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백년대계...Not In My Term 정책은 안될 일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은 지금 15년째 동결 중이다. 지난 15년간 김밥 한 줄이 1000원에서 4000원이 됐고 대기업 대졸 초임 임금이 2000만 원에서 4000만 원으로 두 배 올랐다. 오죽하면 대학등록금이 사립 고등학교나 유치원 등록금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올까. 많은 대학들은 학령인구가 급감해 신입생 충원만으로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데, 그동안 누적된 재정난으로 교육여건의 악화와 교육의 질 저하, 대학교육의 경쟁력 추락이라는 악순환에 직면하고 있다. 급기야 그동안 교육부 눈치만 보던 대학들이 견디다 못해 올해 줄줄이 등록금을 인상한다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교육당국의 등록금 동결 제도의 기원은 현 국민의 힘 전신인 한나라당이 2007년 당시 대선 공약으로 내놓은 반값등록금 정책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안은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국가장학금을 지급함으로써 학생들의 실질적 등록금 부담을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정책이었다. 야당인 민주당도 무상복지정책의 하나로 반값등록금 정책에 동조했다. 당시 OECD 국가들은 정부가 평균 70% 정도의 고등교육비를 부담하고 있었던 반면 우리나라는 20%에 불과했다.
또한 사립대학들이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둔 채 비싼 등록금을 받는다는 부정적인 비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반값등록금 정책은 설득력을 얻었다. 이후 국가장학금을 증액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반값등록금 정책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년이 지난 지금 이 정책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비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등록금 동결이라는 정부 규제에 의한 반값등록금 목표 달성은 역설적으로 대학 재정 고갈로 인한 교육여건의 악화와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교협 소속 대학 총장들은 지난달 등록금인상과 국가장학금 연계 규제를 풀어 달라는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했다. 총장들은 물가 상승을 고려한 4년제 대학 실질 등록금이 2008년 대비 23.2%가 줄었으며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OECD 회원국 평균의 67.5%, 미국의 3분의 1에 불과한 최저수준이므로 등록금 인상을 자율에 맡겨달라는 것이다. 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국내 사립대학의 운영이익은 2009년 약 2조6000억 원에서 2021년 441억 원으로 급감했는데 비수도권 사립대 10곳 중 8곳은 적자 상태로 신임교수 채용도 못 하고 기존 교수들에게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여년의 등록금 동결 기간 동안 대학 교수 사회에서는 임금과 교수직급 체계에 차별이 심화되어 마치 신라시대 골품제와 같은 신분제도가 정착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서는 교수 임금 체계에 있어 호봉제와 연봉제라는 두가지 체계가 존재한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대학이 매년 자동적으로 임금이 상승되는 호봉제로 운영되었으나 대학사회도 일반 사기업과 같은 급여체계가 도입되어 연봉제 방식으로 운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호봉제와 연봉제 교수간 임금 차이가 두배가 넘는 대학도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호봉제든 연봉제든 정년트랙 교수는 나은 편인데 다양한 이름을 가진 비정년 트랙 교수들의 급여와 근무여건 등은 매우 열악한 상태이다. 정년트랙이나 비정년트랙 모두 책임 강의 시수도 동일하고 업무에 있어서도 별다른 차이가 없는데 급여와 직급, 근무환경, 보직 등에 있어서 골품제와 같은 차별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재계약을 하는 조교수 직급만 15년째를 유지하는 교수들도 생겨났는데 이렇게 열악한 임금 및 직급체계가 나타난 이유는 결국 학교 재정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US News & World Report에서 발표한 2023년 기준 미국 대학 등록금 평균은 사립대학의 경우 $42,162(한화 약 5540만 원), 공립 대학의 타 주 학생의 경우 $23,630(한화 약 3104만 원), 공립 대학의 주 내 학생의 경우 $10,662(한화 약 1398만 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작년 전체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연간 757만 원이다. 미국 사립대 등록금의 5분의 1에 못 미친다. 대학가에서 “대학교 등록금이 강아지 유치원보다 싸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렇게 대학이 자체적으로 등록금을 책정하는 미국과 달리 영국의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서는 정부가 모든 국내 학부생에게 동일한 등록금 상한선을 설정한다.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 국내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절반만 부과하며 스코틀랜드 대학은 등록금이 없다. 프랑스와 독일, 덴마크 등도 대학 등록금이 무료다.(최근에 일부 유료로 전환했다) 이렇게 등록금 상한선을 정부가 결정하거나 무료인 국가들은 교육비를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우리의 경우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교육비 부담률이 OECD국가 평균에 비해 현격히 낮은 상태에서 대학에 등록금인상을 비롯한 다양한 규제를 부과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곧 다가올 4월 총선을 맞아 유권자인 학부모와 대학생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등록금 동결을 반길 것이며 선거전략으로도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정책은 ‘내 마당에서는 안된다(Not in my Backyard(NIMBY, 님비)‘던가 내 재임시에는 안된다(Not in my Term, 님트)는 포퓰리즘 정책에 다름 아니다.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이 왜 ‘곡식을 심는 것은 일년지계, 나무를 심는 것은 십년지계, 사람을 심는 것은 종신지계’라고 부국강병책을 제시했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등록금 인상을 비롯해 학과의 정원조정, 입학제도등 온갖 규제를 대학 자율로 넘기는 것이 옳은지 시시콜콜 정부가 간섭하는게 백년을 좌우할 수 있는 정책인지 결정해야 한다.
一年之計 莫如樹穀(일년지계 막여수곡)
十年之計 莫如樹木(십년지계 막여수목)
終身之計 莫如樹人(종신지계 막여수인)
一樹百獲者人也(일수백획자인야)
"1년 계획에는 곡식을 심는 것 만한 것이 없고,
10년 계획에는 나무를 심는 것 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을 위한 계획에는 사람을 심는 것 만한 일이 없다.
한번 심어 백 번을 거둘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