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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소유권 vs 거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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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소유권 vs 거주권
  • 취재기자 이창호
  • 승인 2013.04.16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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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땅주인 등장하면 주민 100여명 쫓겨날판.. "우짜믄 좋노"
전국적으로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던 1980년대. 집값, 전세 등이 폭등하면서 부산에도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적지않게 생겨났다. 이들은 부산시 남구 우암동과 대연동 사이 언덕배기에 올라가 잡초와 진흙을 제거하고 산위에 판자촌을 형성했다. 지금의 ‘철탑마을’의 시작이다.  주민 박모(74) 씨는 처음 판자촌을 꾸리던 시절부터 근 30년간 철탑마을에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돈 없다고 죽을 수야 있겄는가. 우짜든간에 살아야겠다고 생각 안했나. 시에서 들고 있는 땅이고 자시고를 따질 겨를이 없었데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처음 집 지을 때 땅이 너무 빈약해가꼬 집이 몇 번이나 무너짔다. 부모 따라 이짜게 오게 된 아아들은 맨날 진흙에 빠져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아이가"라고 덧붙였다.  철탑마을의 정식 명칭은 ‘대연우암공동체’.  대연동과 우암동 사이 산기슭에 위치해있으며 현재 약 50세대 1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철탑마을'이란 이름은 마을을 빙 둘러싸고 세워진 철제 송전탑에서 유래됐다. "90년대 무허가 판자집 철거 문제로 한참 시끄러웠을 때 이곳을 취재한 한 기자가 철탑마을이라 칭했고, 그게 마을 이름으로 굳어지게 됐다"라고 과거 마을회관 관리자 직책을 맡았던 박차연(60) 씨는 밝혔다.  철탑마을이 위치한 산기슭은 원래 산림청과 국방부, 그리고 성창합판이라는 기업 세 곳이 분할 소유하고 있던 땅이었다. 이곳에 사람들이 무허가 주택을 짓기 시작하자, 땅 소유주인 부산시 관계자들과 성창합판 기업이 철거작업을 단행했고, 주민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박 씨는 "그 시절은 지금도 생각하면 몸에 힘이 빠진다. 정말 힘들었다. 똥물을 봉지에 담아서 '똥탄'이란 거 만들어가지고 던지며 철거반을 막아냈었다. 내쫒기면 집도 밥도 없이 죽을 처지인데 가만있을 수 있었겠나"고 말했다.
▲ 부산외국어대학교 뒤편 철탑마을의 위치, 항공사진으론 집이 나와 있지 않다. (출처: 네이버 지도)
 10여년이 넘도록 이어진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철거에 진통을 겪던 부산시와 성창합판은 이곳을 당시 학교 설립을 위해 땅을 매입 중이던 부산외국어대학교에게 헐값으로 매각했다. 철탑마을이 위치한 땅 전체가 부산외국어대학교의 사소유지가 된 것이다. 
▲ 마을 입구 주변에 걸려있는 현수막들, 주민들이 주거권 보장을 주장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학교 측은 그후 학교 시설 건축을 위해 마을을 철거하려 했고, 철탑마을 주민들은 다시 이에 대항했다. 계속된 물리적 충돌은 결국 2000년에 법적 소송으로 이어졌고, 마을 주민들은 부산외대에게 패소했다.

 철탑마을 주민 김영희(67) 씨는 "우리가 뭐 아는 게 있어야지. 여섯 번 붙어서 다 졌다"고 말했다. 그는 "그 뒤로도 부산외대가 압력을 몇 번인가 가했지만, 우리가 계속 싸우고 당시 외대 재학생들이나 몇몇 시민 단체가 우리 편을 들어주니까 잠잠해졌다. 지금은 휴전 상태라 보면 된다"고 했다. 당장 눈으로 볼 때는 평화롭지만, 어디까지나 폭풍전야라는 것이 그의 말뜻이었다.

그런데 최근 주민들은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년 부산외대가 캠퍼스를 남산동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곳에서 이 부지를 사들이게 되고, 주민들은 또다시 맞서 싸워야할 처지에 놓일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연로한 노인들로만 구성된 마을 사람들은 갈등을 이겨낼 여력이 떨어진 지 오래다.

