진실보도’ 외의 기준을 요구한다? 이건 언론자유의 근본을 해칠 불온한 접근이며, 언론의 기본권을 노골적으로 억압하려는 경향이다(차용범, 진실보도와 국익보도, 그리고 언론-권력의 갈등).
정권의지 담은 정책의 입법 없는 우회강행, 위헌 논란
다음, 민주주의 규범의 거부, 또는 규범준수 의지 부족. 최근 한 신문은 이 부분을 특집보도했다. 정부가 검찰개혁 같은 (정권의지를 담은)정책을 국회 입법을 거치지 않고 추진, 3권분립·법치주의 체계를 흔들며 위헌 논란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관계의 충돌 우려에, 조정·타협이 필요한 현안일수록 입법절차를 우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우려다(중앙, “툭하면 입법 패싱, 위헌논란 부르는 '시행령 정치'”).
교육부의 최근 특수목적고 일괄폐지 방침을 보라. 교육정책이 이념·성향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교육계 반발이 드세다. 헌법상 교육법정주의를 외면하고, 시행령으로 고교체제의 큰 틀을 좌우하려는 것, 민주적인가? 최근 탈원전 정책에의 국민투표 주장이 나온 것도 그렇다. 그 탈원전 정책은 국민·국회의 동의나 법령 근거 없이 행정계획을 통해 진행 중이다. 국가에너지정책을 법적 근거 없이 강행하며 위헌 논란을 사고 있는 것, 민주규범을 준수하는 것인가?
‘검찰수사의 단계별 법무장관 사전보고’를 요구하는 ‘검찰사무보고규칙’(안)은 또 뭔가? 검찰수사의 독립성(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규정한 검찰청법을 두고, 시행령으로 상위법을 거스른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공정성 확보 방안’으로, 법무부장관에 대한 검찰의 보고축소와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행사 엄격화를 권고한 건 어느 정부 일인가. 그 1년 전 논의를 뒤집는 ‘깊은 뜻’은 뭔가?
한 법학교수는 “여당 정치인은 검찰수사를 받지 않겠다는 것 외에 아무 의미도 없다”고 일갈했다. 정말 그런 뜻인가? 검찰을 더 통제할 명분이 있다면 국회논의를 거쳐 법률을 개정하는 게 옳다. 최근 ’공수처 설치‘를 둘러싼 위헌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그렇다. 대통령이 조종하는 상위기관을 개헌 없이 설치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허영, 헌법학). 여러 위헌 논란에는 실상, 독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지적이다.
정치 경쟁자 인정·배려 인색에 극심한 국론분열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역시, 우리에겐 ‘데자뷔’를 느낄 부분이 적잖다. ‘군림·통치하는 대통령 대신 대화·소통하는 대통령’에의 평가 역시 후할 순 없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반성도,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다. 최근 청와대 정무수석의 국정감사 중 ‘버럭·삿대질’은 또 어떤가. 우리 정치현장, 국회에서의 충돌과 언쟁은 그렇다 하더라도, 권력이 직접 고함 치고 소리 지르는 것은 이 정부의 ‘특이한 현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국 대란’을 보는 청와대·여당의 태도를 보라. 국민통합보다 진영논리에 침몰, 극심한 국론분열을 겪고 있다. 청와대의 권력집중과 그에 바탕한 ‘끼리문화’, 그에 따른 정치혼란은 결국 상대에 대한 배려며 인정에 인색한 결과일 따름이다. 대통령의 취임사에 관류하는 정신들은 그저 구두선(口頭禪)에 그쳤다는 것이다(김민환의 퍼스펙티브).
“文 임기 반환점, 긍정평가한 언론은 없었다”-‘미디어오늘’의 ‘아침신문 솎아보기’ 제목이다. 부제는 “확 달라져야”(경향), “만족 못해”(한겨레), “편협한 국정”(한국), “분열 방치”(동아). 언론의 대통령 전반기 국정운영 평가는, 성향에 관계없이 혹독했다. 국민통합과 협치(소통)를 주장한 신문도 여럿이다. 언론들은 걱정한다. 대통령은 남은 ‘절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민주주의 규범 확산, 한국사회 기회이자 도전과제
앞으로, 대통령이 계속 지금의 기조를 유지하든, 국민과 소통하며 민주정치를 복원하든, 그건 그의 온전한 선택이다. 그 속에서 우리가 확인할 바는 뚜렷하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민주주의의 위기징후가 있다면, 그만은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역사 속 깨우침을 보라. “자유는 당연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이 책자는 우리가 지탱해야 할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도 제시한다. 궁극적으로,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미국 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 어떤 지도자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살릴 수 없다는 것, 그 운명은 국민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 교훈을 대입하면, 우리의 다짐도 보다 뚜렷해야 할 터이다. 한국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이제 한국국민은 지금껏 민주주의를 지켜 주었던 기본 규범을 되살려야 한다. 나아가 그 규범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해야 한다.... 그것이 이제 한국사회의 도전과제로, 동시에 기회로 남았다. 우리가 그 과제를 완수한다면, 한국은 역사상 진정으로 특별한 나라가 될 것이다(제9장, ‘민주주의 구하기’ 중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 부분 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