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계로서 호주 국적의 한국 걸그룹 뉴진스 하니가 부르는 일본노래 ‘푸른 산호초’가 시사하는 것
저출산과 초고령화로 부산광역시가 광역시 가운데 처음으로 '소멸위험단계'에 들어섰다. 한국고용정보원의 보고서 '2024년 3월 기준 소멸위험지역의 현황과 특징'에 따르면 부산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3.0%를 기록해 광역시 중 유일하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그동안 인구소멸위기 지역은 군 단위의 시골지역에서 부산 영도구·동구, 대구 서구, 대전 중구처럼 재개발이 지연된 '원도심'과 부상 사상구·사하구, 대구 서구 등 '노후산업지역'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급기야 최근에는 해운대구와 같은 '신도심'으로도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해운대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초고층빌딩과 벡스코, 세계적인 규모의 백화점 등이었으나 이제는 ‘노인과 바다’가 되버린 것이다. 인구소멸 위험지역은 정부가 2016년 처음으로 측정한 이래 매년 그 대상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소멸위험지수(20~39세 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인구수로 나눈 값)를 통해 측정되는데 소멸위험지수 값이 0.5 미만이면 소멸위험 진입단계, 0.2 미만이면 소멸 고위험단계로 구분된다. 이미 228개 시군구 기준 위험지역은 지난해 절반을 넘어섰다. 특히 부산 영도구는 소멸위험지수가 0.256으로 광역시 구 지역 중 가장 낮았다. 영도구가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에 진입한 2017년의 인구와 비교하면 20∼39세 여성인구는 11.4% 감소한 반면, 65세 이상 인구가 73.5% 급증하면서 소멸 고위험 단계에 진입했다.
옥스퍼드대학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지난 2006년 한국의 낮은 출산률과 관련해 “한국은 지구상에서 인구감소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다”라는 경고를 한 바 있다. 특히 한국의 수많은 지자체 중 부산이 전국 최저의 출산률을 보이고 있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오죽하면 한국의 최대 위협은 북한이나 핵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최저 출산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까.
지난 2월 부영그룹은 저출산 극복을 위해 직원이 아이를 하나 낳을 때마다 1억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하는 파격적인 장려금 정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들이 작게는 몇 백만원, 많게는 몇 천만원 지원하던 것에 비하면 대단히 파격적이지만 다른 대기업들이 따라 하기에는 무리이다. 그동안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지원금 외에도 아파트 한 채를 공짜로 주겠다는 정책에서부터 별별 아이디어를 내놓았지만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돈 주고 집 준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구소멸 위험지수가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당근책이 유인책은 될 수 있지만 결국 정부는 인구소멸을 극복하기 위해 재외동포청 설립에 이어 이민청 설립까지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단기적으로 해외의 동포들을 한국으로 회귀시키는 것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구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과 그들의 후손, 중국의 조선족, 탈북민등을 법과 원칙, 제도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속가능한 답은 아니다.
이민청의 설립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앞으로 가야할 다문화-다인종 국가 대한민국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얼마전 한국의 걸그룹 <뉴진스>의 하니가 일본 음악방송과 팬미팅에서 선보인 '푸른 산호초(靑い珊瑚礁)' 무대()를 보라.'푸른 산호초'는 1980년대 일본의 메가 히트곡으로, 당시 18세였던 마츠다 세이코가 불러 큰 사랑을 받았다. 하니가 이 노래를 일본 무대에서 선보인 후 일본의 아저씨들인 ‘오지상’의 마음은 물론 젊은 세대까지 휘어잡고 있다.
잘 알다시피 하니는 베트남계로써 호주 국적을 갖고 있다. 그런 하니가 한국 걸그룹으로서 일본어로 노래를 불러 엄청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걸 보면 K팝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태국인인 블랙핑크 리사나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흑인인 조나단을 보며 인구소멸의 길을 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해법을 떠올려본다. 심지어 한국인 한명도 없이 벨기에와 인도, 브라질, 미국 국적으로 구성이 된 여성 4인조 가수인 ‘블랙스완’을 우리는 K팝 걸그룹이라 부른다. 이제 K팝 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헐리우드 자본(HBO)으로 이스라엘계 캐나다 제작자(니브 피치먼)가 한국 영화감독(박찬욱)을 통해 베트남계 주연배우(호아 수안데)들을 대거 기용한 OTT드라마 ‘동조자’를 우리는 미국드라마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K드라마라고 부를 것인가.
‘한국은 단일민족’이라고 세뇌를 받아 온 우리사회는 지금까지 이러한 다문화-다인종 환경에 보수적이거나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음악과 드라마, 예능프로그램등에서 시작된 문화 파워에 의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편견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해체되고 있다. 유튜브 콘텐츠 중 한국인-외국인 커플의 사연을 담은 채널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단일민족 신화 해체의 속도가 앞당겨 지고 있다는 증거다.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외국인의 국내 이주를 전담할 정부기관인 이민청(가칭) 설치 법안이 논의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들도 치열한 이민청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참에 광역시 중 가장 먼저 인구소멸위험 지역이 된 부산이 적극 나서보길 독려해 본다. 글로벌도시 특별법을 추진 중인 부산으로서는 딱 맞는 정부기관이 아닐까. 부산이 광역시 최초로 지역소멸 위험 단계에 들어선 것을 우려하면서 부산의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가 지난 6년 동안 인구 정책에만 6조5천억원을 쏟아 부었지만 청년은 떠나고 유입 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한 것은 부산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지자체들이 귀기울여 들어야 할 충고다. 용적률을 늘여 아파트를 늘리고 고속지하도를 늘리는등 인프라 중심 정책으로는 인구 소멸을 막을 수 없다. 청년과 외국인, 여성의 마음을 얻는 정책은 인프라나 돈이 아니라 차별 없고 포용하는 문화를 물처럼 우리 사회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 최우선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