주민 김모(57) 씨는 "나많(나이 많은) 사람들끼리 살고 있는데, 저 밑에서 행여나 불도저로 밀고 올라오기라도 하면 뭔 방어를 해낼 수 있겠느냐"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한숨을 쉬었다.

한편, 부산외대 관계자는 "우암동 캠퍼스 부지를 어떻게 다룰지는 아직 학교 내에서도 정확한 이야기가 오간 것이 없다. 차후 부지 이동이 끝나고 나면 차차 계획을 수립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철탑마을과 부산외대가 이렇듯 긴 갈등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대 재학생들은 이 마을의 존재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철탑마을에 대해 한 부산외대 재학생은 “언젠가 주워들은 듯한 기억은 있지만, 정확히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아리송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박 전 총무는 “지금 외대 이사장인 사람이 지금 자리에 올라서고 나서 우리 마을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학교 사람들을 전부 몰아냈다. 지금 학교 관계자인 사람들은 우리 마을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다.

부산외대에 재직 중인 이모 교수는 “지금도 철탑마을에 대해 알만한 인물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그곳에 관해 갈등을 일으켜봤자 피곤해진다는 것이 학교 측의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마을에 대해 모르는 건 부산외대 재학생들뿐만이 아니었다. 기자는 우암동과 대연동을 돌아다니며 동네 주민들에게 철탑마을에 대해 물어봤다.

한국전쟁 이후 지금껏 우암동에 살아온 김모(72) 씨는 “내 그런 마을은 여기 50년 살아오다 처음 들어봤다우. 아무래도 기자 양반이 잘못 찾아온 것 같아”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남구사회복지관 관계자 최모(24) 씨는 "원래 이 동네 주변이 유독 무허가 주택이 판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철탑마을에 대해 자세히 아는 주민은 그리 많지 않다. 시민 단체나 우리 같은 복지 관련 종사자들이랑 동사무소 직원들 정도나 그런 마을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했다.

‘빈민주거권연합’이라는 전국적 단위의 무허가 빈민촌들 연합체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철탑마을 주민인 김광남 씨는 “지금은 마을이 홍보 초기 단계라서 주변 주민들도 많이 모르는 실정이다. 하지만 점점 홍보 단위를 키우고 마을 안에 가게도 유치해서 우리 마을에 대해 어떻게든 많이 알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부산외대의 직접적인 압력은 없어졌으나, 이대로 고립되어 있다가는 그대로 몰락해버릴 거라 생각한 마을 주민들은 사람들에게 마을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대문을 틀어막고 바깥사람이라면 모두 경계할 것이 아니라, 꾸미고 단장하여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는 명소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 마을 주민들과 시민 단체 등이 힘을 모아 조성한 마을 산책로, 지금도 주민들이 직접 조경잡업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박 전 총무는 "처음엔 거리 홍보 같은 것으로 시작했다. 몇몇 주민은 쓸 데 없이 너무 유세 떠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시민단체나 복지관 같은 곳의 협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마을을 좀 더 세련되게 만드는 작업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 입구를 단장하고 마을 전역에 벚나무나 매화나무를 심어 조경을 꾸몄다. 마을 한복판에 꽃과 울타리로 작은 공원도 조성했다.마을 주변은 아랫동네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쌓이는 실정이다. 주민들은 이 쓰레기들도 이용해 마을 환경 조성에 한 몫 보태고 있다. 그리고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들을 한데 모아 처분해서 마을 수입금으로 쓰기도 한다.

