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아파트와 성수대교 붕괴, 그리고 세월호 참사 같은 대규모 재난을 계기로 그동안 우리 사회의 안전 의식이 어느 정도는 높아졌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이번 이태원 할로윈 참사의 경우 “기도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종교의 존재 이유를 알 것 같다”는 현장 기자의 탄식이 귀에 박힐 정도로 참담한 마음이 든다.
아울러 이번 재난을 보도하는 여러 미디어의 콘텐츠를 보고 있으면 언론의 역할은 과연 재난을 그저 중계하고 분석하고 책임을 묻는 것 밖에 없는가, 효과적인 재난 관리와 예방을 위한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자조감이 든다.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가 아닌 인간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재난에 대해서도 우리 언론계에서는 2014년 재난보도준칙을 제정해 자극적인 보도행태나 취재경쟁, 비전문적 취재행태등을 금지하는 자율적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난보도 매뉴얼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에 대해서 세월호 사고 이후 한 세미나에서는 “방송분량 메우기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적 보도 관행이 여전하다”는 지적들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번 이태원 참사의 경우 소셜 미디어와 시민 개인의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수많은 영상들이 방송 채널을 통해 반복 재생되었는데 이는 태풍 피해와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시민들의 제보와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를 던지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 수십 년간 지진과 태풍등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재해보도 원칙을 ‘피해보도’에서 ‘인명보도’로 바꾼바 있다. 즉 ‘피해 상황’을 전달하는 기존 재해보도를 ‘생명을 우선’한다는 것으로 전환했다. 대표적인 것이 피해자나 가족의 안부를 전하는 안부 방송이다. 이러한 자연재해 보도 준칙은 사회 재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일본의 경우 언론도 재난과 재해에 대해서는 보도기관인 동시에 방재기관(실제로 NHK는 법률에 의한 방재기관이라 함)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이들에게 필요한 생활정보를 중점적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하다 싶겠지만 일본 언론의 재난보도 방식과 태도는 심지어 사망자 유족의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고 자극적인 사진도 쓰지 않는다.
재난보도가 피해상황과 같은 사실 보도에 중점을 두게 되면 자칫 책임추구형 보도에 빠지기 쉽다. 재난보도가 벌어진 피해 사실에 대한 책임추구에 초점을 맞춘 결과 우리 사회에서는 해당 재난을 두고 편가르기나 책임 전가와 같은 부작용이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보도방식은 재난이나 사건의 재발 방지에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일본의 경우 누군가에게 책임 추구를 해서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보도 방식보다는 원인규명형으로 보도 매뉴얼을 바꾸고 있다.
특히 이번 참사의 경우 언론사들은 사고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시민들의 개인 SNS 계정에 업로드된 동영상이나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한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도 재난 상황 발생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증가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재해나 사회재난이 발생하면 더욱더 소셜미디어나 시민제보 영상이 새로운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재난보도 준칙에도 이러한 무분별한 소셜미디어 영상 사용이나 개인 제보 콘텐츠에 대한 사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상생활에서도 시민이 중심이 되어 다양한 관점의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시빅저널리즘이 자리 잡았듯이 재난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쏟아지는 시민들의 영상과 목소리를 제대로 정제하여 보도할지, 그리고 이를 통해 다시는 같은 사고를 겪지 않게 우리 사회를 바꿀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부디 이런 큰 재난에 대해서만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한 목소리 한 마음으로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 조치가 만들어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