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781조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지난 8일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 개선위원회’(위원장 윤진수)가 ‘부성 우선주의’인 민법 제781조를 부모가 협의해서 성·본을 결정할 수 있도록 전면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민법 조항에 따라 자녀 출생 시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원칙은 ‘부성 우선주의’를 기반했다고 볼 수 있다. 호주제가 폐지되기 전까진 우리나라는 ‘부성 강제주의’인 호주제가 시행됐었다.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의 출생과 혼인, 사망 등의 신분 변동을 기록하는 것이다. 아버지 우선적인 호주 승계 순위가 담긴 호주제는 여성 차별적 문제가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존재한다.
남녀불평등 조항을 지닌 호주제는 2005년 헌법 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08년 1월 1일에 폐지됐다. 호주제가 폐지된 후, 가족관계등록법이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가족 등록법은 호주제와 전혀 다르다. 가족 등록법은 생년월일과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간단한 인적사항만 담는다.
호주제가 폐지됐어도,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부성 우선주의’가 남아있다. 현재 혼인신고서에는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성, 본의 협의 여부를 묻는 항목이 있다. 이에 ‘예’라고 답하면 협의서와 함께 신분증명서 사본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것은 아직 나라에서는 예외적인 사항으로 분류를 하므로 제출해야 할 서류들이 있어 매우 복잡하다.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하고 싶다면, 혼인신고서를 작성할 때 성·본 협의 여부를 묻는 4항 질문에 ‘예’라고 답을 꼭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후에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싶어도 민법상 절대 불가능하다. ‘부성 우선주의’가 기반인 원칙에 따라 아버지의 성을 무조건 따라야 하며,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것은 제외이기 때문이다. 만약, 협의가 없을 경우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없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에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 70.4%가 ‘자녀 출생신고 시 부모가 협의해 성·본을 정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에 찬성했다.
대학생 김모(21, 부산시 남구) 씨는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자신도 찬성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김 씨는.자녀의 성·본을 부부가 혼인 신고할 때 협의해야지만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는 것은 남녀차별이자, ‘부성 우선주의’이므로 자녀들이 출생한 뒤, 출생신고를 할 때 부부가 협의해서 결정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민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씨는 “이것이 남녀차별의 시작으로 느껴진다. 법을 바꾸는 것은 복잡한 과정이므로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과반수의 국민이 원하는 만큼 시대에 맞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둘째 아이에게는 엄마 성을 주고 싶습니다. 부성 주의 원칙 폐지 / 출생 시에 부모가 협의하여 엄마 성을 따를지, 아빠 성을 따를지 결정해야 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태어나지도 않은 자녀의 성을 혼인신고 때 결정하는 것은 굉장히 비합리적이고,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고,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것은 ‘예외’라는 의미이니까요. 이는 여성의 계통 능력 박탈을 의미하며, 동시에 헌법이 규정한 양성평등에도 어긋나는 위헌적 조항이죠”라고 의견을 밝혔다. 덧붙여 청원자는 자신의 남편도 부성 주의 원칙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둘째 아이에게는 엄마의 성을 따르게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청원은 종료됐고, 아직 답변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형제 자매 간 동성동본주의를 따르고 있어서 첫째와 둘째 아이의 성·본을 다르게 할 수 없다.
혼인 기간이 3년 이상인 부부가 가정법원에 친양자 입양 청구를 해서 허가를 받으면 ‘부성 우선주의’ 원칙에 따라 아버지의 성·본을 따르게 된다. 하지만 부부가 혼인신고 때 어머니 성·본을 따르기로 협의했다면 친양자가 어머니의 성·본을 따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친자녀와 동일한 법적 지위를 부여해서 자동으로 성·본이 변경되는 친양자 입양과 일반 입양은 다르다. 일반 입양은 민법상 법원의 허가를 통해 성·본을 변경할 수 있다. 입양한 부모나 아이가 어머니와 아버지 중 원하는 성·본을 선택할 수 있다.
‘부성 우선주의’는 쉽게 사라지기 힘든 고질병과 같다고 말한 이모(22, 부산시 사하구) 씨는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아이를 입양하는 것은 혼인 신고할 때 정하지 못하는 미래에 있을 부부의 일이다. 아이를 키우지 않고 살려고 했다가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마음을 바꾸면 그 때 가선 아이의 성을 어머니의 성에 따르게 하는 것은 힘든 일이 되지 않느냐”며 친양자를 입양할 때도 일반 입양처럼 입양하는 부모나 아이가 원하는 성·본을 결정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평등한 가족을 만들고, 평등한 가정생활이 이어져야 사회도 평등해질 것이다”라며 이 씨는 "동등해야 하는 법이 성차별적인 조항을 담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한편 ‘강김영희’,‘박이민수’와 같이 부모의 성을 동시에 쓰는 것은 민법상 불가능하다. 일상에서 별명과 같이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나, 법적 서류에 등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