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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 콘텐츠가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긴 호흡의 콘텐츠에 집중하기 어려운 시청자들이 늘어났다. 숏폼 콘텐츠란, 평균 영상 길이가 15초에서 최대 10분을 넘지 않는 짧은 영상을 말한다. 숏폼은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무한 스크롤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큰 단점이 있다. 짧고 강한 자극에 노출되면서 계속해서 강력한 자극만 찾게 되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롱폼 콘텐츠의 매력이 주목되는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숏폼’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며 콘텐츠 이용자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틱톡’이 시작이다. 2016년 중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틱톡은 1년 만에 이용자 1억 명을 돌파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틱톡은 서비스 내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음악과 콘텐츠 등을 사용하여 비교적 쉽게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었다. 숏폼의 이용 증가로 세계 숏폼 시장 규모는 약 52조 원에 달한다. 향후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6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미디어와 트렌드 시장에 큰 영향을 준다. 다양한 업계에서 숏폼을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네이버의 경우 쇼핑라이브 ‘숏클립’ 서비스를 통해 매출액이 전년보다 41.4% 증가했다.
최근 지속적인 인기를 끌던 숏폼 콘텐츠에 대한 논란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폐해가 ‘도파민 중독’과 ‘팝콘 브레인’이다. 숏폼이 기본적으로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면서 생기는 현상 중 하나다. 자극적인 영상을 보면 뇌에서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행복감이나 쾌락을 느끼게 하는데, 숏폼 시청을 반복하면서 고강도 자극에 익숙해지면 도파민에 중독된다는 것.
이어 숏폼 콘텐츠는 시청자를 늘리기 위해서 자극적인 콘텐츠를 담은 내용이 가득하다.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조회수를 올려야 하기 때문. 자극적인 내용을 담기 위해 전후 맥락을 제외한 정보의 단편만 노출하면 집중력 이해나 문해력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 자극에 노출된 뇌는 팝콘이 전자레인지에 들어갔을 때 ‘타닥’하고 튀는 것처럼 충동적이고 강력한 자극에만 반응하게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팝콘 브레인’ 현상이다.
숏폼 콘텐츠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건 맞지만 이와 상반된 성격의 콘텐츠가 최근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바로 1시간 이상의 롱폼 콘텐츠. 대표적으로 뜬뜬 ‘핑계고’, 십오야 ‘나영석의 나불나불’, 요정재형 ‘요정식탁’, 침착맨 ‘침투부’ 등이 있다. 예를 들어 ‘핑계고’는 1시간에 달하는 영상이 조회수 1000만 회 이상을 기록했다. ‘침투부’ 삼국지 강의 영상은 무려 5시간이 넘는 분량임에도 조회수 1800만을 넘겼다. 롱폼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들의 애정이 절대 작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 속에서 롱폼 콘텐츠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적인 롱폼 콘텐츠들은 대부분 ‘라이브 형식’을 띠고 있다. 이는 ‘맥시멈 콘텐츠’라고도 불리는데, MZ세대에게 라이브 방송은 익숙한 포맷이면서도 언제 어디서든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통의 창구다. 팬데믹 기간 라이브 방송을 틀어놓으면서 일상을 공유하고 만남의 공백을 채운 경험이 있기 때문. 숏폼과 같은 짧은 영상은 집중해야 하므로 한눈을 팔 수 없지만 맥시멈 콘텐츠는 그런 부담이 줄어든다. MZ세대에게 롱폼 콘텐츠는 일상생활 속에서 ‘틀어 놓고’ 자유롭게 할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또한 TV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연예인들도 부담 없이 출연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됐다. 오히려 방송 프로그램보다 화려한 라인업이 마련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 유재석이 진행하는 콘텐츠 ‘핑계고’의 경우, 유재석의 지인들로 꾸려지며 해당 프로그램에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들었던 유명 스타들이 선뜻 출연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SBS 드라마 ‘악귀’의 김은희 작가나 방탄소년단(BTS) 지민·슈가 등이 대표적이다.
유튜브에서 롱폼 콘텐츠를 자주 시청하는 대학생 서하늘(22, 부산시 수영구) 씨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TV보다 유튜브에서 보는 게 더 친근하게 느껴져서 좋다”며 “TV 프로그램에서는 미션을 진행하다 보니 유명 스타의 이야기를 듣는 게 어려웠는데, 토크쇼 형식의 콘텐츠는 근황이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롱폼 콘텐츠는 MZ세대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기에 적절하다. 정제된 내용이 아니라 실제로 날 것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10·20대는 롱폼 콘텐츠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맛집에 대한 솔직 리뷰를 원하지만 막상 찾아보면 상업적 광고가 많은 정보의 바닷속에서 솔직함이 더욱 중요해진 것. 대표적으로 나영석 PD의 ‘채널십오야’ 콘텐츠는 인기 예능 촬영 현장에서 있었던 제작진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소재로 쓰이며 주목받고 있다. 비하인드 콘텐츠들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야 하기에 롱폼 콘텐츠가 적절하다.
롱폼 콘텐츠의 증가는 영상뿐만 아니라 ‘글’이라는 매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긴 글을 주로 올리는 텍스트 중심의 플랫폼 ‘블로그’의 인기도 급성장하고 있다. 네이버가 공개한 2022년 블로그 리포트에 따르면, 1년간 약 200만 개의 네이버 블로그가 새롭게 만들어졌는데, 그중 신규 블로그 이용자의 76%가 MZ세대라고 밝혔다. MZ세대에서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니즈가 증가했기 때문. 10·20대가 짧은 영상으로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없기에 긴 형태의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처럼 영상 시장에서는 숏폼 콘텐츠와 롱폼 콘텐츠가 각자 다른 이유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숏폼과 롱폼이 섞인 융합 형태도 등장하고 있다는 것. 일반 롱폼 유튜브 영상을 재구성한 쇼츠 영상이 1천억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기존의 롱폼을 활용해 숏폼을 생산하고 있다. 유튜브 드라마 요약 영상을 자주 시청하는 대학생 김예빈(22, 부산시 남구) 씨는 “숏폼과 롱폼 장단점이 서로 명확해서 콘텐츠 트렌드 중 하나만 살아남을 것 같지는 않다”며 “숏폼과 롱폼 중에서 뭐가 더 좋은지를 고르기는 어렵고, 제작 의도에 따라 콘텐츠 방향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