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에서 '여성 혐오'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등장한 가운데 여성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혐오적 내용을 배제한 정보를 게재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아름드리 위키’란 이름의 새로운 위키 사이트가 등장했다.
그 시작은 우리나라 최대 위키 사이트인 ‘나무 위키’가 ‘살생부 논란’을 불러 일으킨 데 따른 반작용 때문이다. 이른바 '살생부 논란'은 얼마 전 남성혐오 사이트인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이유로 넥슨 게임의 더빙 작업에서 하차한 성우 김자연 씨에 대한 지지를 밝힌 웹툰작가, 기자, 번역가 등 여러 인사의 명단을 '나무 위키'가 게시함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일어난 일을 가리킨다. '메갈리아'를 혐오하는 네티즌들이 이들을 집중공격하고 이에 대한 역공격이 부딪치면서 이 문제는 온라인을 벗어나 일간 신문과 방송 등에서도 집중 보도된 바 있다.
'아름드리 위키' 개설자는 트위터를 통해 “나무위키의 수많은 문서들을 보고 여성의 관점으로 서술된 위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위키를 개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위키’는 ‘빨리’를 뜻하는 하와이어에서 온 말로 정식명칭은 ‘위키위키.’ 위키백과는 '위키'를 “웹 브라우저에서 협업을 통해 직접 정보 내용과 구조를 수정할 수 있게 해주는 웹사이트”로 정의한다.
우리나라의 위키로는 위키백과, 나무위키, 위키트리 등이 있다. 누구나 문서 편집에 참여해서 올라와 있는 콘텐츠를 직접 수정할 수 있고, 편집 내역에는 누가, 언제, 어떤 항목을 수정했는지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정보 갱신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데다 정보 공유 방법이 편리해 위키 문서는 구글 검색에서 거의 예외 없이 최상위에 오를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누구에게나 편집 권한을 주는 다른 위키와는 다르게 아름드리 위키는 ‘멤버’로 가입해야만 문서 작성 및 수정을 할 수 있다. 전에도 페미니즘 위키가 만들어졌지만, 일부 여성 혐오자들이 악의적으로 문서를 수정하는 행위가 계속됐기 때문에 외부의 공격을 받아왔다. 누구에게나 수정 권한이 있는 위키의 특성상 그같은 악의적 편집 행위를 막을 시스템이 없어 개설된 지 며칠 만에 공중분해돼 버렸던 것.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네티즌들은 '아름드리 위키'의 출현을 반기고 있다. 박슬기(27,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포털 검색을 하다가 한 위키 문서를 보게 됐는데 여성혐오 발언을 원문 위에 취소선 긋기로 표기해 드립치듯 문서 작성을 해놨다”며 “인간에 대한 혐오를 담지 않은 위키를 지향한다고 하니 응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무 위키'에는 운전을 못 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김여사,’ 여성 성기와 벼슬아치를 합성해 만든 비속어 ‘보슬아치’ 등의 용어가 버젓이 담긴 문서가 작성돼 있다.
위키 사용자 정은지(26, 부산시 부산진구) 씨는 “인터넷 사회조차 남성 중심”이라며 “심지어 남자 친구도 ‘여성적 시각 위키’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거 '메갈'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여성~’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잘못됐다고 말하니 화가 난다”고 말했다. 정 씨는 “공지 사항에 쓰여 있는 것처럼 아름드리 위키는 어떤 혐오가 됐든 혐오를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에 5시간 이상 위키 게시물을 볼 정도로 위키 검색이 취미라는 최진호(24, 서울시 마포구) 씨는 “위키 사용자들의 인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혐오적 뉘앙스가 문서에 쓰이게 되는 것은 그 정보를 읽는 사람에게 혐오를 재교육시키고 혐오 사상을 견고하게 전파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달 24일 오픈한 '아름드리 위키'는 8일 오전 현재 93명의 편집자가 참여해 403개의 문서가 작성돼 있다.
문화평론가 손희정 씨는 위키트리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소비자들이 위키의 정보를 이용할 때는 상호 확인하고 비교할 것을 권했다. 손 씨는 이 인터뷰에서 “위키란 것이 특정한 관점이 들어간 정보의 다발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위키에서 본 내용이 ‘순수한 사실’이 아니라는 의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