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 경찰청장이 국정농단 촛불 시위 과정에서 강인철 전 광주지방경찰청장을 질책하고 좌천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이를 놓고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작년 11월 18일 광주경찰청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게시한 글에서 시작됐다. 제목은 ‘광주 시민의 안전, 광주 경찰이 지켜드립니다’라는 글로 도심에서 촛불 집회가 열린다는 정보와 함께 교통 통제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게시된 글에는 또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민주화의 성지, 광주 시민들에게 감사하다’, ‘국정농단 헌정 파괴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문구가 담긴 플랜카드 사진이 함께 실렸다.
하지만 다음 날인 11월 19일 광주경찰청은 해당 게시물의 내용을 삭제하고 새로운 글을 게시했다. 새 게시물에는 기존의 ‘민주화의 성지’, ‘경찰이 지켜드립니다' 등의 문구와 플래카드 사진을 올리지 않았고 대신 촛불 집회 예고와 교통 통제 등 안내글만 떴다.
이 같은 게시글 삭제와 재게시는 이철성 경찰청장의 지시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일보의 7일 보도에 따르면, 이철성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4시쯤 강인철 전 광주청장에게 휴대폰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민주화의 성지에서 근무하니 좋냐”, “당신 말이야. 그 따위로 해놓고” 등의 게시글과 관련한 막말을 퍼부었다는 것. 그리고 논란 발생 열흘 뒤인 같은 달 28일, 강 청장은 경기남부경찰청 1차장으로 인사 조치됐다. 사실상 ‘좌천’이라는 의혹도 더해졌다.
이에 광주경찰청과 이 청장은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광주경찰청은 게시물의 삭제 이유에 대해 "상황을 업데이트만 했을 뿐 글을 일부러 삭제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 청장도 이날 “페이스북 글과 관련해 강 전 청장에게 전화를 걸거나 질책한 사실이 없다”며 “고 백남기 농민 노제를 앞두고 지난해 11월 4, 5일쯤 해외여행 휴가를 낸 강 전 청장을 질책한 바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관련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보도를 청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이 청장의 해명에 강 전 청장은 8일 YTN 인터뷰에서 이 청장과의 새로운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강 전 청장은 인터뷰를 통해 "이 청장이 '촛불가지고 지금 정권이 무너질 것 같냐. 내가 있는 한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사건의 진실에 관심이 쏟아지는 가운데, 경찰청이 강 전 청장 주변을 강압적으로 ‘신상 털기식’ 감찰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강 전 청장은 올해 1월부터 경찰 중앙학교장으로 재직 중이며 경찰 중앙학교장으로 취임한 뒤 교비 유용 의혹으로 감찰 조사를 받았다. 한국일보의 8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감찰 과정에서 ‘디지털포렌식’을 한다며 그가 근무하고 있는 중앙경찰학교의 부속실장 A 씨의 휴대폰을 빼앗고 흉악 범죄자 취급하며 모멸감을 줬다는 것.
이에 지난달 초 강 전 청장의 부속실장 A 씨는 경찰청 감사관실 직원들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직권 남용’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대해 진정을 냈다. 디지털포렌식은 휴대폰 등 각종 저장 매체에 남아 있는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 기법이다.
얽히고설킨 진흙탕 싸움은 결국 수사로 이어지게 됐다. 시민 단체 정의연대는 8일 이 청장을 광주경찰청 페이스북에 올라온 ‘민주화의 성지’ 문구를 문제 삼아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한 일선 경찰은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하다가도 마치 ‘집안 싸움’ 같은 이런 사건을 접하면 힘이 빠진다”며 “진실 여부를 떠나 국민들에게 경찰이 어떻게 비칠까 싶어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