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모(37,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흔히 말하는 골드미스다. 서울 명문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부산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 중이다. 외모도 나쁘지 않고 능력도 좋은 그녀의 유일한 결점은 현재 남편은커녕 남자친구도 없다는 것. 외로움을 느끼던 중, 그녀는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시급 남편’이라는 서비스를 알게 됐다. 최 씨는 “주위 친구들은 다 결혼했다 보니 어디 모임을 나갈 때 눈치가 보인다. 최근 동창회에 역할 대행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남자 친구'를 동반해 참석했다”고 말했다.
시급 남편은 역할 대행 서비스 중 하나로 시간당 1만 5,000원에서 2만 5,000원을 받고 남편이 하는 역할을 대신 해준다. 주로 30~40대 골드미스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기존에는 역할 대행업체들은 하객이나 조문객 위주의 역할 대행 서비스를 해왔다. 그러나 요즘은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를 가진 미혼 여성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타겟층으로 한 남편 대행 서비스까지 생겨났다.
시급 남편이라는 개념은 알바와 비슷하지만, 역할은 다양하다. 결혼식이나 동창회는 물론, 남편의 역할이 중요한 비즈니스 모임이나 부동산 계약에 동행하기도 한다. 심지어 남편들이 집에서 맡는 사소한 일까지 대행해 준다. 한 역할 대행업체 관계자는 “주 고객층인 골드미스들이 전자제품 설치나 못 박기 등의 집안일에도 남편 대행서비스를 이용한다. 무료한 주말을 함께 보내거나 같이 밥을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43, 서울시 광진구) 씨도 남편 대행 서비스를 자주 이용한다. 박 씨는 4년 전 이혼한 뒤로 혼자 살고 있다. 우연히 온라인에서 시급 남편 서비스를 접하게 되면서 박 씨는 전 남편이 대신했던 일이나 자신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일일 남편'에게 대신 시키고 있다. 박 씨는 “가끔 가구를 재배치하거나 간단하게 집을 수리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시급 남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급 남편 서비스가 마냥 반가운 서비스인 것만은 아니다. 역할 대행업체들은 고객들에게 원하는 역할의 인물을 소개해줄 뿐, 실제로 그들이 어떤 역할을 대행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고객의 신분 노출을 우려해 업체들은 비밀리에 영업 하고 있다. 자칫 성매매라는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어 역할 대행업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감시가 필요하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역할 대행업의 성행은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우리 문화에서 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역할 대행 서비스의 수요 증가는 사회 변화와 의식 변화 사이의 간극이 발생할 때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점차 줄어드는 것이 정상”이라며 “그렇지 않고 이런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한다면 개인은 물론 사회적 혼란도 야기시키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