 박 전 총무는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된 합판 같은 폐기물들은 집 보수하고 공원 울타리 만드는 데 꽤 요긴하더라”고 말하면서도, “(아랬동네 사람들이) 매번 우리 마을 주변에 쓰레기를 버리면서 아무런 죄책감을 못 느끼나보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 기자에게 마을 곳곳을 안내해 준 박 전 총무(왼쪽)와 마을 풍경(오른쪽)
 철탑마을과 부산외대 간의 소유권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 관할인 부산시청에서는 어떤 입장인가.   부산시청 관계자는 "그 땅은 엄연히 사유지다. 법상으로는 명백한 부산외대 소유이고, 주민들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형태다. 법적으로도 이미 판정이 난 마당이라 우리가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터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마을 주민 김영희(67) 씨는 "우리한테도 소박한 꿈이 있다. 남들처럼 자기 집에 발 뻗고 사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우린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전 총무는 "만약 외대가 이주하고 새로 다른 업체가 이 땅을 차지한다고 해도, 끝까지 우리 마을을 지킬 생각이다. 사람들에게 우리를 매일 알리고, 마을을 단장하고, 사람들에게 마을을 계속해서 개방해놓고 오고 싶은 마을로 만들 것이다"고 말했다.
▲ 마을 회관 내부 모습, 주민들이 마을을 단장하고 보수시켰던 모습을 담아놓은 사진(왼쪽)이 수놓아져 있다.
 마을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부산외대 측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부산외대 이모 교수는 “우리 학교도 그곳을 돈 주고 매입했다. 엄연히 법적으로 우리가 권리를 가진 입장인데, 그들을 위해 양보해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동정심에서 접근해야하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부산외대의 입장에 대해 주거권연합 대표 김광남 씨는 “사회에 나갈 학생들을 육성한다는 대학교에서 인간 도리는 쏙 빼먹고 돈, 돈 거려서야 어따 써먹을라는지 모르겠네”라며, “동정심이라는 게 사람 사는데 필요한 인(仁)이고 도덕의 출발인데 그게 문제가 안 된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전 총무는 “이 곳은 부산외대가 매입하기 전부터 우리가 줄곧 살아온 우리들의 마을 터이고, 우리들의 뿌리이다. 이런 식으로 부산시랑 학교가 법 가지고 횡포를 부리는 건 우릴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처사다”고 말했다.  비록 마을과 학교가 법적 소송으론 해결이 끝났으나, 갈등이 멈출 낌새가 안 보이는 현 상황에 대해, 부산외대 관계자는 “그 문제는 갈등이라 보기 어렵다. 이미 끝난 사안이고, 우리가 법적으로 효력을 행사할 뿐이다. 10년간 그곳을 가만히 방치하면 자연스럽게 지상권이 주민이란 사람들에게 넘어간다. 우린 그렇게 할 수 없기에 10년에 한 번씩 법원에 철거신청을 낸다”고 말했다.  인터넷 백과사전 두산백과에 표기된 바로는 지상권이란 타인의 토지에 건물, 기타의 공작물이나 수목(樹木)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물권(物權)을 뜻한다.  즉, 법적소송에서 승소한 부산외대가 철거신청을 냈던 2011년 이후 앞으로 10년 뒤인 2021년에 부산외대 측, 혹은 그때 땅을 소유하고 있을 소유주가 법원에 한 번 더 철거신청을 내지 않는다면, 주민들이 법적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철탑마을 주민들은 그때까지 법적으로 엄연히 효력이 없는 자신들이 마을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홍보와 소통뿐이라고 했다.  김광남 대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공감해주고 우리 편을 들어주면, 그땐 부산외대도, 부산시도 우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고 말했다.  박 전 총무는 “우리 주민들은 남남의 개념이 없다. 모든 주민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하나로 뭉쳐서 살고 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우리 마을도 인정받고, 우리도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고 했다.  현 철탑마을 총무인 최동식(56) 씨는 "집은 투기가 아닌, 철저한 주거용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야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든 돈을 모아 땅을 사든, 아니면 국가적 대책이 마련되든, 우리는 이곳을 우리 것으로 보존할 것이다. 나중에 우리가 죽는 날이 오더라도 공동체 조합을 통해 약자들에게 집을 물려주는 그런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철탑마을에서 통칭 '윗자리'을 맡고 있는 위원회 사람들은 전국의 타지에 있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들은 장애인들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의 문제점을 지적해 국가적 대책을 이끌어낸 ‘장애인차별연대,’ 부산시 곳곳에 있는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구수영구주민위원회,’ 그리고 철탑마을처럼 주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끼리 뭉친 ‘빈민주거권연합’ 등 여러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민단체들과 연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철탑마을을 비롯한 여러 약자들의 현장에 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국가 단체들의 방문도 잇따르고 있어 언젠가는 자신들의 권리가 보장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마을 위원회 사람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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