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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우 칼럼] 다보스 포럼을 보고 부산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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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우 칼럼] 다보스 포럼을 보고 부산을 떠올리다
  • 칼럼니스트 권만우
  • 승인 2023.01.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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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초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미국 소비자 가전쇼)에는 삼성, 현대, SK등 대기업 회장단은 물론이고 국토부장관, 광주시장등 정치-행정가들도 대거 참석해 <최고 혁신기술>을 선보였다고 자랑하는가 하면 <최대 수출실적>을 기록했다고 홍보에 열을 올린바 있다. 그로부터 2주일이 지난 뒤 대통령을 비롯한 장차관, 대기업 총수들이 모두 스위스의 다보스(Davos)로 몰려가 세계경제포럼(WEF)이라는 국제무대에서 경제적,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아울러 ‘한국의 밤’ 행사를 통해 세계엑스포의 부산 유치도 지원하고 돌아왔다.

다보스의 아메론 호텔 복도에 설치된 한국의 밤 입간판과 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입간판(사진: 권만우 제공).
다보스의 아메론 호텔 복도에 설치된 한국의 밤 입간판과 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입간판(사진: 권만우 제공).

우리나라 대통령이 참석하여 직접 다보스 포럼에서 연설한 것은 2014년 박근혜 대통령 이후 9년만이다. 인구 1만명 규모의 작은 시골 마을에 전 세계 70여개국의 정상 및 장관, 30여명의 국제기구 대표, 글로벌 기업 대표등 3천여명이 참석했으며, 우리나라에서만도 재계 총수들을 비롯한 수행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매년 인구 몇 배 이상의 글로벌 리더들이 찾아오다보니 다보스에서는 소박한 아파트가 1박에 1천만원이 넘기도 한 실정이다.

세계적인 행사가 이런 오지의 시골에서 열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왜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들은 매년 초 CES 참가에 열을 올리고 다보스라는 오지 산골 마을에 수십억원을 들여 방문하는지 궁금해졌다. 다보스 뿐만 아니라 매년 3월에 미국 텍사스의 작은 대학도시 오스틴(Austin)에서 개최되는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도 이들의 단골 방문지이다. 다보스에 현대차그룹이 제공한 수십대의 최신 친환경 차량이 게스트 의전 차량으로 제공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있으니 한 편으로는 뿌듯한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 우리는 이런 세계적인 전시나 포럼, 컨퍼런스를 키워서 전 세계 거물들이 매년 대한민국에 오게 할 수 없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현대차가 후원한 월드엑스포 홍보 의전차량(사진: 권만우 제공).
현대차가 후원한 월드엑스포 홍보 의전차량(사진: 권만우 제공).

이번 다보스 포럼은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대면으로 개최되었지만 미국과 중국등 G7정상 대부분이 불참하여 다소 힘이 빠졌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보스 포럼의 파급효과를 경제적 수입으로만 분석해 봐도 부러울 따름이다. 다보스 포럼이 공개한 회계수입보고서에 따르면(WEF Annual Report 2021-2022) 코로나 기간 중에도 다보스 포럼의 등록 및 협찬수입은 2022년 6월 기준 3억8천만 프랑(약 5천억원), 자산이 7억4천만 프랑(약 1조원)에 달한다. 올해에는 이보다 훨씬 수입이 상회할 것으로 예견된다고 하니 3박4일짜리 행사 하나가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다보스의 중심가를 따라 형성된 작은 가게들과 식당들도 다보스 포럼기간 중에는 세계적 기업의 홍보전시관이나 국가 전시관으로 임대되는데 작은 공간 하루 임대료가 2억원에 달한다고 하니 포럼사무국 회계에 잡히지 않은 비용까지 포함하면 사흘 행사에 상상을 초월하는 수익을 올리는 셈이다. 다보스 포럼은 세월이 흐를수록 마치 ‘비정부기구의 샤넬’이 되어가는 형세이다. 샤넬 가방이 매년 가격을 올릴수록 잘 팔리는 베블렌(Veblen) 효과를 활용하듯이 다보스도 매년 참가비와 등록비를 비싸게 올려 ‘억만장자들의 사교클럽’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다보스 회의장 주변의 상가를 홍보전시관으로 바꾸어 활용하는 모습(사진: 권만우 제공).
다보스 회의장 주변의 상가를 홍보전시관으로 바꾸어 활용하는 모습(사진: 권만우 제공).

1971년 스위스 제네바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기획하여 시작된 이 포럼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전 세계 정·재계 거물들은 왜 매년 1월 말이면 교통도 불편하고 숙박도 부족한 이 시골 마을로 모여들고 초고액의 참가비와 연회비를 내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다보스 포럼의 성공비결은 기업의 후원금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비정부기구라는 평가를 받는 다보스 포럼도 초기 후원금에 의존하던 운영 시스템을 회원제로 전환한 이후 오늘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다보스 포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성공한 컨퍼런스나 어워드(Award)의 경우도 회원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1947년에 만들어진 미국의 ACM(컴퓨터학회,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회원 9만8천명이 컨퍼런스를 통해서만 7천8백만달러(약 1천억원)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고 학회가 너무 크다 보니 분과학회(SIG)을 38개로 나누어 세부행사는 분과학회에 위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ACM의 분과 SIG인 컴퓨터그래픽학회(시그라프, SIGGRAPH)만 해도 등록비가 1000달러(회원 기준, 비회원은 1240달러) 정도인데 코로나 기간 중임에도 행사 한번에 약 2만명 가까이 등록해 약 2천만달러(약2백4십억원)의 수입을 올렸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포럼과 컨퍼런스를 보면서 우리의 경우 과연 세계에 내놓을 만한 영향력 있는 행사가 무엇이 있을까 되돌아본다. 삼성 반도체와 현대 자동차, 조선업이 세계적 반열에 올랐지만 K팝과 K드라마가 넷플릭스를 비롯한 세계적 콘텐츠 마켓의 최상단을 차지하고 공연 플랫폼에서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것 외에 정치나 경제, IT분야의 포럼이나 컨퍼런스, 전시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세계 최빈국에서 70년만에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며 여권 파워가 전 세계 2위라는 자부심은 뿌듯하지만 이제 우리도 다보스포럼과 같이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소프트파워를 가진 국가가 되길 희망한다. 이 대목에서 월드엑스포 유치를 간절히 바라는 도시 부산에서 만든 세계적인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가 떠오른다. 전 세계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는 다보스 포럼처럼 부산이 전 세계 문화콘텐츠를 움직이는 글로벌 파워를 가진 세계도시가 될 수 있다면 무리한 소망일까. 28년째를 맞이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부산국제영화포럼이 있고 아시아필름&콘텐츠 어워드가 있다. 다보스와 달리 부산국제영화제는 시민들과 국민들의 세금이 주 재원이다. 기업 후원금도 줄어들고 있다. 세금으로 운영되다보니 당연히 등록비는 저렴하고 회원가입은 무료이다. 2030년 세계엑스포가 부산에서 개최된다면 부산국제영화제는 서른다섯살이 넘어갈 것이다. 그때에도 과연 부산영화제는 다보스가 가는 길을 걸을 것인지 계속 세금에 기대어 운영하는 지역영화제로 자리 잡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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